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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여자라는 멍에와, 끊이지 않는 도전에 맞선 선덕왕...한국여성詩史<13>

여성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하나의 손해이고 위기이기까지 했던 역사. 아니 지금도 여전히 여자라 해서....

운영자 | 기사입력 2020/09/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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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3> 선덕여왕

여자라는 멍에와, 끊이지 않는 도전에 맞선 신라왕 

삼국통일의 기반 닦은 신라 첫 여왕 덕만(德曼)

 

▲  여성으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어도, 그 시대 신라 왕가에서 여왕이 탄생했으니.....사진은 TV드라마로 방영된 '선덕여왕'의 한 장면...     © 운영자

 

기회는 잡는 사람의 것이다

바람처럼 다가왔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기회도 꽉 움켜쥐면 내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다가오는 기회를 

거부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꽉 잡았다

 

가시 밭 길이었다

여자로서 신라왕이 된다는 건 모험이었다 

남자들이 쳐 놓은 그물과 멍에를 벗어야 했다

백제와 고구려, 왜의 도전이 끊이지 않았다

여왕이라 이웃나라가 깔본다는 모욕도 참아야 했다*

 

덕만은 꺾이지 않았다

두 사람과 세 번 결혼으로도 풀지 못한 여러 정사를

세 가지 일의 기미를 안 지기삼사(知機三事)의 지혜로**

차근차근 해결했다, 분황사를 짓고, 첨성대를 만들었다

황룡사9층목탑을 세워 이웃나라의 업신여김을 갚았다

 

▲  여성이 왕이 되었다는 의외성 사실인 선덕여왕 얘기는,  많은 작가들이 소설로 썼다.  사진은 한소진 작가의 소설 '선덕여왕'의 표지 . 해냄출판사가 냈다   © 운영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여왕으로 즉위한 지 16년 되는 해 정월

믿었던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다

난은 평정했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를 남기지 않고 목숨을 앗아갔다

 

낭산(狼山)의 남쪽 도리천(忉利天)에 있는

왕릉은 여왕의 삶을 반영하듯 쓸쓸했다

덩치는 크되 부실한 잔디에 잡초가 무성했다

선덕왕릉이라고 알려주는 조그만 안내판과

필부의 묘비보다도 작은 비석이 초라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공자도 모르는 남존여비 이데올로기에 찌든

남자들은 덕만의 여왕 됨됨을 깎아 내렸다

여자가 왕이 된 신라가 난세에 망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운명처럼 다가온 기회를 거부하지 않았고 

난세의 여왕으로 신라중흥의 기틀을 닦았으되 

여자로서는 죽은 뒤에도 부당하게 대우받았다   

통일 같지 않은 삼국통일의 공은

김춘추와 김유신, 양김에게 쏟아졌다

 

▲  일반인의 묘비명보다 작은 돌 하나가 세워져 있을 뿐..... 여왕의 묘역은 슬쓸하기만....  © 운영자

 

* 구원을 요청하는 국서를 갖고 온 신라 사신에게, 당 태종은 “여왕이 통치하기 때문에 권위가 없어 이웃나라들이 깔본다. 고구려 백제 양국의 침범도 받았다. 내 종친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 국왕을 삼고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까지 했다. 

 

** 선덕여왕의 지혜를 나타내는 3가지 일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모란에 향기가 없음을 안 일, 옥문지(玉門池)에서 한 겨울에 개구리가 사나흘 우는 것을 보고 백제 비밀군대를 사전에 격파한 일, 자신이 죽을 날자와 장사지낼 곳을 정확히 안 일 등이다. 

 

*** 김부식은 『삼국사기』 <선덕여왕 본기> 끝부분에 “豈可許姥嫗出閨房斷國家之政事乎 新羅扶起女子處之王位誠亂世之事國之不亡幸也(기가허모구출규방단국가지정사호 신라부기여자처지왕위성나세지사국지불망행야)”라며 선덕여왕에 대해 좋지 않은 비평을 달았다. 

 

**** 선덕(善德)여왕 덕만(德曼, ?~647); 신라 첫 여왕으로 진평왕의 큰 딸.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던 데다 성골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불문율에 따라 덕만은 27대 왕에 올라 16년 동안 통치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덕만은 25대 진지왕의 두 아들인 용수(龍樹) 용춘(龍春) 두 사람과 세 번 결혼했으나 자녀를 낳지 못했다. 

덕만의 용모와 성품에 대해 <화랑세기>는 “용봉(龍鳳)의 자태와 천일(天日)의 위의를 지녔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다(寬仁明敏, 관인명민)”고 기록했다. 즉위한 지 11년째인 642년에 백제와 벌인 대야성 싸움에서 대패해 성주인 품석(?~642)과 부인 고타소가 전사했다.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로, 이 사건으로 김춘추는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다가 실패했다. 결국 당에서 원군을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다(660년).   

▲  한국여성詩史를 집필하고 있는 작가 홍찬선.  자신이 쓰는 글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 운영자

 

첨성대를 세워 전문적으로 천문관측을 시작했다. 분황사 벽돌탑을 쌓고 황룡사에 9층목탑을 세워 호국불교사상으로 신라 왕실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재위 16년인 647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 진골귀족들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난은 진압했으나 덕만은 그해 8월에 훙(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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