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이는 환갑이었다.. 구자관 칼럼 ‘늦깎이 2'

그 나이에 대학 다닌다는 생각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그의 늦깎이공부를 위해 사원 전체가 출근시간부터.....

이정운기자 | 기사입력 2022/03/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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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36> ‘늦깎이 2'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이는 환갑이었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 냐고 누가 묻는다면....

 

▲ 늦깎이 대학생으로, 그것도 환갑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서, 그래도 빠지지 않고 마침내 졸업하기까지.....     © 운영자

 

그 시대엔 사람을, 자꾸 학력만 가지고 따지려고 하니까....

[yeowonnews.com=구자관] 아내가 내 학력을 알았다면, 나하고 결혼 했을까? 사람은 자기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옷차림 등은 남에게 빈축을 받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환갑 나이에 대학에 간다는 것도 그렇다. 본인은 대학에 못간 한이 맺혀, 또는 향학열이 불타 올라, 오매불망 대학 가기를 꿈꿀 수도 있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환갑 나이에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랬다. 누가 대놓고 흉을 보거나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얘깃거리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극복하기로 했다. 사실 그 때 그 나이에 극복하지 않고 무슨 수가 있었으랴? 

 

지금 생각하면 환갑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은, 무슨 허영심도 아니고, 젊어서 못 배운 한풀이도 아니고... 굳이 이유를 댄다면,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시침 뚝 따고 말 할 수도 있다. 

 

결혼하던 당시, 대학을 나왔다고 거짓말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사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겠지만... 결혼 할 당시, 대학에 안 다니고도, 대학 나온 척 하고 결혼을 했다. 그 당시, 아내가 내 학력을 알았다면 결혼 안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꼭 그 이유 때문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건 아니다.

 

아내에겐 학력만 부플린 것이 아니라 집안 사정도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집안사정을 심하게 과대포장 한 것은 아니지만, 집안 형편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학력 문제는, 결혼 당시 아내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엔 자꾸 학력을 가지고 따지니까, 긴 얘기 하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공부 잘 하던 아내는 고등학교때 이미 주산 5단에. 부기 1급 실력이었다. 나중에 대학교 안 다니고 거짓말 한 것이 미안해서, 결국은 고백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학력과 관련해서 거짓말 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열심히 했다. 

 

▲ 때로는  교수님들보다도 나이가 많아서.....그러나  곤란해 하는 일도 벼로 없이 공부에만 열심이었던 대표책임사원 은  하루에도 옷을 네번씩이나 갈아입어야 하는.....[사진은 용인대학교]     © 운영자


     학부형이 왜 학생들 앉는 자리에 앉았느냐고 누가 물으면 ....

나는 강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서 교복을 처음 입은 기억이 난다. 대학에 못 간 것은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 5형제는 다 대학에 가고 나만 대학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결혼 당시 대학을 안 다니고 대학 나왔다고 거짓말 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려서. 어떻게 해서라도 꼭 대학은 나와야 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용인대학교 신입생 모집에 응시해서 들어가게 된다. 수시모집에 입학원서를 냈다. 30:1 정도의 경쟁이었다. 

 

합격 통지를 받고 입학식에 참석했는데 신입생이 1,540명이라고 했다. 입학식에 참석한 그 때 내 나이  61세였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는데, 젊은 학생들 사이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튀어 보였던 건 사실이다. 61살에 입학하고 4년을 다녀야 하는 대학의 입학식... 나이 많은 내가 신입생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학부형이 왜 여기 앉았느냐?"고 누가 뭐라고 하면 어쩌나 고민도 하고, 전후좌우에 앉은 학생들 눈치도 보며 거의 안절부절하던 입학식.

 

2004년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차리고 다니기로 맹세했다. 그리고 대학 4년간, 같은 과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꼭 지켜야 하는 생활신조도 짰다.  

 

1. 학점을 도둑질도 안 하고 동냥질도 안한다.

2. 정장 안 하고,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다닌다. 

3.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차리고 다닌다. 

4. 같은 과(科) 나이 어린 동료들에게 반말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와 약속한 이 4가지 원칙을 실제로 지켰다. 그러려니 괴로움이 따라온 것은 당연한 일. 4가지를 맹세한 학생이지만, 진짜 신분은 번듯한 기업의 회장이고, 3천여개 회원사가 가입해 있는 단체(한국경비협회)의 회장인 내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신분위장이라도 안 하면 그 괴로움, 또는 그 거북스러움이 어땠을지는....그야 말로 몇 년동안 신경 많이 써야 했다.  

 

▲ 실무자의 업무공간 스타일로 꾸며진 대표책임사원, 구자관회장의 집무실...     © 운영자

 

          하루에 옷을 네 번이나 갈아입는 늦깎이 ...              

우리회사에서 사장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는 6시 50분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난다. 그러니 아침 회의를 끝내고 학교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하기가 참 보통일이 아니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차 속에서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학교가 끝나고 회사에 돌아와 다시 옷을 갈아 입어야 하니....

 

옷을 갈아입다가 픽 하고 웃기도 했다. 손자벌 아이들과 클라스메이트가 되어, 함께 공부하며 울고 웃는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니... 60대인 내가 그러려면,..단단히 마음 먹지 않으면 힘든 일이기도 했다.

 

한 학년 선배가 오면 깎듯이 90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야, 어이, 너....“ 이런 말을 쓰지 않기로 혼자서 속으로 단단히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왜냐 하면 같이 공부하는 클라스메이트들이 곤란해 할까봐, 나 스스로 결정한 배려심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학 4년 동안, 같은 과 같은 학년 학생들과 잘 지냈다. 

 

그리고 회사의 임직원들에게는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앞으로 4년동안만 아침 회의를 5시 50분에 하도록 부탁합니다.“ 회의 끝내고 학교가는데 너무 서두르지 않기 위함이었지만, 그러려면 사원들은, 집에서 늦어도 4시경에 출발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사원들이었다. 내가 신경 안쓰고 대학 다니게 해주려고 적극 협조해 주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을... 그러나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사원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협조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사원들에게 고맙기 그지 없다. 

 

우리 회사 사원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출근시간에 1분이라도 지각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스스로 정하고 지키는 사원들이다. 말하자면 좀 지독한 친구들인데, 나의 늦깎이 공부에 적극협조해 주었다.  

 

”회사 안에서 해야 할 약속도 못 지키면 고객과의 약속 어떻게 지키나?“라는 다짐을 스스로 하면서, 1분이라도 지각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내걸고 지키는 사원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공부하러 대학에 다니던 4년간, 지각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우리 사원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 그는 크고 작은 일에 소흘함이 없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집무실 뿐 아니라, 아마도 그의 머리 속, 가슴 속까지, 일로 가득차 있을 것이라고....     © 운영자

 

        클라스메이트들이 정한 내 호칭은 ‘큰형님’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정한 원칙이 있었다. 1, 4년 동안 복장은 학생복이다. 2. 나와 공부하는 친구들은 18-20살이다. 나도 20살이 되어야 한다. . 3. 학점 도둑질,동냥질 하지 말자. 공부 잘한다고 누가 스카웃 할 것도 아니니. 4. 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날 그날 복습한다. .

 

그런데 이런 원칙을 정하긴 했지만, 학교 공부 외에도 회사 일에, 내가 대표로 있는 사회단체 업무 등 할 일이 많아서, 학교 공부 예복습할 시간을 내기란 정말 힘들었다. .

 

시험에 백지를 내야 할 정도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학교 다니는 건 오고가면 되지만, 시험만은.... 할 수 없이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 교수님은 기출문제 중에서 골라서 출제하는 교수님이었다. 내 입장을 들으시더니 “기출문제 드릴테니 공부해 오세요. 열심히 공부하고 오면 망신당할 일은 없을 거예요.”

 

시험지에 학번 쓰고 이름 쓰고...공부한 것 중에서 기억나는 것 중심으로 답안지에 쓰기도 하며, 시험을 보는 날마다 식은 땀을 흘려가면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솔직히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어서 백지를 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잠을 한 잠도 못자고 괴로와 하기도 했다.  

 

“아내에게 거짓말 한 거 갚을 거야!!.” 다짐하듯 공부했다. 하도 열심히 하니까 동급생은 물론, 상급생 선배들이 시험때면 예상 문제를 알려주기도 하고, 예상문제를 같이 풀며 공부도 해주었다.  

 

“어떤 경우에도 학점 동냥질 하지 말자.”고 맹세했고, F학점을 두 번이나 받았다. 컴퓨터 시험에 엑셀 문제 나온 거 못 풀었고, 경찰행정학교는 태권도와 유도는 필수과목인데 F학점을 받기도 했다. 

 

졸업식날 ..아내가 학교에 왔다. 44명이 졸업했다. 아내에게 나의 나이 어린 클라스메이트들을 소개했고, 학생들은 아내를 ‘큰형수님’이라 불렀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교수님들은 나를 그냥 회장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나를 뭐라고 불렀으면 좋을까?를 물었다.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나이가 너무 많은 형이니, 큰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해서 모두 웃으며, 그 의견을 통과시키고 나는 큰형님이 되었다. 여학생들은 나를 큰오빠라고 불러주었다. 

 

입학하던 날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죽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졸업하게 된다면, 선배님들이 뛰라면 뛰고 걸으라면 걸을게요. 나는 선배님들을 정말 잘 모시겠습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나를 큰형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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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i 22/03/12 [13:18] 수정 삭제  
  배움에는 시기란 무의미할 뿐인 듯합니다.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만드셨으니 비록 기업경영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 있으셨지만 문득문득 햇살처럼 드는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열정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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