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月光之功으로 독일 무형문화재 된 강수진 <한국여성詩來 8>

삶이 힘들 때면 강수진의 발을 보라. 편하게 이루어진 성취는 세상에 없다. 강수진의 발이 그것을 증명한다.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3/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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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8>

月光之功으로 독일 무형문화재 된 강수진

 생각을 몸짓으로 표현하다

 

▲     © 운영자

 

변신은 고통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스스로 버리고 

편안한 것을 굳이 허물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으나

아픔 없이 큰 행복은 없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었던 한국무용을 

중학교 1학년 때 발레로 바꾼 것은 행운이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발레에 적합한 체형이고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선생님 격려로 이겨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이루고자 할 때

그것에 집중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나온다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밀어 올렸다

굳센 의지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냈다

 

고등학교 때 하늘의 명이 찾아왔다

베소브라소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을 만나 

영어와 불어를 한 마디 못한 채 모나코 유학을 떠났다

머릿속을 꽉 채운 발레 생각이 두려움을 저만치 밀어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어린 나이에 

혼자 지내는 것은 큰 시련이었다

나 혼자만 모자란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향수병에 빠져 발레를 그만두려고도 했다

 

▲  기자회견하는 강수진   © 운영자

 

그래도 믿을 건 사람이었다 

베소브라소바 스승이 엄마가 되어 

포근히 안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로지 실력만이 살 길이었다

모두 잠든 밤

캄캄한 연습실 한쪽에서 

은은한 달빛만을 벗 삼아 

하루 두세 시간만 잤다

 

월광지공(月光之功),

피눈물 나는 연습으로

높게만 여겨지던 벽을 하나 넘었다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오디션 합격,

열아홉 살 때였다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뛴다 난다 하는 발레리나 사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연습, 연습뿐이었다

하루에 토슈즈를 서너 켤레씩 사면서 

오로지 땀과 몸만을 믿었다

 

이천팔백여 해가 떴다가 지고

팔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솔리스트로 선발될 수 있었다

수석발레리나가 되어 줄리엣이 되고

타니아나 지젤 에스메릴다 마르그리트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   이만큼 고된 나날이, 발 모습이 이렇게 변모하도록 거듭된 연습....발레가 '발의 중노동' 만큼 힘들다는 걸 강수진의 이 발을 보기 전에는.....   © 운영자

 

하늘은 끝까지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종아리뼈에 금이 가서 1년 동안 발레를 쉬었다

삶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무대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려고

 

서른 셋, 

남들이 그만 둘 나이에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슬럼프가 올 때 눈물은 약이 되었다

청량고추를 넣은 아주 매운 음식은 

눈물을 감추기 위한 약이었다

실패한 어제는 어제고 

좌절하지 않고 행복한 오늘을 맞았다

 

고통과 무모가 빛을 발했다

껍질 벗고 새 옷 갈아입을 때

천적에게 잡혀 먹힐 위험이 가장 크지만

헌 옷으로는 새 삶을 살 수 없다는 것

한국무용에서 발레로 바꾸면서 역사로 증명했다  

발레로 사랑과 열정을 전달하는 것

인공지능이 대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발레리나는 자기 몸을 조각하는 조각가라는 것

발레는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알려주는 발레리나의 전설이 되었다

 

▲    몸은 때로 힘들고 괴로와도,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는 날이 별로 없으니...[사진=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 발레리나 김주원과 박세은, 발레리노 김기민 등이 그 뒤 이 상을 받았다. 

* 강수진(姜秀珍, 1967. 4. 24~): 서울 출생. 리틀엔젤스예술단 출신으로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선화예고 재학 때인 1981년12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의 눈에 띄어 모나코로 유학을 떠나 3년간 배웠다. 1985년 아시아인 두 번 째로 로잔국제발레콩쿠르에서 그랑프리(1위), 1986년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입단. 1999년에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의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그 10월엔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에 독일정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캄머 탠처린(궁중무용가)상’(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에 해당)을 받았다. 2016년 7월22일 독일에서 슈트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입단 30년 만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발레단 동료였던 터키인, 툰치 소크만과 2002년 결혼한 뒤, 남편도 국립발레단에서 객원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어떤 글을 쓰든 사실관계 취재를 위해 현장을 뛰는  필자 홍찬선.  사진은 취재하러 가는 길에 군자역에서...©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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