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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열 달에 삼천 명 돌본 첫 여의사 박에스터 김점동

우리나라의 선구자들은 모두 고난의 길을 걸었다. 여성은 더욱 그랬다. 박에스터의 희생정신은 그래서...

운영자 | 기사입력 2020/11/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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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30>

열 달에 삼천 명 돌본 첫 여의사 박에스터 김점동

 짧고 굵게 산 서른다섯의 삶

 

▲    박에스터와 남편 박유선.... © 운영자

 

한 사람의 뜻을 이루기 위해선

그 사람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옆 사람의 눈물 나는 헌신적 희생과

주위 사람의 손 발 걷고 나서는 도움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비빔밥처럼 버무러져야 한다

 

서울의 가난한 집 셋째 딸로 태어난 

김점동은 열한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이화학당에 입학했고 타고난 부지런함과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굳센 열정으로

영어와 병원 일을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었다

 

에스터가 된 점동은 

언청이를 말끔하게 고쳐놓는 것을 보고

벽을 허물고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열일곱에 스물여섯의 박유선과 결혼하고

박에스터가 된 점동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녀관...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의 전신이다 © 운영자

 

에스터를 눈여겨 본 

보구녀관(普救女館) 의사 로제타 홀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뉴욕주 리버티공립학교에 들어갔고

박유선이 농장과 식당에서 일하며 뒷바라지 해주어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열아홉 최연소로 입학했다

 

스물셋에 한국 여성으로 첫 의사가 되었다

서재필과 김익남을 포함해도 세 번 째였다

그는 이 기쁨을 온몸 온 맘으로 즐길 수 없었다 

그토록 헌신해주던 남편이 폐결핵으로 쓰러졌다

잘 먹지 못하고 고된 노동이 두 달을 참지 못했다

 

에스터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토록 아껴주고 사랑하던 박유선을 미국에 묻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두 손 맞잡고 떠났던 먼 길을

홀로 돌아오는 길은 더 힘들고 쓸쓸했다

6년만의 금의환향은 굳게 다문 입술로 대신했다

 

▲  미국으로 건너 간  박에스터와 남편 박유선...  © 운영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명성왕후 민비가 일제 군인들에게 무참히 시해됐고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고종은 광무황제가 되어

뒤떨어진 근대화를 따라 잡으려 바쁜 나날이었다

에스터는 보구녀관 보조에서 책임의사로 일했다

 

에스터는 은인인 로제타 홀이 

죽은 남편을 위해 평양에 기홀(起忽)병원을 세우자

인연 줄을 따라 그곳에 가서 

열 달 동안 삼천 명 이상을 돌보았다

엄동설한에도 당나귀 수레를 타고 왕진에 나섰다

 

에스터의 지극한 정성은 

여의사보다 미신을 믿던 사람들을 움직였고

곧 죽을 것 같았던 환자도 수술로 치료하자

귀신이 재주 피운다는 말이 입으로 전해져

아파 그를 찾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     © 운영자

 

몸은 하나이고 

갈 곳 돌 볼 사람은 백사장 모래처럼 많으니

이억만 리 낯선 땅에서 남편을 쓰러뜨렸던 그

못된 병균이 약해진 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서른다섯의 짧고 굵은 삶도 남편을 따라 갔다

 

하늘이 무심한 것이었다

그토록 힘들게 첫 여성 의사 자격증을 따

그렇게 많이 10년 동안 5만 명 이상 치료하며

그토록 헌신적으로 질병퇴치에 노력했는데

그렇게 빨리 떼려간 것은 

 

하늘의 깊은 뜻이었다

그렇게 굳센 뜻으로 

그렇게 착하게 살아온 

한평생을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일찍 거둔 것은

 

▲     © 운영자

 

하늘이 마련한 계획이었다

에스터를 이모처럼 따랐던 셔우드 홀이 

열여섯 해 지난 뒤 한국에 와 

해주구세요양원을 세우고 결핵환자를 돕기 위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한 것은

 

오로지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늘이 내린 소명이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가야 할 사명이었다

밝은 지혜로 몸을 지켜 내는 명철보신은

에스터에겐 너희들의 처세술일 뿐이었다

 

▲     © 운영자

 

* 보구녀관(普救女館): 1887년 서울 이화학당에 설립됐던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 당시 감리교의 의료선교를 관리하던 스크랜튼(Scranton) 목사의 노력으로 설립됐다. 보구녀관이란 이름은 명성왕후 민비가 하사한 것이다. 로제타 홀은 남편 윌리엄 홀, 아들 셔우드, 태어난 직후 세상을 떠난 딸 에디스, 며느리 메리언 홀과 함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돼 있다.  

** 박유선의 묘는 볼티모어 서쪽 로레인파크 공동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1868년 9월21일 한국에서 태어나 1900년 4월28일 볼티모어에서 사망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 박에스터(朴愛施德, 1876~1910. 4. 13): 한국의 첫 여성 의사. 본명은 김점동(金點童). 서울 정동(貞洞)에서 김홍택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1살 때 이화학당에 입학한 뒤 세례를 받고 에스터(Esther)란 세례명을 받아 김에스터가 됐다가, 열일곱 살 때 아홉 살 위의 박유선과 결혼한 뒤 박에스터로 불렸다. 

그는 이화학당에 다니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普救女館)에서 통역과 의사 보조로 활동했다. 1895년 박유선과 결혼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박유선도 공부할 계획이었으나, 둘의 학비를 벌기에 벅차 학업을 포기하고 에스터를 지원했다. 

에스터는 1896년10월, 볼티모어 여과의과대학에 입학해 1900년 6월에 졸업하고 의사자격증의 획득했다. 남편은 에스터가 졸업하기 2개월 전에 폐결핵으로 숨졌다. 에스터는 귀국 후 10년 동안 매년 평균 5000명 이상의 환자를 돌봤다. 과로로 폐결핵에 걸려 1910년 4월13일에 사망했다. 

한국 정부는 2006년 11월, 박에스터를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정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는 2008년부터 ‘자랑스러운 이화의인(醫人) 박에스더상’을 제정해 동문 여의사를 시상하고 있다.    

 

▲    <한국여성詩史>  를 집필중인 작가 홍찬선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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