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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이팔청춘에 산채로 죽은 가야소녀 송현이 <한국여성詩史>

몸종이었다는 죄(?)로, 상전과, 산채로 매장되었던 그 시대 여성의 恨이 되살아난 가슴 아픈 송현의 전설..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0/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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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21>

이팔청춘에 산채로 죽은 가야소녀 송현이

상전이 세상 떠나자 함께 묻힌 순장(殉葬)

 

▲   2007년 12월 창녕읍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발견된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된 송현이 ...모시던 상전이 세상을 떠나자 함께 묻혀야 했던 비운의 소녀 송현이© 운영자

 

역사는 글자로 기록된 것만이 아니다

말은 하지 못해도 

스스로 기록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 대신 써주지 않아도

온몸으로 있는 것 그대로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가 펼쳐진다

 

송 현 이

열여섯 이팔청춘 가야소녀는 

이도령과 한창 사랑을 속삭일 나이에

천오백년 전 그날 비화(非火)가야에서

일어난 일 온 몸으로 증거 하려고

살은 흙으로 바뀌고 뼈는 그대로 남아 

시간 건너뛰어 되살아났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은* 

비화가야 시대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에서

일제강점기 때 야만적인 도굴과 약탈을 피해**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일제가 그날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고

비화가야 때 저질러진 순장을 경고하려는 듯

 

▲  고분에서 발굴된 뼈를 토대로 복원된 송현이....   © 운영자

 

키가 153.5cm로 작지 않았던 

송현이는 목이 길고 허리는 잘록하며

넓고 평평한 얼굴에 금동 귀걸이를 하고

그날 웃으며 죽었을 것이다

모시던 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났으니

함께 가야 하는 그 시대 법에 따라

반듯하게 누워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 비록 이렇게 웃으며 떠나지만

이런 생죽음의 나쁜 관습은 반드시 

없어질 것을 믿으며

아주 먼 옛날엔 주인 따라 죽어 

함께 묻히는 순장(殉葬)이 있었다는 것

알려주려 썩어 없어지는 것 막았을 것이다

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굳센 뜻으로 견뎌냈을 것이다

 

거듭나는 부활이 이런 것이었다

창녕 송현동 15호분 석실 안에서 발견된

여성 뼈를 바탕으로 송현이가 되살아났다

고고학 법의학 해부학 유전학 조형학 물리학…

전문가의 지식과 비화가야 후손들의 간절함이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죽은 

송현이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   복원된 송현이의 전신...  © 운영자

 

이 세상 모든 악을 순화시킬 듯

맑고 깊은 두 눈동자에 

얼굴 균형을 바르게 잡아주며 

오뚝하게 솟은 코

금세라도 그날의 비밀을 털어놓을 듯

지긋이 다문 입술

모든 사람들의 아픔 다 보듬으려고

넓게 자리 잡은 이마

 

그날 웃으며 죽었을 가야소녀는

천오백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비사국 삶을 홀로그램보다 선명하게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글자로 쓰인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기록하지 않아도 

스스로 전할 수 있다는 것

박테리아도 이겨낸 굳센 뜻으로 

알려주고 있다

 

▲  송현이와 함께 묻혔던 금과 구리로 만든 장신구들     © 운영자

 

* 화왕산(火王山, 757.7m): 창녕(昌寧)군 창녕읍과 고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옛날에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 큰불뫼라고 불렸다. 낙동강 하류 평야지대에 있어 실제 높이보다 우뚝솟은 것처럼 보인다.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밭으로 유명하다. 삼국시대 쌓은 화왕산성(사적 64호)과 조선시대의 목마산성(사적 65호)이 있다. 교동과 송화동 고분군 아래에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와 동삼층석탑(국보 34호), 마애려래좌상(보물 75호)과 서삼층석탑(보물 520호) 및 6.25전쟁 때 낙동강 서부전선을 지켜낸 창녕-영산전투승리를 기념하는 창녕지구전승비(UN전적비) 등의 유적이 분포돼 있다.  

 

** 교동과 송현동 일대에 넓게 조성된 비화가야 고분군(사적 514호)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제 학자 시케노 타타시(關野貞)에 처음 알려졌다. 1918년과 19년에 11기의 고분이 발굴되었지만 21호와 31호분을 제외하곤 발굴보고서조차 간행되지 않았다. 이 때 마차 20대와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품들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일부 유물을 제외하곤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송현이: 2007년 12월 창녕읍 송현동 15호 고분에서 발견된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이 이루어졌다. 발굴 당시 5구의 사람 유골이 발견됐는데, 송현이를 포함한 4구는 순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창녕 지역에 있던 비화가야의 비사벌국의 지배층이 죽으면서 그가 거느리던 시녀와 종이 함께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 법의학 유전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송현이의 유골을 복원한 결과, 송현이는 나이가 16~17세의 소녀로, 키는 153.5cm, 허리는 21.5인치였다. 무릎뼈가 닳은 것을 볼 때 반복적으로 무릎을 꿇고 일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송현동 고분에서 나와서 송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송현동 고분을 찾아, 산채로 묻혀진 한 많은 소녀 송현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취재하는 홍찬선작가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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