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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는 누님처럼...대통령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힘든 일을 하는 남자에게는, 누님스러운 아내가 곁에 있어야 한다. 남자의 모든 성취에는 그 아내가...

김석주 | 기사입력 2019/07/2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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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3 ]

때로는 누님처럼...대통령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DJ는 매일 누님이 필요한 남자였다

                 

 

      안팎으로 갈라진 역할 분담

 남자는 밖을 맡고 아내는 안(內)을 맡는 역할분담은 우리나라 등 유교권 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역할분담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살림은 항상 여성들의 소관사항이었고 남자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가족부양으로 되어 있어서, 가정보다는 밖앝일에 매달리는 것을 남성스러움으로 생각해 왔다. 남자에겐 언제나 직업이 1순위였고, 가정이나 가족은 2순위에 속해야 했다. 

 

▲ 불평을 말 하지 않는 아내 노릇은 쉽지 않다. 처음부터 불평이란 것을 제외해 놓고 DJ의 아내가 된 이희호는, DJ의 어려움 고비고비마다 누님스러운 위로와 지혜를....     © 운영자

 

 남자는 가장(家長)이자 생계 책임자임으로 집안 일을 돌보지 않고도 당당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심지어는 최고경영자가 되어 있는데도 아이들과 가정을 떠맡는 책임에서 빗겨 가기가 어려웠다. 

 

 “가정생활의 성공과 일의 성공을 분리하려는 것은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하려는 욕심”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상원의원을 지낸 다이안 파인스타인은  미국에서도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에 꼽힌다. 그런데 그녀조차 그토록 벅차게 밖앝 일을 하면서 “집안 일은 항상 여성이 꾸려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매스컴 인터뷰에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신이 첫째요 가정이 둘째. 일은 셋째입니다.”

 세계적인 세일즈 우먼이고 ‘메리 케이 코스메틱’이라는  화장품 회사의 회장인 메리 케이 애쉬조차 일을 가정 다음 서열에 놓아야 했다.  

“남편은 나의 성공을 즐긴다. 나의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가정 일은 거의 전부가, 주로 내 몫이다.” 

 

 미국의 일하는 여성이 이럴 때, 한국에서의 일하는 여성의 괴로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남자가 직장 일로 전근을 하면 아내는 따라 간다. 그러나 아내의 직장 전근은 사표제출로 귀결되는 것이 이 나라에서의 일하는 여성이 겪는 파도였다.  

 

 남편이 밖에서 사회정의에 관심과 힘을 투자할 때 여성은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 투자한다.  여성은 중재와 협상 그리고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좋아 하고 남자는 경쟁과 투쟁 그리고 대립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밖으로만 나돈다.

 

 그런데 그렇게 기고만장(?) 밖으로만 나돌며 가정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면책특권을 주장하던 남자들이 갑자기 고향 그리워하듯 가정과 아내를 그리운 눈동자로 쳐다보며 이른 시간의 귀가를 서툴러 할 때가 있었다. IMF 가 이 나라를 점령했을 때 얘기다. 

▲ 그런 각오, 무슨 일이 생기건, 언제건, 나는 이 남자의 누님처럼 보듬고 격려하는 아내가 되리라...그런 각오 없이 DJ 같은 혁명가의 아내가 되기는...     © 운영자

 

      IMF를 만난 남자들의 집생각

 실패사회의 실패한 남자들은 갈 곳이 집밖에 없다. IMF를 만나 직장과 이별한 남자들이 그랬다. 집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집에 있기가 민망하고, 가족들에게 직업적 실패의 실상을 알리고 싶지 않은 남자는 ‘넥타이 매고 등산하는 남자’가 되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남자들이 부인하고 싶어 하겠지만 성공하고 있을 때는 별로 집 생각을 안하다가 실패하면 갑자기 가정을, 그 따스함을 그리워 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그런 남자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걱정이다.   실패하고 나서야 가정의 따스함을 아는 남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그 가운데 내 남편이 들어 있다 해서 남편을 미워하지 말라. 

 

 남편이 실패하고도 그 실패를 아내에게 털어 놓을 수 없을 때의 심각함에 비하면, 남편의 실패 자체는 큰 문제도 아니다.  실패할 자유조차 없는 남자라면 성공 할 의무도 없는 남자다. 아니 의무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남자는 성공할만한 기력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는 남자로 보아 틀림이 없다.  

 

 남자는 언제 아내에게 기대고 싶어하는가?

 아내는 언제 누님 같아야 하는가?

 그가 술집을 찾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가 교회에 가고 싶어 할 때를 상상해 보라.

 그가 조용한 산사(山寺)에 들고 싶어 할 때를 짐작해 보라.   

 그가 외로와졌을 때이다. 

 그가 힘이 빠져 있을 때이다. 

 그가 울고 싶어질 때이다.

 

 그런데 그가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아내의 가슴에 엎드려 울지도 않고 넥타이 매고 산으로 갔다고 치자. IMF 때 이 나라의 남자들이 더러 그랬다.  모험적인 한 남자의 모험이 실패로 끝났을 때, 그를 안정시켜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내밖에 없다. 

 그 남자의 아내는 당연히 그의 보호자이어야 하고 후견인이어야 한다.

                

▲ 반독재 투쟁에도 이희호는 예외 없이 지도자로서 선두에 섰다. 이희호의 리더십은, 당시 반독재 투쟁 등 여성 운동에 큰 활력소가 되어....     © 운영자

 

      가정적으로는 기대할 것이 없는 남자가 DJ

 이희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기 앞에 놓인,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의 대부분을 죽음보다 괴로운 고난으로 채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희호와 DJ의 결혼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걱정하던, 누구보다 야심이 크고 만만찮은 모험심의 소유자인 야당 정치인과 결혼해서 이희호에게 다가오리라고 걱정했던 모든 일들이 실제로 이희호에게 다 일어난다.  

 

 처음부터 신혼의 감미로움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란한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 역시 염두에 없었을지 모른다. 가시밭길 같은 괴로움이 앞에 있으리라 예감한 결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충고한 선배도 있었다.

 

 “그 남자가 정치적으로는 클지도 모른다. 허지만 가정적인 남자는 절대로 아니다. 가정의 단란함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희호는  처음부터 한 여자로서의 행복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단 말인가? 

 

 스스로의 능력과 경력은 물론이고 여성지도자로서 촉망받는 입장이면서도, 자기의 꿈과 야심은 묻어둔채 처음부터 어두운 절망이었던 남자를 선택할 때 이희호는 평범한 아녀자로서의 행복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단 말인가? 

 

 이희호가 택한 남자는 누구인가?

 세상에 태어 나서 한 번 쯤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지배해 보려는 큰 꿈을 지닌 남자였다. 이희호는 그 남자의 그 큰 꿈 때문에, 남편으로서 또는 가장으로서의 가능성이 거의 절벽인 그를 선택한다.  DJ가 지닌 그 큰 꿈 때문이었음은 앞에서 얘기한대로다.  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게 도와주려는 이희호에게서 우리는 누님 같은 마음을 발견한다.  

 

▲ DJ가 있는 모든 곳에, DJ가 뜻하는 모든 일에 이희호는 곁에서 그를 돕고 보살폈다. 이 시대 가장 살벌했던 남자 DJ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이희호는...     © 운영자

 

       누님이 필요한 남자들

 정치가의 아내로서 누님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 여성은 영국수상 디즈레일리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보다 연상이었다. 

 

 남편이 수상이 되어 의회에 처녀 연설을 하러가는 길이었다. 디즈레일리의 부인은 마차를 타다가 실수로, 마차 문에 손가락이 찧어 잘라진다. 피 흐르는 손가락을 이를 악물고 움켜 쥔채 남편에게 말 하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이러한 배려는 누님스러움 없인 안된다.

 의회 방청석에 앉아 남편의 수상으로서의 처녀 연설이 다 끝난 다음에야 부인은 마부를 독촉하여 병원으로 간다. 

 

 허지만 그 디즈레일리의 부인이 겪은 고통, 또는 누님스러움은 이희호가 겪은 고통이나 누님스러움에 비하면 코흘리개 수준은  아니던가?

 이희호는 천성적인 누님이었다.  그녀가 DJ보다 연상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상이나 연하라고 하는 나이 차이를 가지고 누님이냐 동생이냐를 따질 수 있을만큼 여자는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이화여전에 다니며 학생운동을 할 당시 그녀에게서 풍기는 범할 수 없는 분위기나 리더십이 누구나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게 했다. 

 강원용 목사의 회상에 의하면 “나이가 그녀보다 한 두 살 더 먹은 남학생조차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매일 죽는 남자

  특히 DJ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이 ‘누님’이 필요했을 남자다.  누님은 기대고 싶은 존재, 위로받고 싶은 존재다.  선천적으로 보호본능이 강해서 언제 찾아가 지친 몸을 기대도 이마를 짚어 주는 서늘한 손이 ‘누님’이다.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남자,  산사(山寺)에 들고 싶어 하는 남자, 술집에 가고 싶어 하는 남자가, 찾아가 이마를 식히고 싶은 손길이 ‘누님’이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에서는 6년이라는 가장 긴 투옥생활과, 10년이 넘는 연금과 망명과 감시의 생활. 그리고 여러차레에 걸친 죽음에 직면했던 그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위로와 격려가, 그리고 진심 어린 좋은 충고를 해 줄 누님 같은 말 상대가 필요했을 것임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정도가 아니다.  DJ는 매일 죽는 남자였다.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남자였다. ‘누님’이 매일 필요한 남자였다.  이희호는 누님으로서의 역할을 하느라 편할 날 없는 인생을 결혼 후에 보낸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DJ는 이희호와 마주 보거나 음성을 듣거나 편지에 적힌 필적만 보아도 위로받고 힘을 얻었다. 그것이 이희호 특유의 따뜻함과 ‘누님스러움’이었다. 

 

▲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전력을 다 해도 힘이 미치지 않을 때, 진심 어린 기도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성취가 되고....     © 운영자



      사고 잘 치는 남자의 아내가 되면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보살핌의 본능이 있다. 소년소녀 가장이라 불리우는, 부모가 없어서 10대 어린 시절부터 살림을 맡아서 하는 집안의 아이들을 보면 대여섯살이나 연하인 여동생이 실은 누님 역할을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남자는 마마 보이가 아니더라도 여자에게서 누님스러움이 발휘되기를 기대하며 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도 연하의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님스러움에 의존하려는 남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현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남편이 연상이더라도 더러는 주책박아지고 더러는 철부지이고 더러는 사고뭉치이기 마련인 남편은 어차피 동생스러움으로 아내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특히 IMF 라고 하는 고약한 시대를 겪으며 밖에서 기 죽어 들어오는 남편에겐 누님스러움의 이마를 짚어주는 손길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던 한 시기도 있었다.

 

  이희호는 사고(?) 잘 치기로 소문난 남자의 아내로서, 누구보다 위로와 격려에 목 말라 있는 남자의 아내로서, 그가  필요로 하는 ‘누님스러움’을 아낌 없이 베풀고 보살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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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희호 관련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그 책의 저자인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과의 협동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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