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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수의 먹걸이 인문학

혼밥이 테이블 매너만 망쳐놓으면 다행이지만..<먹거리인문학>

팬데믹으로 인한 식습관의 변화는, 인간이 1 세기에 걸쳐 겪을만한 변화를, 일시에 초래하고 있으니....

서형수 칼럼 | 기사입력 2021/06/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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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평론가 서형수의 먹거리 인문학 4

  혼밥이 테이블 매너만 망쳐놓으면 다행이지만...

1인세대 증가가, 주택문제 고민을 상징?

 

▲  끈질긴 향학열...특히 식산업  분야를 끊임 없이 파고드는 먹거리 인문학의 서형수  필자..이번엔 카이스트가 주최한 먹거리 관련 공부하러 제주도에 떴다   © 운영자

 

          1인 세대 증가 덕분에 떼돈 버는 라면회사

[yeowonnews.com=서형수] 지구는 쉬지 않고 돌고 있고, 먹거리는 날이 갈수록 진화한다. 먹거리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인류의 발전과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먹거리의 형식이나 내용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젠 눈치 보고 사는 시대가 아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뭘 먹든, 어떻게 먹든, 어디에서 먹든, 누구와 먹든....전혀 신경 안 뜬다. 심지어 혼자 살며, 혼자 먹는 문제에 대해선 이제 논의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먹거리에 관한 사회적 형식이나 규범, 또는 사회적 약속 같은 것은 이제 없다.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 먹거리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하는 명제에 대해 이젠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먹는다는 ‘먹거리의 자유시대’가 온 것이다.  

 

허지만 바닷가재나 비프스테이크 둥 육류를 비롯해서 가격대도 비싼 고급 음식만 주로 먹는 인생이 되느냐, 아니면 혼자 라면을 끓여, 주방에서 선채로 먹느냐 하는 문제도 거의 따지려 들지 않는다.  그 결과인지, 1인 세대가 놀랄만큼 늘어나고 있다. 

 

1인세대의 증가와 라면 소비량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1인 가구 아니라도 라면 소비 증가는 세계적이다. 라면 얘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베트남의 라면 소비량이다. 세계 라면 소비 1위는 물론 한국(1인 소비량 75개)이고, 베트남의 라면 소비량(1인 57개)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능가할 기세라고 한다. 

 

최근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 및 KOTRA에 따르면 베트남의 라면 소비량은 2019년 기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한 54억개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414억5000만개), 인도네시아(125억 2000만개), 인도(67억 3000만개), 일본(56억 3000만개)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베트남의 라면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3.1%로,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  혼밥과 혼술은 TV드라마의 소재로 등장...2016년에 방영된 tvN의 '혼술남녀'의 한장면(인터넷 캡처)   © 운영자


여기서 라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의 먹거리 발전 역사에, 라면 소비의 증가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라면 소비는 물론 1인세대 증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요리 만드는 즐거움 손절론’의 찬성자들

조리(調理) 과정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만이 라면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1인세대가 라면소비를 늘인 것만은 사실이다. 라면이 조리 과정의 여러가지를 생략한 것과 같은 이유가, 1인세대의 라면 선호에도 적용된다. 라면이 ‘조리의 즐거움’을 앗아갔다고 하는 불평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간편식의 대부분이 그렇다. 맛과 영양분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고, 편의성에 있어서는 손꼽힐만 하다. 그러나 조리의 즐거움이 식도락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맛과 양(量)..배부르게 먹는다는 점에선 빠지지 않는다. 

 

그 전단계인 ‘준비하는 즐거움’은 상실했거나 손절당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물론 1인 세대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로 식도락가들이 이런 ‘요리만드는 즐거움 손절론’의 찬성자들이다 

 

우리나라의 ‘1인세대=싱글세대’가 올해 처음 9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지난해 국내 인구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그 반면에 ‘1인세대’는 2016년 744만명에서 지난해 906만명까지 불어났다. 정부는 향후에도 세대분화 속도가 더욱 빨라져 1년 내에 ‘1인세대=싱글세대’가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   먹거리 인문학의 서형수  필자...아직도 공후라 다닌다. KAIST 제주 최고경영자 과정  © 운영자

 

행정안전부는 주민등록 인구는 줄어드는데 비해 세대 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가족 구성이 분화하고,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세대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1인 세대의 증가는 먹거리 면에서 따지자면, 혼밥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아주 어려웠던 시절에는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는 문제는 철학적 명제가 되기도 했다. 

 

혼밥을 새로운 시대감각, 또는 새로운 먹거리 습관의 창출이라고 비화해서 생각하는 사람의 착각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실 식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 중 하나이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독립지향적 1인 세대’ 증가와 ‘혼밥 리얼리즘’

그렇게 중요한 식사를 혼자 한다는 건,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6월 1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의 일부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세끼 모두 혼자 식사를 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영양결핍 위험이 3배나 높았다.” 는 것이다. 

세포분열을 하듯 싱글세대가 증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젊은 세대들이 역대급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독립지향적 1인 세대’ 증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고민과 세대분화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들 젊은 세대의 ‘1인 독립선언’을 최근 수년 사이에 폭발한 주택문제와 연관시키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결혼하면 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으니, 젊은 층의 1인세대 독립은, 사실은 이 시대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니까 젊은 세대의 1인세대 창출은 ‘단순한 혼밥’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 해결해야 할 단면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혼밥 리얼리즘’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말하자면 혼밥은, 단순히 ‘혼자 먹는 밥’의 의미를 떠나, 큰 맘 먹고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사회문제의 단면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  혼밥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대세인가? 1인용 메뉴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 (사진은 인터넷 캡쳐_   © 운영자


거기에 인구문제 등이 겹치면, 혼밥은, 해결해야 할 한 시대의 고민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먹는 문제란 그렇게 심각하고 무거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인세대가 늘어나고, 혼밥이 평범치 않은 생활방식을 택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요리연구가들이 1인 메뉴를 개발하는 등, 혼자만의 식탁을 연구하게 되었다. 1인의 삶의 방식은 물론, 1인만을 위한 먹걸이, 1인 세대를 위한 가구 등...그야 말로 1인세대가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시리얼이 혼밥족 늘렸다는 억울한(?) 누명

시리얼의 보급, 또는 시리얼의 일반화가 혼밥족을 늘였다는 낭설은 시리얼에게는 억울한 오해이고 누명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시리얼과 함께 뮈슬리의 소비도 대단하다. 시리얼과 뮈슬리의 차이를, 시리얼은 일반식, 그리고 뮈슬리는 영양식으로 구분하는 요리 연구가도 있는데. 뮈슬리가 당초에 치료용으로 개발되었다는 건 사실이다. 

 

▲ 1인 가구 증가와 시리얼이나 라면 소비 증가는 어쩔 수 없는 추세일지도 모르지만......(사진은 기사 속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운영자

그렇더라도 시리얼과 뮈슬리는 생김새의 차이를 얘기하는 음식전문가나, 음식 평론가도 많다. 사실 뮈슬리와 시리얼의 차이는 곡식류를 어떤 모양으로 변형시켜 만들었는가의 차이 정도이다. 작은 칩 모양으로 생겼으면 시리얼, 납작한 죠리퐁 모양이면 뮈슬리다 .

 

취근에는 시리얼도 오트밀에 사과와 레몬즙을 첨가하고 우유에 말아 먹는 등 오늘날의 뮈슬리와 거의 동일하다. 달달힌 밋이건, 고소한 맛이건, 내 마음대로 먹는 시리얼로 해서 혼밥족이 늘어났다는 주장은, 상상력과 논리력이 풍부한 사람들의 창작으로 취급되고 있다. 

 

아침식사로 시리얼을 먹는 사람들은, 시리얼에 주스나 커피를 말아먹는다. 이는 바쁜 아침 시간에 과일이나 커피를 각각 단품으로 준비해 한 상 차려먹기 힘들기 때문에 과일을 대체할 주스나 식사 후 커피마실 시간마저 줄이기 위해 시리얼에 아메리카노를 타서 먹게 된 것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미국의 시리얼은 꽤나 달달한 편이다. 우유에 말아먹으면 강한 단맛이 우유에 농축되어 녹아들기 때문에 반쯤 먹다가 입에 물리게 된다 그런데 새콤한 주스나 씁쓸한 커피에 말아먹으면 강한 단맛이 상쇄되어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시리얼 애용자들의 ‘시리얼 예찬’이다. 

 

시리얼이건 라면이건 상관 없다. 모두 본인들의 입맛이고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선택이, 혼밥이, 실제로 인구문제로 발전해서 20-30년 후를 생각하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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