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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최초로 남사당패 우두머리 꼭두쇠가 된 여자 바우덕이<한국여성詩史>

여자로 태어난 죄.그러나 그것을 죄라고 여기기도 전에,, 무자비한 운명에 시달려야 했던 이 땅 여성선구자들...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0/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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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22>

최초로 남사당패 우두머리 꼭두쇠가 된 여자 바우덕이

신분과 남녀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연예인으로

 

▲ 최고의 인기를 누르며 남사당패를 이끌던 바우덕이....동상으로 남은 그의 모습 © 운영자   

 

가난이 죄였다

가난한 소작농 아버지는 

다섯 살 어린 딸 바우덕이를

남자들 놀이패인 남사당에 넣었다 

 

안성맞춤유기로 유명한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바우덕이는 눈칫밥 먹으며 

줄타기 어름과 땅재주 살판과  

대접돌리기 버나와 꼭두각시놀음 덜미와

탈놀음 덧뵈기와 풍물 등

꼭두쇠 되기 위한 여섯 가지 재주를 모두 익혔다

 

10년이 지나 강산이 변했고

열다섯 바우덕이는 남자가 맡는

우두머리 꼭두쇠로 뽑혔다

여자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풍물 어름 살판 버나 덜미 덧뵈기

그 어느 것 하나 그보다 나은  

남자가 없었다

 

돌부처도 돌아보도록 하는 미모와

손잡이가 달린 작은 북 소고를 치며

선소리 부르는 게 일품인 바우덕이의

불당골 남사당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입을 탔고 입말은 입말이 보태져 

흥선대원군 귀로까지 이어졌다

 

 

▲ 바우덕이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청룡사 부근에 바우덕이사당이 세워졌다     © 운영자

 

경복궁 중건하는 힘든 일터에서

신음하는 일꾼들에게 멋진 웃음을 선사해

정3품 높은 나으리들만 차는 옥관자를

하사받아 바우덕이는 날개를 달았다

가는 곳마다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인생은 잘 나갈 때가 함정이었다

폐결핵 균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꼭두쇠가 되어 오십여 명의 사당패

이끌고 낮에는 공연하고 밤에 이동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힘든 여정에 

여자 꼭두쇠로서 겪었을 스트레스에 

먹거리마저 부실한 결과였다

 

스물 셋,

가난이란 죄를 숙명으로 지웠던

운명은 바우덕이를 

꽃다운 나이에 하늘로 데려갔다

이제 그만큼 고생했으니 

좋은 곳에서 살라는 것인지

고진감래인데 고생만 실컷 하고

즐거움은 누리지 말라는 것인지 

 

바우덕이의 거친 삶은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지

여덟 해 만에 짧게 끝났다

그의 아픈 삶을 지탱했던 몸은

불당골에서 가까운 서운(瑞雲)산 서쪽 자락 끝

개울 만나는 언덕에서 따듯하게 쉬고 있고

 

 

▲ 바우덕이의 묘역...안성시가 매년 바우덕이남사당축제를 열어 그 영혼을 위로하고...     © 운영자

 

그의 무덤 앞엔 커다란 비석이 

그의 삶보다 당당하게 서 있다

개울가에선 청춘남녀가 라면 끓이며

발개지는 단풍에 귀밑이 함께 붉어지고  

 

그가 자라고 배웠던 불당골에 세워진 

바우덕이사당 동상 앞에서

바람은 노을이 되고

노을은 단풍이 되고

단풍은 내맘이 되고

내맘은 가을이 되고

가을은 들국화 되어

겨울 준비 바쁜 꿀벌을 유혹했다

 

가난이 죄였고

신분은 깡패였고

남녀는 폭력이었고

인생은 울퉁불퉁했지만

바우덕이는 가난과 신분과 남녀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연예인으로 살았다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거칠게 살았던 바우덕이는 갔지만

악명 높았던 안성 외아들 난봉꾼은

바우덕이의 재치로 개과천선해 좋은 사람 됐다

바우덕이가 이끈 남사당패 놀이,

풍물 어름 살판 버나 덜미 덧뵈기는

국가무형문화재 3호로 부활했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비상했다

바우덕이는 

안성남사당바우덕이축제로 되살아났다

 

▲ 매년 열리는 안성시의 바우덕이 축제...줄타기에도 능했던 바우덕이의 남사당패가 새롭게 재현되고....     © 운영자

 

* 바우덕이(金岩德, 1848~1870): 본명은 김암덕(金岩德). 안성의 가난한 소작인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안성 서운산 아래 청룡사를 거점으로 활동한 남사당패에 보내졌다. 밥도 먹기 어려운 살림에 입 하나 덜기 위한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열다섯 살에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됐다. 남자가 꼭두쇠를 맡는 게 관례였지만 풍물 어름 살판 버나 덜미 덧뵈기 등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에 매우 뛰어나 전무후무하게 어린 여자가 꼭두쇠가 됐다. 

 

경복궁 중건에 나선 흥선대원군 앞에서 공사판 노동자들의 피로를 풀어준 것이 평가받아 당상관 이상만이 차던 옥관자(玉貫子)를 하사받았다고 전해진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유랑생활 속에 폐결핵을 얻어 스물셋에 사망했다. 묘는 안성 서운산 서쪽 끝자락에 있다. 2005년에 바우덕이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청룡사 부근에 바우덕이사당이 세워졌다. 남사당패 놀이는 1964년 12월7일에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됐고, 2009년 9월30일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안성시에서 2001년부터 매해 9월말~10월초에 ‘안성남사당바우덕이축제’를 열고 있다.   

 

▲ 바우덕이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간 작가 홍찬선...바우덕이 사당 동상 앞에서....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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