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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보복하지 말라, 필요하면 원수도 용서하라 [DJ식 성공법12]

정치적 보복은 반드시 다른 보복을 물러온다. 여당도 야당도, 서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결국....

DJ식 성공법 | 기사입력 2020/08/1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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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제12법칙

보복하지 말라, 필요하면 원수도 용서하라

사형선고 받고 유언 "정치적 보복하지 맙시다!"

 

[yeowonnews.com=김재웡칼럼] DJ가 대통령이 되면 보복 정치를 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취임사에서도 보복 정치를 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했고 그보다 20여 년전 사형 선고를 받은 최후 진술에서도 하느님의 명령이고 나의 유언이오 동지들, 보복하지 맙시다"를 외쳤다. 죽음을 여러 차례나 뛰어넘은 그의 스케일로 보아 보복 같은 행위는 소인배나 할 짓이지 DJ 같은 통 큰 지도자의 할 일은 아님을 우리가 믿자.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된다. 경쟁이 심한 직장에서도 또 살벌한 사업 경쟁에서도 보복은 필요 이상의 정력 낭비고 시간 낭비임에 앞서 성공을 망치는 중요 요인이다.

 

▲ 정치적 보복은 옹졸한 짓이다. 지금도 정치적 보복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DJ에게 다시 배워야....    © 운영자

 

큰 것과 작은 것

DJ는 오랫동안 미련하거나 무모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미련하게 보인 것은 그 스스로 달걀이 되어 군사 정권이라는 바위에 계속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보인 것은 약게, 또는 잔머리를 굴려서 요령껏 투쟁하지 않고 군사 정권이 싫어할 것만 골라서 투쟁했다는 데서 연유한다.

 

예를 들면 군사 정권이 언론에 대해서까지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금기시해 왔던 통일 문제를, 선거 때만 되면 꺼낸 것이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들고 나왔다.

또는 군사 정권이 자기들이 창안한 것 가운데서도 유난히 애국의 심볼로 떠받들던 향토 예비군 제도의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거는 등 군사 정권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무모해 보일 만한 정책을 계속 내놓는 바람에, 위험한 인물이란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러나 DJ로서는 자기의 투쟁 방식이 무모해 보이건 미련스러워 보이건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군사 통치로부터 민주 정치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적 소신이었고, 그 민주 정치를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 한 번 이끌어 나감으로써 정착시키겠다는 야심이 있었기에, 군사 정권이 조작한 것이 분명한 '위험인물' 취급에 대해서는 거의 무신경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무신경해 보인 것이 아니라 무시했다. 변명해야 그의 변명을 들어 줄 그들이 아니었으니까오직 그는 자기의 소신과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안위나 일신의 편안함을 거의 포기했다DJ는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별이 너무 분명했다고통스러우나 큰 것이기에 지키려 했고, 아쉽기는 하나 작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버리려 했다그것이 너무 분명해서 인간이 겪기엔 너무 벅찼을 고통과 싸워야 했다.

 

▲ DJ는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발언이 '동지 여러분 보복하지 맙시다' 였다. 거기서 우리는 DJ의 통 큰 리더십을 본다     © 운영자

 

보복의 논리

DJ는 그동안 너무 많은 정치적 탄압을 받았으므로 집권을 하면 무서운 보복을 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보복하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의 정적이었다.

선거 때가 되면 유권자들 앞에서 터놓고 그런 연설을 하는 인사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그런 소문을 제조하고 공급하는 회사라도 있는 것처럼, 소근거리는 듯한 은밀함으로 입에서 입으로 번져 나가게 했다.

심지어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모임에서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92년 대선 때의 저 유명한 부산 초원 복집 사건까지 터져 그를 괴롭혔다.

그가 집권을 하게 되면 그의 고향이요 그를 오래도록 지지해 온 호남 사람들을 등용하기 위해서, 매사에 그를 비토해 온 영남 사람들을 모든 공직에서 몰아내리라는, 영남 출신 인사들에게는 제법 먹혀들 법한 설득력까지 지닌 보복의 논리가 가는 곳마다 퍼져 있었다.

몇 차례나 죽이려는 사람들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었기에 그 치가 떨리는 수난을 안겨 준 사람들에게 보복하리라는 추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

거기에 덧붙여 가족들의 고통과 측근 참모, 또 참모들의 가족에까지 뻗쳤던 불행의 손길에 대해서도 보복하리라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아들들과 며느리, 손주까지 포함한, 옛날식의 3족이 멸하거나 유배당하는 고통이 아니더라도, 개명천지에 당한 폭력적인 일들이 너무 깊은 상처로 남아, 보통 사람 같으면 보복을 안 하는 것이 이상하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 고통이나 울분보다 더 쓰라렸을, 수난에 추가된 긴 세월 동안의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16년여에 걸친 기나긴 연금 생활을 겪은 DJ이기에 힘이 생기면 보복하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DJ 유언하다

그러나 필자는 DJ가 그런 종류의 개인감정을 정치에 개입시킬 소인배는 아니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그의 전임 대통령 가운데는 집권 초기부터 임기 말에 힘이 빠지기 직전까지 오직 자기의 야당 시절에 기분 나쁘게 군 사람들만 골라서 골탕먹이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나라를 망친 졸장부도 있었다.

지도자로서 품이 너무 좁은 졸장부는, 꼭 필요해서, 가슴에 안아 주어야 할 어떤 사람도 안아 주지 못한 채 독선과 아집으로 임기를 끝낼 수도 있다.

정치를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도 그렇게 하면 나라 망친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정치 10단의 DJ가 아무리 한들 그 '엉망 덩어리' 같은 짓을 답습이야 했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DJ에게 보복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그는 그 점에 대해 스스로 유언을 하기도 했다.

DJ는 아주 분명하게 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자기가 죽은 다음 살아 있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유언으로써 간곡히 당부한다.

여기서 잠깐 그 유언의 현장으로 가 보자.

"김대중, 사형

그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80917일 오전 102, 남산 기슭의 육군 본부 대법정에서였다.

그보다 3개월 전,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그의 최후 진술을 보자.

"나를 죽이려는 것이 이 재판의 의도라면 나는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당할 것입니다나는 내가 죽은 뒤에라도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회복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때가 되면 먼저 죽어 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행해지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소망이자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 대통령이 되자마자 DJ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가당한 것이 분명한 그의 정적이었던 JP를 총리로 임명 DJP 정부를 만들어.... [사진=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박정희에게 꽃을

 

정치 보복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DJ 스스로 나의 삶 나의 길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미 박정희의 묘지에 헌화했다.

박정희는 DJ에게 누구인가?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겨루던 70년대부터의 라이벌이었으며, 자기를 핍박하고 죽이려는 시도까지 했던 DJ의 힘겨운 투쟁 상대였으며 그토록 괴롭히던 군사 정권의 보스였다.

그토록 핍박하던 박정희의 묘지에 꽃을 놓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권의 무상함을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 박정희의 묘 앞에서 DJ가 보복을 맹세했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DJ에 대한 무지가 이만저만이 아닌 사람일 것이다.

그 비극이 마침내 자식들에게까지 미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마약 사범이 되고, 두 딸들도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하는 등 비참한 처지에 빠진 박정희의 묘지에 꽃을 놓으며 DJ의 가슴에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아마도 DJ는 박정희의 묘 앞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가슴에 심으며 보복은 없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 그는 박정희 시대에 크게 힘을 쓰던 인물들과 DJT 연합을 했고, 보복이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과시함으로써 정권 교체에 성공할 수 있었다.

 

DJ와 간디

 

그는 비폭력 평화주의자이다.

투사이긴 하지만 폭력을 거부한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찬동한다.

DJ는 투쟁의 방법에서도 간디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했지만, 정권을 손에 잡은 뒤에도, 즉 힘이 생긴 뒤에도 폭력적 보복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간디의 풍모를 풍기리라고 필자는 예견했다.

간디의 비폭력은 영국과의 투쟁에서, 현대식 무기로 무장했고 섬나라 사람들다운 침략 근성에다가 잔인성까지 구비한 영국군에게 서투른 폭력을 휘두르다가는 인도의 국민과 국가 자체가 살아남기 어려우리라는 전략적 측면도 있고, 종교와 철학의 원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간디는 외친다.

"악을 보고도 방관하는 것은 폭력보다 더 나쁘다.”

악을 상대로 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 간디의 일관된 논리였다.

비폭력적이긴 하지만 저항은 계속했다는 점에서 DJ와의 공통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필요하면 원수라도 용서하리라는 그의 평화주의의 클라이맥스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었다.

노태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DJ에게 있어 전두환은 누구인가?

박정희가 쓰러진 후의 서울의 봄을 빼앗아 간 장본인이며, 마침내 DJ에게 죽음을 선사하려 했던 신군부의 보스가 아니었던가?

그 전두환과 그 노태우를 사면하자고 제의했을 때, DJ에게 보복할 뜻이 없음을 많은 국민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수많은 핍박을 당하고도  정치적 보복을 전혀 하지 않은 DJ가 이 나라 후배정치인들에게 남긴 용서의 교훈은.....   © 운영자

 

통 큰 평화주의자

복역중이던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앞장 섬으로 해서 그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해하는 사람들 편에서도 DJ의 이러한 관용은 아무리 정치적 목적으로 그랬다 쳐도 보통 스케일로는 안되는 일임을 인정했다.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도 동지들, 보복하지 맙시다"를 외칠 수 있었던 DJ의 통 큰 평화주의는 국제적으로도 이미 알려지고 인정 받은 바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폴란드의 바웬사와 함께 세계 3대 민권운동 지도자로 알려진 DJ, 그런 이미지나 명성에 걸맞게 노벨 평화상 후보로 11번이나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3대 민권 운동 지도자는 모두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민권 운동의 승리인 셈이다.

그가 철모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정객이라면 보복에 앞장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DJ는 이미 보복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보복을 뛰어넘어 관용의 단계로 들어선 그에게서 오히려 강자의 풍모가 풍긴다.

그는 보복하지 않을 것이며 보복해서도 안된다. 경제 회복과 남북 통일 등 큰 문제가 눈앞에 쌓여 있어 사실은 보복에 빼앗길 만한 시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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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활용팁

• 적을 용서하면, 적도 내 편이 된다.

웃으며 용서하는 마음을 키워라. 그래야 큰 인물 된다

• 용서할 줄 모르면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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