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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2]

아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면 안된다. 여성이 지고 갈 짐은 따로 있다. DJ 는 그런데 아내에게...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07/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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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2]

     이희호는 상황 뒤집기의 도사였다 

 

 여자에게 큰 짐을 함부로 지고 가게 해서는 안된다.

 여자에게 큰 괴로움을 함부로 선물해서는 안된다. 

 

    이희호의 귀가하지 않는 남자       

 우리에게는 치욕의 IMF가 97년 12월 3일에 왔지만 한 남자를 선택한 순간부터 IMF였던 여자가 있다.

 한 남자를 선택한 순간부터가 IMF라니, 얼마나 팔자 사나운 여자이기에 그런 소리를 듣는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허지만 남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IMF를 선택한 꼴이 돼버렸던  그녀는 남 다르게 힘든 인생을 살며 청와대의 안주인, 영부인이 되었다. 남편을 대통령이 되게 한 이희호 여사 얘기다. 

그리고 얼마전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나,  남편이고 동지였던 DJ곁으로 갔다. 항상 떠날 것 같던 남편..그러나 이제 남편 DJ는 이희호 곁에 영원히 있게 되었으니....

 

▲ 이희호는 DJ를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차라리 분신이었다. 그러려고 한 결혼이었다. 그런데도 DJ는 툭하면 아내를 배신하고 가출했다.   (사진=NEWS1)  © 운영자



  이희호에게는 DJ(김대중 전대통령)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가 IMF가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에게는 DJ라는 남자 자체가 IMF였으리라는 소리를 해도 DJ에게나 그녀에게나 조금도 실례가 아님을 나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부인을 고생시킨 남자라면 당연히 IMF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자격이 부여된다.

 

 DJ 뿐만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 나라 남자들 모두가 아내에게는 IMF다. 

 한국 여자들은 IMF와 결혼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남자들은 그 아내에게 있어 철저한 IMF다. 한국 여자 모두가 치루는 고통의 의식이다. 

 

 여자가 한 남자와의 결혼으로 해서, 소녀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희망과 이상과 꿈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녀가 선택한 남자가 IMF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 태어난 여자는 한 남자와 결혼함으로 해서,  소녀시절부터 가슴에 품어 온 희망과 이상과 꿈을 성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듯 그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녀가 그렇게 하려고 원치 않았고, 그녀의 남편이 된 남자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들 눈 앞에서 그런 일들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적 현실에서는 어쩌면 ‘결혼=IMF’라는 등식이 남편 아닌 아내에게는 적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가슴 아프지만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결혼은 여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을 수 조차 없는 사태까지 예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지닌 모든 가능성의 보류이며 연기이며 체념이며 참담한 포기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진짜 IMF 가 터지던 20세기 말기는 실제로 그랬다. 

 

▲ 대통령이 된 후에도 DJ는 많은 것을 이희호와 상의했고,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특히 '가족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이희호가 37년간 각고 끝에 DJ 선두에 서서...  (사진=연합뉴스)   © 운영자

 

      사형수의 아내 

 DJ의 인생 전반에 이희호여사는 향상 남편의 위기관리인이었다.  남편은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인물만이 감당할 그런 상황에 자주 빠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된 것만 가지고도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보다는 DJ가 받았던 사형선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사형선고라는 것도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받아 본 것인지 수 많은 자료를 들춰 보아도 아무 데고 그런 숫자는 나와 있지 않다.  어쨌든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희귀한 체험에 속하는 것이 사형선고임엔 틀림이 없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런 남편과 살아야 하는 아내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일찌기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런 남편의 그런 아내가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남편이 정치 한답시고, 그것도 야당 한답시고 돈도 잘 안 벌어 오고, 사형선고도 당하고, 그 이전에는 화물 트럭에 치여 죽임을 당할 뻔한 일도 있다. 

 

  길고 긴 세월의 생활고와 옥바라지와 핍박이 내 곁에 왔었다면, 그리고 나 자신도 툭하면 대문 밖도 못 나가게 연금당하면서 사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는 여성들을 필자는 최근 수도 없이 만난다.  

 

 

 필자의 강의에 참여했다가 “당신이 그 때 이희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라는 질문만 받고도 우는 여성들이 있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열두번은 포기하거나 죽어버리거나 했을 극한상황을 이희호는 수도 없이 겪었다.  그런데도 이희호의 입에서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거의 없다. 온갖 생활고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데도 이희호는 들어 내어 불평을 말하지 않는다.

 

               

      결혼 9일만의 가출한 남자

 DJ가 수립한 기록들이 참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정치인 가운데 저서가 가장 많다든가, 독서량이 가장 많다든가 하는 것은 분명 DJ가 자랑할만한 기록들이다.

 

 그의 문화 관계 내지는 자기 수양을 위한 몇가지 기록들은 확실히 자랑할만한 것들이다(拙著 ‘DJ식 성공법’참조).    허지만 이희호에 관해서는 자랑할 것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아내를 잘 만났다는 기록은 자랑할만한 기록인 동시에 아픈 기록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정치인 가운데 아내를 가장 고생 많이 시킨 기록까지도 DJ는 자기가 수립한 것으로 인정해야만 하니까. 

 

 아마 필자의 이런 지적에 대하여 DJ는 “아니 나가 뭐 꼭 그러고 싶어서 그랬겄습니까?” 하며, 그 특유의 사투리와 큰 웃음으로 응수하겠지만, 어쨋든 이희호가 겪었던 고난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지나기엔 너무나 지독했고 참담했고 처참했다. 

 

 DJ는 결혼하고 9일밖에 안된 신부 이희호를 혼자 남겨두고 가출(?)한다.

 이희호가 평범한 아내였더라면, 결혼초부터 이게 뭐냐고 신혼의 아내답게 다부진 항의와 불평을 할만한 여자였다면,  그것은  틀림 없이 가출이라고 할만한 일이었다. 

  신혼의 단꿈이 깨려면 한참 멀었을 결혼 9일만인 1962년 5월 19일에 DJ는 구속된다. 

 

 죄명은 부정부패. 항상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시달리던 것보다는 가벼운 죄명이었는데, DJ가 대변인으로 있던 민주당의 선거자금을 유용했다는 혐의었다.  46일만에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아내에 대한 DJ의 첫 번째 배신(?)이었다.

 

 신혼 초의 단꿈이 깨지기도 전에 잡혀갔던 남편에 대해서 이희호는 물론 배신이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기서 필자가 감히 배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한 여자를 따쓰하게 보살펴야 할 결혼의 일반성에 대한 배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후 DJ는 그런 면에서는 수도 없이 아내를 배신했다 할만한 괴로움을 선사한다. 

 여자가 지고 갈 수 있는 짐은 따로 선택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페미니스트로서의 필자의 입장이다. 

 

 여자에게 큰 짐을 함부로 지고 가게 해서는 안된다.

 여자에게 큰 괴로움을 함부로 선물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여자에 대한 필자의 기본입장이고 주장이다. 

 그리고 그 입장과 주장을 가장 심하게 역설하면서도 필자 스스로는 이를 배신했던 경력이 있음을 고백하는 입장 또한 괴롭다.  

 

▲ 이희호는 남편의 뒷바라기 하는 데 명수였다. 뒷바라지에서 비약하여 옥바라지도 해야 했다. 아들들을 데리고 독중의 아버지 DU 름 면회하는 이희호와 아들들..  (사진=NEWS1)   © 운영자

 

 

      6년 동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자

 DJ는 그러면 이희호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고 가게 했을까?

 한 마디로 도저히 지고 갈 수 없을 짐을 이희호의 가녀린 양어깨에 얹어 놓은 DJ다.

 한 마디로 죽어서도 다 옮기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이희호의 어깨에,  그 인생에 DJ는 배당한다.

 

 남편이 작은 교통사고, 인사 사고도 아닌 접촉 사고가 나서 잠시 파출소에 들어 갔다 해도 기겁을 하는 것이 한국의 아내들이다.  DJ는 끌려 가는 데는 단골손님이었고 연금당하고 핍박받는 데는 도사였다. 툭하면 귀가 하지 않는 남자였다. 

 

 남편이 하루만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피가 마르는 것이 아내된 여자의 잠 못 드는 밤이다. 

 이희호는 그런 피가 마르는 밤이, 편하게 잠 들 수 있던 밤보다 그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훨씬 많은 아내였다.

 

 DJ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수감생활만 도합 6년이다. 남편이 옥중에 갇혀 있는 6년의 세월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6년의 옥바라지.  피가 마를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쏟아져 나오기를 수십 차례를 해야 6년의 세월이 간다. 

 거기에 사형선고도 당하고, 피살 직전에서 구제 되기도 하고.....그런 것을 속으로 삭이며 불평 없이 겪고, 견뎌 내고 뛰어 넘을 수 있는 한국 여성이 몇이나 될 것인가를,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아내의 권리장전

 남편에 대한 불평은 터놓고 하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다만 군인이나 복싱선수처럼 싸우듯이  하느냐,  아니면 같은 싸움인데도 외교관처럼 웃으면서, 싸움인 줄 모르게 하느냐, 를 잘 구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충고이다.

 

 남편에 대한 불평은 아내의 권리장전이요 확실한 ‘아내의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남편에 대한 불평은 틀림 없는 ‘분위기 사업’에 속한다.  불평하라.  그러나 남편을 죽이는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

 

 남편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겠거든 이희호를 생각하라. 이희호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했을까를 눈여겨 보라.  보통 여자 같앴으면 열두번은 더 죽어 마땅했을 완전절망의 상황에서, 그녀가 남편에게 불평 한 마디 없이 지나 온 세월을 생각하라. 

 

 죽음보다 더 혹독했을 세월의 강을 넘어, 그러나 그녀가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라. 이희호를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이제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야 마땅한 시점에 우리가 지금 섰다.  (계속)     

 

 

****이 기사는, 이희호 관련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그 책의 저자인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과의 협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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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지음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희호와 DJ의, 사랑과 정치와 고뇌의 시대사(時代史). 이 휴먼 스토리 겸 석세스 스토리 속에 담겨진 어두웠던 시대의 지도자가 주고 받던 로맨스와 민주화의 염원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 이 나라 여성들이 꼭 읽고 알아야 할, 남편에 대한 여성의 리더십과 팔로우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