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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7 ]

영부인 이희호가 아닌, 고뇌 속을 헤쳐 온 한 아내로서의 이희호에게 오히려 고개 숙이고 싶은...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12/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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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원뉴스 희망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7 ]

       남편을 방임하지 말라

 

       대한민국 아내들이 이희호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     © 운영자

 

                 충만한 것은 텅 빈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은 어느 쪽이 더 고통인가? 힘든 일

                    과 즐거운 일은 어느 쪽이 더 몸과 마음에 이로운가?

                    가지고 싶어도 없는 괴로움과 아무리 가져도 더 갖고 

                    싶은 괴로움은 어느 쪽이 더 큰가?

  

 

        상호 간섭주의와 관리권의 교환

 남편과 아내가 하루의 일을 서로 얘기하지 않기로 작정한 부부가 있었다. 양 쪽이 다 한 번씩 이혼 경력이 있는 커플이었다.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남편은 집에 와서 구태어 밖앝 일을 말 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일하는 여자였는데 그 날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남편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무슨 계약결혼을 한 사람들처럼, 그러나 자기들은 배우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구질구질하고 째째하게 잔신경 안 쓰겠다고 대단히 현대적인척 하며 사는 고학력의 부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1년만에 헤어졌다. 

 1990년대 초반에 외국 생활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돌아온 남자와,

역시 이혼한 신진 패션 디자이너의 결혼 같지 않은 결혼은 그렇게 끝났다. 방임주의의 마감은 당연했다.

 그 때 그 아내 되는 패선디자이너가 그 남자와 헤어진 후 들려준 얘기.

 “상대방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서로가 마음 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결혼에 넌덜머리 나게 간섭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하는 일을 모르면 마음 편할 줄 알았는데 천만에, 무시당하는 기분이 하루종일 나를 괴롭혔다.”

 철딱서니 없는 부부의 장난 같은 재혼은 그렇게 끝났다. 

 내가 편하려면 상대방을 몰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의 위험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먼저 ‘결혼의 사상’을 무시하면 안 된다. 

 결혼이 상호간섭주의에 입각한 것은 아니지만, 관리권의 교환이라는 원초적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 

 여자는 시계를, 남자는 반지를 결혼 선물로 하는 것도 사실은 서로 상대를 구속한다는 쇠사슬의 상징으로서임은, 결혼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결혼하고도 프라이버시를 따로 갖고 서로의 생활을 알릴 필요도 알 필요도 없다면 결혼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귀찮고 찝찝하고 신경 쓰이고 약 오르고 하면서도 서로 적당한 수준에서 견제하고 간섭하면서 살 때 그 속에서 결혼의 솔솔한 재미가 찾아진다.   

 

▲  DJ....강원도 낙산 해수욕장에서 어린이들과 물장구 치며 망중한을 즐기다(1988)  © 운영자

 

 

           아내가 빠진 스케줄        

 결혼을 장난처럼 아는 사람들은 별도로 치더라도 한국 아내의 대부분은 남편으로부터 소외당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편의 공적인 사회 생활, 즉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근무시간 외의 스케줄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에는 분노를 넘어서 체념한다는 아내도 적지 않다. 

 분노하는 아내는 아직도 남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아내다.  체념했다는 상태에 도달한 아내라면 남편을 방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체념했기에 방임한다면 그런대로 말은 된다. 허지만 체념하지 않고도 남편을 방임하고 있는 아내를 보면 살얼음 위를 건는 술 취한 여자를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남편을 주어(主語)로 말하지 않고 아내를 주어로 말한다면, 대부분의 아내가 남편의 스케줄에 들어 가 있지 못하다.

 아내를 퇴근 후의 스케줄에서 제외한 남편들은 대부분 바쁘다는 소리를 숨 쉬듯이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70년대에서 80년대를 지나 90년대로 진입한 이후에도 아내를 돌보기 커녕은 자신을 돌보기도 어려울만큼 바쁜 사람들이 한국의 남편들이었다.  

 그 아내의 고독을 딛고 한국의 경제는 성장했다. 한국의 경제는 많은 아내들의 고독을 먹고 자랐다. 한국의 아내들이 잘 참아 주는 덕분에 한국 경제는 컸다. 

 그 경제 발전을 딛고 이번에는 아내들이 컸다. 경제발전과 함께 여성의 지위도 많이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이 겨우 20여년 안팎이었다. 

 한국의 아내들이 목소리를 좀 크게 내자, 방송이나 신문에서 남편이 위축된다고 엄살을 떤 것이 겨우 20여년. 짓눌려 살던 아내의 역사는 그깟 20여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몇 백년이 아니었던가?

 아니 그 20여년이나 그 몇 백년과는 상관 없이 남편을 방임하는 아내들은 있다. 남편을 방임하고자 하는 아내는 경제와 상관 없이, 아내의 지위와 상관 없이 남편을 방임하는 것이다. 

 한국의 아내들이 그 정도나마 변하고 있을 동안 이희호는 변화하는 아내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다. 변화건 방임이건 그런 데에 눈 돌릴 여유가 이희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 이화여고 시절, 일선장병 위문을 갔던 이희호와 이화여고 학생들...군인 앞에 선 학생이 이희호   © 운영자

 

                    큰 근심을 자기 몸 소중히 여기듯 해야

                      문을 잘 잠그는 아내는 빗장을 쓰지 않고도 문

                         이 열리지 않게 할 수 있고, 잘 묶는 아내는 

                         나일론 끈을 쓰지 않고도 풀어지지 않게 한다. 

                         여자는 마음만 먹으며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력서

 이희호는 아버지 전주 이씨(이용기)와 어머니 연안 이씨(이순이)의 장녀로 서울 수송동의 외가에서 1922년 9월 21일에 태어난다. 위로 오빠가 셋,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셋, 모태 신앙인이었고 몇 대째 서울내기였다. 아버지가 의사인 유복한 가정이었고 해방 되던 해에 둘째 오빠도 의사가 된다. 

 어머니의 바로 위 오라버니는 하와이에서 이승만 박사와 독립운동을 했고 전국경제인 연합회의 창립 멤버 중의 한 사람인 이원순(李元淳)옹. 

 이 외삼촌의 체부동 집에서 이희호는 DJ와 결혼식을 올리는데 100여명의 초청 인사가 마당에 다 들어서도 될만큼 넓고 부유한 집이었다.

 그런 환경이 이희호를 둘러 싸고 키웠다.

 이화여고를 졸업 후 이화여전을 다니던 중 일제에 의해 학교가 문을 닫자 충남 예산에 내려가 초등학교 학생들을 잠시 가르치다가 해방을 맞는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다시 입학하여 1950년에 졸업을 하고 미국 유학 준비를 하는 중에  6.25를 만난다. 1954년에 미국 램버스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수학하고, 58년에 스카릿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그 해에 귀국한다.

 유학 전 대한여자청년단 총본부 외교국장과 여성문제 연구원 간사를 지냈고 귀국 후 이대에서 강의를 하다가 62년까지 대한 YWCA 총무를 맡는다.

 그 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 연구회 회장,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 한국지회 부회장 등의 사회 활동과 창천감리교회 주일 학교 교사등 종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87년 미국 노스이트턴 대학을 비롯 3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상이 이희호의 간단한 이력서라면 이력서다.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결혼 훨씬 전부터 시작된 그녀의 사회 활동은 당시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여성들에 비교해도 눈부신 면이 없지 않다.   DJ와 결혼을 안 했다면 충분히 자기 영역을 개척하여 지도적 여성이 되어 홀로 서기를 했을 것이라고 당시의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그런 이유 때문에 DJ와의 결혼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지금도 만나면 그 이야기부터 하며 지난 날을 추억한다.

 DJ와 결혼한 후에는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폭풍같은 많은 사건에 휩싸여 이희호는 거의 기진맥진 상태까지 이르기도 한다.   

 

▲ DJ는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음 직전에서 생환하기도...사진은 생환 15주년을 기념하는...(1988년)     © 운영자


        차라리 감옥이

 남편을 성공시키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한 아내들은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 남편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를 믿기만 하면 곁에서 돕는 일에도 신이 나고 힘이 붙는다.  남편만의 목표가 아니라 아내에게까지 공동목표가 되니까.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의 자동차 연구는 그 아버지조차 ‘미친 짓’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포드의 아내는 남편의 목표가 무엇인지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에 일관되게 남편을 믿고 격려하고 도울 수 있었다.    

 남편과 공동으로 한 번, 그리고 단독으로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았던 퀴리 부인 역시 깊이 있는 물리학 연구에 몸 받치려는 남편의 목표를 알고 믿고 있었기에 집안 살림까지 돌보면서 남편의 연구에 같이 몰두하며 그를 도울 수 있었다. 

 이희호도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대 이유와 자기를 사랑해서 그런다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DJ의 목표를 알고 있었고, 그에게 그 가능성이 있음을 믿었다. 

 이희호에게는 남편에 대한 방임, 또는 무관심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고 몸과 마음이 찢어져 나갈 정도로 뒷바라지를 해도 항상 사느냐 죽느냐에 문제가 따라다니는데 무슨 방임이 가능하겠는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DJ를 단단히 의식하기 시작한 군부 세력들에게 억압받기 시작하던 71년부터,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는 97년 말까지, 외국에 망명 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감시에 시달려야 하는 남편을 어떻게 방임할 것인가?  차라리 방임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이희호로서는 한숨 돌릴 수나 있었겠지만.

 오죽해야 “감옥에 가 있을 때가 오히려 마음 놓일 때도 있었다. 분명하게 가두어 놓고 지켜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감옥이니까....”라고 말 할 정도였을까?

 허구헌 날 손님은 그칠 사이가 없어 부부만의 대화조차 어려웠다.조금 자유가 생겼다 싶으면 공식일정이 놓아 주지를 않았다. 계속되는 긴장 속에 숨을 돌릴 틈도 없는 남편을, 그것도 큰 뜻을 이루고자 하는 남편이고 그 큰 뜻이 무엇인지 아는 아내로서는 마음 편하게 남편을 잠시나마 방임하고 싶어도 안되는 일이었다. 

 남편 방임의 자유조차 없는 여자. 그것이 DJ를 만난 이후, DJ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의 이희호의 인생이다. 

 

                   아름다운 말은 보답을, 훌륭한 행동은 존경을

                                      부드러운 물이 큰 바위를 겉 모습만 아니라 속까지 바꿔                      놓는다.  작은 미소가  웅변보다 통쾌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강한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약한 때문만도 아니다.

 

                  

         안 보이는 시간                                         

  바쁘다는 남편, 아니 진짜로 바쁜 남편은 어떤 의미에서 못 본 척, 또는 관심 없는 척 방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때로는 놓아 주는 것이 내조일 수도 있으니까. 

 적극적이기로 소문난 K여사는 남편이 대형 유리 도매상 사장이었다. 건설 경기가 활발해서, 아침에 눈을 떴다 하면 고층 빌딩 한 채가 생겨 나곤 했던 80년대 초반부터 큰 돈 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남편이었다. 40대 초반이던 부부 사이에 자연스레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K여사는 남편이 근무 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것이 크게 고민이었다.  

 모든 아내들이 그렇다. 남편의 안 보이는 시간이 언제나 문제였다. 그 안 보이는 시간이 감춰둔 시간으로 변할 때 문제가 생긴다. 

 남편의 안 보이는 시간은, 보이는 시간을 관리함으로서 파악할 수도 있다.      

 K여사는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느냐고 남편과 아웅다웅 하기가 싫어서 싫여서 남편의 여비서와 친하기로 했다. 자주 여비서를 불러내 언니처럼 다둑거려 주고 선물도 하고 관심을 기울이자 남편의 보이지 않던 스케줄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가 여비서와 잘 지나는 것이 자기를 감시 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보았는지 조심하고 근신하고 책 잡힐 일 없는 경영자로 성공하려 애썼다.

 J 여사도 비슷한 케이스. 오퍼상을 경영하는 남편 회사에 들릴 적마다 밀실처럼만 보이게 구성된 남편의 집무실(사장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때로 사생활의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안한 J여사였다. 

 J 여사는 결국 남편 회사 총무과장을 통해서 사장실 벽을 헐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벽을 이루는 간 막이에 유리를 끼우게 해서 안이 들여다 보이게끔 했다. 사장실을 반은 공개해 버린 것이다. 

 보스의 공간을 공개하면 그 시간도 공개될 수밖에 없다. 공간과 시간에 구석지고 밀폐된 것이 없다면 보스의 사생활은 안심이다. 경영 혁신을 기도하고 있는 미국식 사무실의 대부분이 공간을 공개한다. 사장실이나 중역실이 없어지고 간단한 간막이 하나로 공간을 구분한다. 

 공간이 공개되면 그의 커무니케이션이 공개되고 따라서 권위의식 대신 실무적인 보스가 되고 사생활 상의 문제는 훨씬 줄어든다.

 남편의 시간과 공간을 방임하는 대신, 반대로 꼬치꼬치 묻고 따지고 간섭하는 대신, 방임도 간섭도 아닌 아주 능률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을 J여사나 K 여사는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1988년 필리핀 초청으로 공항에 나온 DJ와 이희호 여사...손자를 안아 보며 기뻐하고 있다     © 운영자

 

        뒤 늦은 공부             

 현대적인 경영 기법 가운데 하나가 경영자의 아내를 경여에 무관심하도록 놓아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우리나라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은 최고경영자 부인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 하고 나서 공부한다는 것을 과히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40대가 넘어서 공부한다는 것, 그것도 남편의 교육과정에 딸린 부록 같은 컬리큐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몇 군데 최고경영자 부인 교실에 강의를 나가면서 만난 여성 가운데는, 경영자 아내의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좋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감사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도 많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재충전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경영대학원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 여성도 있었다. 

 DJ는 나이에 상관 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일깨워 주었다는 면에서 아주 괞잖은 노인장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희호 역시 나이에 상관 없이 공부한 여성이고, 더구나 별난(?) 남편 만난 덕분에 예정에 없던 공부를 숫하게 하게 된다. 

 여성 문제는 물론, 일반 사회 문제, 인권 문제 등 각 분야에 막힘 없는 공부를 해 온 이희호지만  그것 가지고는 어림 없었다.        “나중엔 법률 공부까지 하게 되었다. 변호사가 변론을 거절했을  때는 물론이고 변호사가 있다 하더라도 남편을 살려내기 위해선 그 부분의 공부를 안 할 길이 없었다. 육법전서까지 사다 놓고 공부해야 했다.” 

 남편을 방임하거나 무관심 하기 커녕은 팔자에 없는 육법전서의 깨알 같은 글씨와도 씨름해야 했던 이희호에게서, 뒤늦은 공부는 때로 ‘필요에 의한 공부’일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배운다.

 남편을 방임하지 말라.

 언제 어디 가서든지 아내를 의식하도록 만들라. 그렇다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면 남편은 그때부터 아내를 속이려고 노력한다.

 그의 시간과 공간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면서 더러 비리(?)가 눈에 뜨이더라도 심하지 않으면 눈 감아 주는 관용을 베풀라. 허지만 항 상 아내를 의식하도록 만들라. 

 같이 공부를 하러 다니건, 비서하고 친하건, 아내의 콧김으로 사장실 벽을 반쯤 공개하든, 물결같은 부드러움으로 그를 가득 채우라.

 방임하면 사고치는 존재, 그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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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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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지음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희호와 DJ의, 사랑과 정치와 고뇌의 시대사(時代史). 이 휴먼 스토리 겸 석세스 스토리 속에 담겨진 어두웠던 시대의 지도자가 주고 받던 로맨스와 민주화의 염원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 이 나라 여성들이 꼭 읽고 알아야 할, 남편에 대한 여성의 리더십과 팔로우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