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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8 ]

우리가 이희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이희호의 인생은 단순한 성공스토리가 아닌...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12/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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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8 ]

      필요할 때 돈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아내들이 이희호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     © 운영자

 

    돈이 힘을 발휘하면 여자의 얼굴엔 웃음이

                 아내는 만능이다. 아내는 남편을 위한 안전장치일 

                    수도 있고, 남편의 주장을 받쳐주는 공감대일 수도 있고, 

                   지친 남편을 일으 켜 세우는 연료공급원일 수도 있다.

                    

   

 

      남자의 본업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남자는 자나깨나 여자가 행복한 사회의 창출을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평생 주장하던 것이고,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유언이다.

 여자가 행복한 사회의 창출--남자는 그것을 그의 본업으로 삼는 데에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난 의미가 있다. 

 여자가 돈 문제로 피부가 거칠어지고 얼굴에 깊은 우수와 그늘과 슬픔이 깃들게 만드는 사회라면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울하고 슬픈 사연을 가진 여자가 많은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여성의 삶에 불편함이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반세기 전부터다. 

 그런 사회라면 저주받아야 한다.

 전쟁이 치뤄지고 있는 동안의 사회가 그렇고 혁명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의 사회가 그렇다. 여자가 돈 문제나 생활 문제로 잠 몯 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를 필자는 증오한다. 

 그런데  그 증오와 상관 없이 그런 시대가 마치 점령군이 진주하듯 하루 아침에 우리들 곁에 와서 버티고 있던 시대가 6.25고 IMF 다. 

 돈의 즐거움이 돈의 어려움으로 바뀌어 가는 세상의 여성들은 행복하지 않다. 

 IMF 같은 것은 사실 그 자체가 별 것 아니다. 오직 한 국가의  돈에 관한 사항일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은 힘을 상징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돈을 이길만한 어떤 힘도 아직은 발명되지 않고 있다.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온갖 것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돈이고, 이룰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론이 돈이다.

 기업이 돈관리를 잘못하면 부도가 난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돈 관리가 국가 관리다.    

 우리가 겪어야 했던 IMF도 돈 관리를 잘 못한 데서 온 것이다. 

 돈을 벌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고, 관리는 더구나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맡으면 바로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알려 주려고 IMF는 우리에게 왔다고 믿는다. 

 돈은 인간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인간 평가의 절대 기준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힘들어도 좀 견디기가 쉬웠을 것이다. 

 허지만 돈은 인생의 최고 가치이며 그 이외의 가치는 의미가 없다는 사람에게 IMF는 더욱 견디기 힘든 고비였을 것이다. 

 

 

       파는 기술 

 

 우리에게 돈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큰 의미와 큰 결정권을 가지고 다가 온 적이 없다. 우리 민족에게 돈의 관리를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이처럼 실감나게 현장학습 시킨 역사도 없었다.

 또한 돈을 버는 데는 파는 것이 제일이다, 즉 인생 최고의 기술은 파는 기술이라는 것을 6.25나 IMF 이상으로 쎄게 가르친 교과서도 없었다. 

 그렇다. 그것을 잘 해야 개인은 부자가 되고 기업은 계속 발전하고 국가는 가난을 떨치고 일어나 번영한다. 

 미국이 잘 사는 이유도 바로 그거다. 자동차나 컴퓨터나 무기나 헐리우드의 영화나, 만드는 기술도 대단하지만 파는 기술이 탁월한 나라였기에 오늘날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미국은 생각 자체가 다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세일즈맨’이라고 하면 떠돌이 장사치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 하는 것이 세일즈라고 생각하던 시대에, 미국에서는 “당신에게는 세일즈 소질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아주 큰 칭찬이다. 

 벌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팔거나 일을 해서 돈이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즐거움을. 그것이 바로 버는 재미이다. 

 

▲    이희호여사가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어느 날 청와대에 이희호 여사와 3분의 전 퍼스트레이디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희호 여사가 처음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운영자

 

  6.25 때 얼마나 많은 소년 소녀가 검이나 양담배 같은 것을 팔러 다녀야 했던가? 박단마가 부른 ‘슈우샤인 보이’라는 대중가요가 유행할 정도로 슈사인 보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필자도 슈우샨 보이였다. 꽤 유능한 슈우샨 보이였다.

 버는 즐거움을 일찍 알긴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것은 비참한 추억으로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 비참한 슈샤인 보이 콤플렉스를 벗어 날 수 있었다. 

 사업이건 장사건 슈샤인 보이이건 버는 데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버는 기술’의 위대함을 눈치 챘다. 

 그러나 IMF나, 또는 다른 이유로 해서 그 버는 기술이 다시 비참한 추억으로 작용할지 모를 세대들을 생각하면, 특히 돈에 시달려 피부색조차 변해 버릴지 모를 여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혀 온다. 

 그 가슴 아픔을, 그 여성들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오직 파는 기술, 버는 기술일 뿐이다.  

 그런데도 파는 기술을 우습게 알고, 천한 것으로 알아 온 우리의 유교적 전통과 국민의 의식의 큰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DJ가 “나는 세일즈 대통령이 되어, 어디 가서든지 세일즈를 해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세일즈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은 그 살얼음 같은 IMF 치하에선 참으로 고무적이었다. DJ 역시 버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다. 

 1945년에서 6.25가 날때까지 목포상운을 경영하면서 꽤 큰 돈을 벌어 본 사람이기에 그의 ‘세일즈 대통령’ 선언을 국민은 믿고 싶어 했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낸 사람은 행복하다

                    결혼이 야속스럽게 생각되거든 결혼에 있어 꼭 필

                    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혼에게 배척당하지 말

                    고 결혼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나면 결혼이 주는

                    즐거움을 쉽게 찾아낼 것이다. 

                  

      처절한 기술

 

 돈이라면 쓰는 재미만 알았지 버는 재미는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시대에가 어렵게 살게 되어 있다. 아니 쓰는 재미는 저리 가라이고 버는 재미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시대는 평등하게 시작되었다.  

 파는 기술이 버는 기술이다. 돈 만드는 기술 가운데 파는 기술 이상은 없다.

 6.25 때 같으면 또 몰라도, 전쟁도 아닌 세월을 전쟁 이상으로 비참하게 보내야 했던 이희호에게는 돈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그 시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을 나오고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그녀가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갖게 되었을까?  친가나 외가나 모두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이희호가 돈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면 분명히 결혼 후에 터득한 기술이라는 것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것은 참으로 처절한 기술이었다. 기술이라기 보다는 생존수단, 또는 자기 지탱수단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녀는 수공예품을 뜨개질 해서 돈을 만들기도 했다. 뜨개질 보따리를 아예 핸드백과 함께 들고 다니며 쉴 새 없이 뜨개질을 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남편을 면회가서 기다리는 시간에나, 차를 타고 가거나 여럿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빠른 솜씨로 보라색의 숄이나 머리 수건, 또는 목도리 같은 것을 뜨개질 했다.

 돈을 만드는 것도 목적이었으니까 뜨개질도 혼자서 하지 않고 집단으로 했다. 76년의 명동 31만세 사건으로 구속된 수감자 가족들도 함께 했고, 80년 국가전복 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수감자 가족들과도 돈을 만들기 위한 수공에 노동에 깊이 빠졌다.

 만들기만 한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팔아야 했다. 팔아서 수감자들을 위한 영치금으로도 썼다. 또  연고가 없는 구속 학생들이나 무의탁 수감자에게도 돈을 보내 주곤 했다. 

 방석이나 털실이불도 만들었다. 수감자들을 위한 양말이나 내의도 뜨개질 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안 뜨이게, 몰래몰래 수예품을 팔아 주었다. 

 외국에도 보내서 외국인들도 그 수예품들을 살 수 있게 했다. 

 이희호와 많은 사람들이 있는대로 수예품을 만들어 파는 것을 알아서 그랬을까, 시중에 보라색 털실이 바닥이 난 때도 있었다. 

감시하는 사람들이 보라색 털실을 못 만들게 하거나 못 팔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 대신 외국에서 보라색 털실을 수입해다가 계속 수예품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실을 수입하여 제품을 만들어 외국에까지 내보냈으니, 수입업에 제조업에 수출업까지 겸한 셈이다. 돈 만드는 그런 능력이 이희호에게는 있었다.

 

▲   김대중기념관의 상량식이 있던 날...손수 붓글씨로 상량식에 사용할 ....  © 운영자

 

 

      아끼는 것도 버는 것

      

 이희호는 특히 계산이 아주 분명했다. 서울 사람들 표현으로는 “경우가 밝다”는 것인데 받는 것은 어땠는지 몰라도 주거나 갚는 것은 분명했다.

  결혼했을 당시 DJ에게는 선거 빚이 남아 있었다. 그 빚을 떠맡은 이희호는 채권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서 갚을 날자를 결정했다. 갚을 날자를 정했다고 하더라도 돈이라는 것이 그렇게 인간이 약속을 잘 지키도록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약속 지키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그럴 적마다 이희호는 채권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늦은 것을 설명하고 사과하고 말미를 요청해서 다음에 갚을 날을 다시 약속하곤 했다. 그리고 끝내는 그 선거 빛을 이희호는 다 갚고 말았다. 

 이희호의 인간적 매력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처한 여건과 상관 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마는 점이었다. 자기와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진 선거빚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타협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희호는 돈 문제에 관한 한 융통성 보다는 원칙주의자였다. 뜨개질로 돈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싫다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무리한 값을 부르지도 않았다. 

 털실 색깔은 주로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은 기독교에서 고난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수감자 가족들이 시위나 항의를 할 때 입는 옷도 유니폼 처럼 똑같이 해 입었는데 그 색깔도 보라색이었다.

 돈을 만드는 기술에다가 신앙적인 상징까지를 가미한 보라색이었는데, 이런 종류의 조직적인 두뇌 플레이의 선두에는 의례 리더격인 이희호가 있었다. 

 주로 수감자들을 위해서 만들어 판 것은 털실로 된 수예품만이 아니었다. 십자가를 색여 넣은 둥근 메달이 달린 목걸이나,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던 초대 크리스찬들이 암호로 삼았다는 물고기 모양의 목걸이도 만들었다. 물고기 모양의 손잡이를 장식한 티스푼 등도 만들어 팔았다. 

 감시하고 미행하는 기관원들은 못 마땅해 하면서도 뜨개질 하는것까지 금지시키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면 그 뜨개질이나 기타 돈 만드는 작업조차 감시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결혼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 걱정이다

                 불행은 행복이 몸을 의탁하는 여인숙이고,행복은 불행이

숨어 사는 숙소이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 잘 모르는 낯선

                    얼굴 같으면서도 만나면 반가운 척 떠들썩한 인사나누기

                    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스승의 길         

 

 아내에게는, 그녀의 남편이 정치가가 아닌 경우에도 돈 만드는 능력이 요구된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 능력은 필요하다. 

 특히 IMF나 불경기로 남편의 능력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시대에는, 돈 만드는 능력이 선택과목, 또는 필요충족 조건이었다면 비상시에는 전공과목에 필요불가결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오랜 교직생활에서 은퇴한 M여사는 남편의 사업 부도로 인생 자체가 망가져 버린 듯한 절망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아직 아이들이 부모를 모실만큼 연령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서라도 생활비는 벌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다. 

 처음엔 “교육자 출신이  그 처지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위로 속으로 도피했다. 그 위로를 핑계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 속에 숨은 것이다. 그러다가 아직 움직여야 하는 나이의 남편이 교통비조차 없어서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자 M여사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것이 불법인지 적법인지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동네 아이들을 뫃아 놓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직자였기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면, 교직자였을 때 하던 일이면 되지 않느냐고 나선 것이다. 

 그럭저럭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남편도 가르치는 길에 뛰어 들었다. 워낙에 눈설미가 좋고 손재주 있는 사람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는 데도 남보다 빨랐던 남편은 시대 조류에 맞는 첨단 직업인이 되었다.

 요즘 말로 SOHO(Small Office, Home Office)라고 부르기 알맞게, 세들어 살고 있는 연립 주택의 방 하나를 컴퓨터 가르치는 방으로 개조하고 우선 동네 아줌마들을 하나 둘씩 초청하여 컴퓨터를 가지고 학습지를 지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M여사네 집은 당시 ‘스승의 집’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M여사는 전직 스승에다가 현직도 스승이요, 그 남편은 컴퓨터로 학습지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스승이니까 더욱 스승이라고 동네 아줌마들이 놀리면서 지어준 별명인데 M여사 부부는 그 별명에 아주 만족해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것은 물론이고 인생이 망가진 것 같던 절망감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밑천 안 들이고 둘이서 버는 소득보다, 더 의미 있는 소득이었다. 

 

 

▲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장..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한 자리에 참석한 역사적인 날에....  © 운영자

 

       처녀 때 하던 일

                        

 많은 여성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IMF 때 얘기다. 확실한 전공이 없는 여성들은 세일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미용사 자격증을 따 놓았던 A여사는 친구의 미용실에 나가고 있다. 살고 있는 45평 아파트의 방 하나늘 전세로 내놓고 들어 온 돈으로 친구의 미용실을 동업하기로 했다. 남편이 20여년간 다니던 은행에서 이유도 잘 모르는채 밀려난지 8개월만이었다. 

 도예과 출신인 B여사는 학생 시절에 이천 근처에 자주 다니던 도자기 가마를 다시 찾아다니며 작품을 구어 실비만 받고 측근들에게 한 점 한 점 팔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 엄마가 이조 자기 만드는 예술가라고 좋아하고 있다. 공무원이던 남편은 이유 없는 권고 사직을 항의하기는 커녕 사법 처리 안 된 것만도 감지덕지 해야하는 이상한 분위기에서 옷을 벗었다. 

 C 여사는 친정 이모가 하고 있는 냉면집에 나가고 있다. 희망은 장차 2대째 이어 오는 이모네 냉면집의 체인점을 차리는 것이지만, 남편의 회사가 부도나지 않았다면 이모네 냉면집에는 공짜 냉면 먹는 날만 드나들었을 것이다.

처음엔 반대하던 남편도 얼마 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요리학원에를 다니며 요리사 자격증 따느라고 담배까지 끊고 열심이다. 

 D 여사는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잘 나가던 시절에 하나 둘씩 사뫃았던 그림을 팔며 처음엔 눈물도 많이 쏟았다.  허지만 그림 판 돈이 2-3천만원이 되면 그 돈으로 남편의 작은 사무실을 얻어 주리라는 희망에 눈물을 삼키며 참았다. 그러는 한 편 열심히 창업 설명회를 찾아 다니다가 최근에 독서지도교사 자격증을 딴 후 독서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행복한 얘기는 아니다. 여성들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또는 직업적 성공에 의한 사회기여를 하기 위해서 나섰다면 당연히 축하의 전보라도 받아야 한다.

 허지만 오직 돈을 만들기 위해, 절망하는 남편의 절망을 구제하기 위해, 또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나섰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내의 돈 만드는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

 아니 이런 저런 여건 따지기 이전에 아내가 돈 만드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능력 없으므로 해서 남편에게 눌려 살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밝은 일인가?

 이희호가 지녔던 돈 만드는 능력은 처절한 살아남기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이희호는 전혀 처절하지 않게, 거의 즐기는 기분으로 그 돈 만드는 능력 발휘에 몰두했다. 

 비록 남편을 위해 미혼 시절의 경력까지 내걸고 나섰다 하더라도 괴로워 하지 말자. 오히려 남편을 위해 나섰다는 그 뿌듯한 긍지를 어려운 시대에 찾은 귀한 의미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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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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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지음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희호와 DJ의, 사랑과 정치와 고뇌의 시대사(時代史). 이 휴먼 스토리 겸 석세스 스토리 속에 담겨진 어두웠던 시대의 지도자가 주고 받던 로맨스와 민주화의 염원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 이 나라 여성들이 꼭 읽고 알아야 할, 남편에 대한 여성의 리더십과 팔로우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