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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한국여성詩史<12>

박경리의 문학은, 그 순수성과 역사의식으로 해서 더욱 빛난다. 그가 남긴 글들은 우리의 빛나는 문학유산...

홍찬선 | 기사입력 2020/09/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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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2> 박경리

남편 및 아들과의 사별을 『토지』로 이겨낸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글을 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고 평소에 지인들에게 말했다는 박경리작가의 집필중© 운영자

 

흙에서 와서 토지를 쓰고 흙으로 돌아갔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했다*

 

하늘이 그를 낳았을 때 하도록 했던 일

반드시 이루도록 그토록 많은 시련을 주었다

스물다섯 살, 황해도 연안중학교 교사였을 때

6.25남침이 일어났고 죽고 죽이는 난리 통에

남편과 사별 당했다 

 

네 살 아들과 다섯 살 딸 남긴 채, 

이념은 피비린내로 평화를 깨뜨렸고

동족상잔은 신혼가정의 단꿈을 산산조각 냈다

이웃은 적이 됐고 원한은 또 적을 만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는 건 또 전쟁이었다

 

어렵사리 신문사와 은행에 자리 얻어

일하면서 글을 썼다 

글쓰기는 잿더미로 변한 서울에서 

남편마저 떠난 폐허 속에서 두 아이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  글쓰기 다음으로 박경리가 사랑한 것은 땅....토지였다   © 운영자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을 때

열 살 밖에 안 된 아들이 갑자기 아빠 따라 갔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게 이런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을 온몸 온 맘으로 겪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불행을 원망하지도, 불행에 숨지도 않았다

오로지 글 속의 삶으로 승화했고

오로지 글 속에 쉼터를 마련했다

오로지 글 속에 오늘과 내일이 있었다

 

병인 기해 을축 병술, 사주팔자가 

무너질 수도 있었을 삶을 잡아 주었다

추운 겨울에 따듯한 태양을 받아 잘 큰

꽃나무가 아름다운 향기를 널리널리 

퍼뜨리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

 

▲     © 운영자

 

마흔넷 불혹(不惑)이 됐을 때 

토지(土地)를 쓰기 시작했다

원주시 단구동으로 이사해 

예순아홉까지 스물다섯 해 동안

토지에 매달렸다

 

글이 게으름피울 땐 호미를 들었다

글이 앙살부릴 땐 삽으로 땅을 팠다

글이 배곯는 소리 낼 땐 닭똥 밥을

열무 고추 토마토 도라지 얼갈이배추에

듬뿍듬뿍 퍼 먹여 주었다

 

글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가 됐다

글에서 찢어진 역사는 다시 이어졌다

글에서 갈라진 계급은 서로 화해했다

글로 권위를 만들었고 사표로 존경받았다

글이 삶을 지탱했고 글이 죽음으로 이끌었다

 

▲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한 박경리(왼쪽)  © 운영자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

 

그의 바람은 시대에 대한 역설이었다

그의 바람은 선량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무를 그의 모진 인생에 빗댄 것이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노벨문학상 받아야 한다고 남긴 마지막 숙제였다

 

 

▲  살아 생전의 박경리를 만나지 못했지만, 박경리의 동상을 찾은 홍찬선작가    © 운영자

 

* 박경리,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서울: 마로니에북스, 2008. 2019), 16쪽에서 인용.

** 명리 전문가인 청전 박명우 선생은 “을목(乙木)이 병화(丙火)를 보는 사주에,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인기가 높은 예술가들이 많다”며 “박경리 작가는 사주에 맞게 명작을 많이 쓴 큰 작가로 사셨다”고 풀이했다.  

*** 박경리, <일 잘하는 사내>, 『박경리 유고시집』, 36쪽에서 인용.

**** 박경리(朴景利, 1926. 12. 2.~2008. 5. 5): 경남 통영시 명정리에서 출생. 본명은 박금이.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김행도 씨와 결혼, 딸 김영주를 낳았다. 김영주는 훗날 시인 김지하와 결혼했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 서울로 피난 왔다. 전쟁 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사망했고, 3년 뒤에 아들도 죽었다. 스스로 겪은 전쟁경험을 다룬 장편소설 『시장과 전장』(1965년)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받았다. 

1964년부터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994년 8월15일 25년 만에 5부16권으로 완간했다.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를 받았다. 2008년 5월5일, 폐암으로 서거해 통영시 미륵산 기슭에 안장됐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사후에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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