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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9 ]

결혼을 잘못하면 신세를 망칠 수도 있지만, 결혼을 잘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DJ가 그걸 증명했다

운영자 | 기사입력 2019/09/1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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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9 ]

 

  위기 앞에 의연하라, 흔들리면 무너진다

 

 

            기나긴 구경거리

가정을 답답하게 여기는 남편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아내를 답답하게 여기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내만 답답하게 남편을 대하지 않는다면 가정은 결코 답답하지가 않다고 남편들은 생각한다.

남편의 아내답답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심한 것이 대화의 불통. 남편과 아내 사이에 소위 커무니케이션에 문재가 생기는 경우다.

이 때 남편들은 마누라 하고는 얘기가 안 통한다. 대화를 할 수가 없어!”라는 한 마디로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한다.

특히 남편의 직업이나 직장에 대해서 아내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큰 불만이다. 이 경우 남편은 대개 아내에게서 직업이나 직장, 또는 사회생활의 처세에 관해서 아내로부터 어떤 충고도 받지 못하며 산다. 남편은 그것을 답답해 하는 것이고 어떤 남편은 억울해하기까지 한다.

물론 아내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남편의 직장이나 직업에 대해 지나치게 무식하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무책임이라는 지적당할 수도 있다.

허지만 남자들 세계의 편견이 여기 곁들일 수도 있다.

즉 집에 가서 밖앝 일을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을 젊잖은 남자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도리가 그렇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아내는 남편이 주장하는 그 유교 냄새 나는 도리라는 것 때문에, 남편의 밖앝일에 대해서 뭐라고 충고를 할래야 할 수도 없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멋 모르고 앉았다가 날벼락을 맞기도 한다.

지금은 21세기 그런 남편도 그런 가정도 없다고 말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희호 시대엔 그런 가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그러나 이희호가 툭하면 당했던 날벼락은 남편의 밖앝일을 너무 몰랐던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 너무 알고 있었기에 당하는 괴로움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만약 DJ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즉 이희호가 남편의 불행의 모든 모퉁이에서 우와좌왕하지 않고 의연하게 잘 버티는 역할을 포기했더라면, DJ는 그냥 투쟁의 명수로서 아주 기나긴 동안의 구경거리로만 남을 뻔했다.

다행히 이희호가 DJ의 여러 가지 면의 대역을 하면서 버텨주었기에 그는 한 시대의 구경거리로 끝나지 않고, 한 시대의 운명을 검어 쥔 영웅이었고 우리의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   어떤 일이 눈 앞에서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희호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ㅎ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 이희호가 흔들렸으면 DJ는 대통령이 안 되었을지도..... © 운영자

 

            위기에 약한 체질

남편의 밖앝 일에 대해서 별 관심을 안 갖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는 아내도 있다. 텔리비전에 출연하여 그런 얘기를 하는 젊은 아내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얼마나 결혼에 관한 교육에 소흘했나를 실감한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결혼이라는 학문이, 적어도 고등학교에서부터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오랜 동안의 주장이다.

결혼은 하고 싶은 것만 하도록 버려두지는 않는다. 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인생이나 결혼이 꼭 행복한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여자는 위기에 약한 체질로 태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한 사람만 골라서 찾아 다니는 위기라는 것은 없다.

유교적인 남편이 아니더라도 밖앝 일을 얘기 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내를 너무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포함된다. 힘든 회사 사정, 곧 정리해고 될 것 같은 예고편, 부도 나는 날이, 내일이냐 모래냐 하는 상황 등을 들려주면 펄쩍 뛰거나 지나치게 놀라거나,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남편들의 가슴에는 있다.

더구나 여자는 결혼 후 집에 들어 앉음으로서 사회 활동과 멀어지고 실제적인 위기의 체험이나 위기의 간접체험 하고도 멀어지기 때문에, 위기에 대한 예방이나 차후 대책등 위기 전반에 관한 어떤 식견도 가지고 있지 않던 시대를 이희호는 살았다.

무서워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라도 그 자리에서 해야 할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참된 용기이다.

이희호는 남자라도 행동에 옮기기는 커녕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을 상황에서 뜻밖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함으로서 여성으로서는 드문 용기를 과시한다.

 

 

 

형사, 돌아서다 

간첩이 아닌 한국 여자 치고 아마 이희호만큼 미행과 감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남편의 일로 해서 이희호만큼 많이 놀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사건이 많은 남자, 언제 무슨 사고(?)를 저지를지 모를 남자를 남편으로 한 여자에게 편할 날이 있을리 없다.

그런 사건이 있을 적마다 정말로 간이 콩알만해졌다면 이희호의 간은 벌써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애간장이 탄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희호의 간은 타다 못해 숫검정이 되었으리란 소리가 나올 만큼 간 떨어질 일을 많이 당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정작 그 일을 당하는 당사자는 옆에서 보기에 놀랄만큼 의연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형선고가 내렸을 때에도, 이희호는 머리를 벽에 처박고 몸부림이라도 쳤을 순간임에도, 눈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선 DJ의 비서를 오래 지낸 한화갑 의원이나 임채정 의원도 증언하고 있지만, 동교동 집을 감시하라고 경찰에서 파견한 형사가 더욱 놀라고 있다.

동교동 보고서라는 책을 쓴 전직 형사 이 열.

그는 동교동 감시라는 임무를 띠우고 동교동 DJ의 집을 몇 년간 출근한다. 그러다가 DJ와 이희호에게 매료되어 경찰을 떠나 아예 동교동 집 식구가 된다.

기절할 만큼 큰 일이 터져도 이희호의 태도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쓰고 있다.

남편이 일본에서 납치 되었다는, 저승 사자가 보낸 것 같은 기별을 듣고도, 방으로 들어와 밤샘 기도를 한다.

착검한 총을 든 수십명의 군인들에게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끌려간 남편의 소식이 몇 달씩 없을 때에도 이희호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형선고가 내렸을 때에도, 이희호는 머리를 벽에 처박고 몸부림이라도 쳤을 순간임에도, 눈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눈물도 사치일 수 있다

 

사형선고의 의미를 아는가? 한 인간의 생명을, 다른 인간이 선고를 받은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빼앗는 것을 말한다.

사형선고를 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굴을 볼 수 도 없고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머리카락 한 올 만질 수 없는 곳으로 남편이 가 버리는 것이다.

이승에서는 영원히 그를 볼 수 없으리라.

내생이라는 것을 믿는다 해도 누구 한 사람 내생이라는 데를 다녀 온 적이 없으니 소식조차 전 할 수 없는 것이 남편과의 사별(死別)이다.

그런데도 이희호는 당황하고 놀라고 흔들리는 모습을 안 보이려 애썼다.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야 매일밤을 통곡으로 지냈으리라.

남들처럼 적당적당히 해도 될 것을 허구헌 날 군사정권더러 민주주의 하자고 그러다가 자기 혼자 저 세상으로 가버리려는 남편에 대한 야속함도 없진 않았으리라.

이희호는 그러나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지난 다음에야 하는 얘기지만 그런 내색을 보일래야 보일 수도 없었고, 눈물을 흘릴래야 흘릴 겨를도 없었다.

이희호에게는 슬퍼하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눈물 조차가 사치라고 해야 할만큼의 일이, 어느 하룬들 집에 누워 쉴 수도 없게 했다.

남편과 같이 투쟁하다가 붙잡혀 들어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돌보고 리드해 가는 것도 이희호의 일이었다.

그 일은 수감자의 뒷바라지는 물론 수감자 가족들의 감옥 밖에서의 투쟁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대로 울 수도 없고 마음대로 쉴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불행을 겪으며 할 수 있는 위로 중에는 지금이 최악이다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도 지금보다 나쁜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리 조금만 견디자며 서로를 위로하고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 오랜 동안의 괴로움과 단련이 이희호의 훗날을 더욱 영예롭게 한다. 오랜 단련과 갈고 닦음이 없는 명예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닦을만큼 갈고 닦은 명예라야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그림이 좋다.

 

▲     © 운영자

 

 

자살과 가출 

이희호가 위기 앞에서도 흔들림을 보이지 않은 큰 이유를 우리는 안다. 만약 그녀가 흔들림을 보이면 DJ는 출렁거렸을 것이고 세 아들들은 더욱 흔들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 곁에서 그녀로부터 위로 받고 힘을 얻고 그녀의 리드만을 기다리는 재소자 가족들 역시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희호는 흔들릴 자유조차 박탈(?)당한 셈이었다.

 

위기가 근처에 온다 싶자마자 아내가 흔들려서 곤경에 빠졌던 A 사장의 경우는 평소에 아내에게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얘기 하지 않은 데서 온 혼란이기도 했지만, 그 아내에게 논리적인 처세보다 감정적인 폭발이 앞섰던 것으로 보여진다.

IMF 당시 A 사장은 1차 부도가 터진 날 저녁에야 아내에게 회사 사정을 털어 놓고 아마도 큰 불행이, 그러니까 큰 고생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친구들 앞에서 나 창피해서 어떡해?”

A 사장 부인의 첫마디가 이랬다. 참으로 창피해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를 아내이고, 창피가 무엇인지 모르는 창피같은 소리만 하는 여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이튿날 그녀는 자살을 기도했다.

거래처와 은행에 A 사장 부인의 자살미수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냉담해져서 일체의 원조가 끊겼다. 다행히 A사장이 새롭게 개척한 유럽 지역의 바이어로부터 적지 않은 액수의 수출신용장이 개설되는 바람에 최종 부도 위기를 넘기고 지금은 중견기업의 규모로 회사가 커졌다.

또 한 사람, B 사장 부인은 남편 회사가 부도나자 가출해버렸다. 빚장이 등살에 못살겠다는 것이 그녀의 푸념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데려 가고 집까지 경매로 빼앗긴 B 사장은 홈리스 군상 속에 묻혀 지하도에서 자다가 사원들이 찾아내어,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 취직시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예수의 고뇌 

A 사장 부인이나 B 사장이나 그 나름대로의 이유는 분명하게 있다.

본인들에게 말 하라고 한다면 오죽해서 이랬겠느냐,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다, 라고 거세게 항변할 수도 있다.

허지만 부도나는 것이 당신들 남편만은 아니쟎냐는 지적에 그들은 무슨 답변을 할 것인가?

한 때 운이 나빠, 좋지 않은 여건에 빠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되는 행운이 없듯이 영원히 계속될 불운도 없다.

남편이 지금 한 시대의 비운에 따라 불행을 안고 쓰러졌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끝났다고 체념하지 말라.

또 그가 지금 잘 나가지 못한다 해서 명예를 모두 잃었다고 생각지 말라.

쓰러지지 않는 것만이 명예가 아니다. 쓰러질 적마다 다시 잃어나는 것이 진짜 명예이고, 쓰러져서 다시는 못 일어 나야 겨우 불명예인 것이다.

남편 곁을 피하려고도 하지 말라.

피한다고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피할 수만 싶다면 예수도 십자가를 피했으리라.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날 밤 예수도 고뇌하지 않는가?

주여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하소서. 다만 저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소서.”

이 시대의 우리는 청년 예수의 그 피하고 싶었던 고뇌를 이해하고 그의 고뇌를 우리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즉 피할 수 없는 것과는 마주 서야 하는 것이다.

이희호는 피하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면 무너진다는 것을, 자기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과, 이 나라 민주주의마저 무너져서 못 쓰게 디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의연히 버틴 것이다.

도저히 예측 할 수 없는 날벼락 같은 일이 생각지도 않던 사람에게 갑자기 밀어 닥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아내답게 단전(丹田)에 힘을 모으고 각오하고 있으라.

각오하고 있으라, 는 말이 IMF시대처럼, 한국의 아내들에게 실감나는 때도 없었으리라.IMF는 한 마디로 전쟁이었다. <경제 6.25>가 터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6.25 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전쟁을 우리가 견디어 온 것이다.

IMF 보다 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시대를, 이희호는 별 내색 안하고 견뎌왔고, 남편을 대통령자리에 밀어올릴 때까지 참고 참고 참아 나갔다.

IMF와 결혼한 여성답게, 평생이 IMF였던 여성답게, 이희호는 항상 모든 상황을 다 각오하고 있으면 된다는 얼굴로 살아온 것이다. 각오하고 있으면 큰 괴로움 큰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희호는 이 나라 여성들에게 몸으로 일깨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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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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