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나는 지금도 대학 신입생이다..구자관 대표책임사원 칼럼 <늦깎이 3>

공부가 쉬운 것이었다면 아마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것일수록 나의 투지를 불태웠으니....

구자관 | 기사입력 2022/03/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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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관 대표책임사원 칼럼 38 <늦깎이 3>

나는, 그러니까 지금도 대학 신입생이다

대학 4년=공부와 맞장뜨기 4년

 

▲ "우리회사엔 '부하직원'이없다" 며 삼구INC의 社風을 설명하며 활짝웃는 구자관대표책임사원     © 운영자

 

[yeowonnews.com=구자관] 대학생활은 솔직히 고달팠다. 슈우샨보이가 메고 다니는 ’슈우산 박스‘, 우리 말로 ’구두닦이 통‘을 메고 다닐 때는 배고픔에 시달렸다면, 대학생활은 ’지식고픔‘ 또는 ’공부고픔‘에 시달리며 보냈다. 말하자면 ’사서 하는 고생‘이었는데,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시기를 꼽으라면 그 때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그 시기는 ’빛이 보이는 시기‘였다고 해야 옳다. 대학공부라는 분명하게 눈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기였다. 사실 4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세월... 나이에 맞게 정상적으로 대학을 다녔다면, 그냥 평범하게 지냈을지 모를 4년... 그러나 그 4년을 매일매일 전투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맞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물론 공부였다.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렸던 소년시절부터 따진다면, 대학생활은 힘들었지만, ’시달렸던 시기‘라고 부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는 매일매일 시달렸지만, ’공부와 맞장뜨기‘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보람된 시기에 속했다. 

 

물론 그 당시 회사는 성실한 우리 회사 사원들에 의해 희망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아내가 졸업식에까지 참석해준 덕분에 아내에게 했던 거짓말도 ’거짓말이 아닌 진짜 현실‘로 개조, 아니 개조라기 보다는 재창조되고 있었으니까. 

 

회사 일 하고, 학교 공부하고,,, 눈에 보일 듯이 뚜렷한 2개의 목표를 나는 빈 틈 없이 채우려고 하루 24시간을, 거의 긴장했다 할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보내야 했다. 

 

학력 때문에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살았다는 자책감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대학이 사람을 바꿔놓는다지만, 내가 그 당시 겪은 변화는 진짜 ’대학이 창출한 변화‘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대학 신입생 시절의 긴장감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그 동안의 내 인생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장된 것은 아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 긴장, 하루 일을 하면 하루 먹을 것이 생기는 듯 빠듯했던 내 젊음의 한 시기를 긴장하며 보낸 생활. 그러니까 대학 신입생 시절의 긴장이란 것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 일 난다” 는 절박감과 일맥 상통하는 ’마음 가짐‘의 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   회사 건물 공간에 마련된 정원.... 바쁜 머리를 식힐겸, 정원을 자주 찾는 대표책임사원  © 운영자

 

     우리 회사에는 왜 ’부하직원‘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까?

나는 지금도 신입생이다. 대학생활을 생각하면 지금도 긴장해지는 나 자신을 느낄 수가 있을 정도다. 환갑에 시작한 대학생활과 더불어 우리 사원들과 함께 메고 가야 하는 ’회사의 무게‘... 그 무게가 슈우샨 보이의 구두닦이통의 무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내 마음은 그 이상으로 무겁기도 하다는 뜻이다.  

 

나는 늦깎이 대학생으로, 회사와 학교를 오가며 정신 없이 바쁜 생활을 보내야 했지만, 회사와 공부라는 양쪽을 다 잘 하기 위해서 계속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했다. 어떤 면에서 그간의 내 인생역정이, 나를 ’긴장하는 인물‘로 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회사와 학교를 오가는 바쁜 생활, 또 긴장하는 생활 속에 물론 나 자신의 성장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대학이 내게 준 선물 중에 ’성장‘이라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날이 갈수록 더 실감하며 산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늦깎이 공부가, CEO로서의 나를 성장시켜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존재, 교육이라는 존재의 장점은 사람을 바꿔 놓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큰 힘을 지녔음을 실감하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부하직원’이라는 단어가 없다. 예를 들어 과장 밑의 사원은 과장의 부하가 아니라, 과장의 일을 도와서 회사 업무의 일선에 있는 구성원이다. 나는 우리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회사가 부여한 업무를 함께 수행해 가는 파트너 관계다. 그래서 나에게도 '부하직원'은 없다.

 

오래 근무한 사원들은 퇴직할 때 물론 퇴직금이 많다. 직급에 따라 퇴직금의 차이가 많다. 나를, 또 회사를 먹여 살린 사람은 우리 회사의 그 구성원들이다. 그들이 회사의 주인이고, 회사가 추진하는 일의 주인공들이다. 

 

많고 많은 직장에서 퇴직한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많아도, 일 할 능력은 그대로 지니고 있는 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청소원 등 직원 가운데는 75세 넘은 분들도 많다. 특히 여성들은 집에서 쉬고 있으면 뭐 하냐, 하고 나와서 일하는 분들도 많다. 다시 말해서 일 안 한다고 끼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나이에 집에 있으면 뭐 하나, 하는 여성들도 점점 늘어가는 사회 분위기다.

 

▲  구자관  대표책임사원이 늦은 나이에 찾아가 석사학위를 받은 서강대학교의 명물  알바트로스 © 운영자

 

         예순여섯 그 나이에, 대학원은 무슨.....

정년 퇴직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있다 “골프도 하루이틀이고, 술도 하루이틀이다.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몸은 아직도 멀쩡해서,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가 일을 주지 않는다.” 

 

이 문제, 즉 ‘일 할 능력=체력’은 남아있고, 또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는데 일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40대였다지만, 지금은 기대수명 70세는 벌써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그래서 노동 문제도 공부할 겸 대학의 석사과정에 들어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또한 내 직업상의 경험에서 터득한 얘기를 논문으로 쓰기 위해 서강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내 나이 66세때였다. 사실 나는 내 직업상 경험에서 얻은 경영 결과를 논문으로 쓰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다. 

 

직업과 평균수명의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큰 문제에 속한다. 나는 직업상 많은 노인을 모시고 일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년이 되어 사회에서 은퇴하고 난 다음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하기엔 벅찬 문제 아닌가? 

 

이 문제는 경영학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의 문제다. 국가가 풀어야 할 문제에 속한다. 그들의 미래를 국가나 사회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공부하려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또 늦깍이가 시작된 것이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완성해야 할 논문 제목은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였다. 예를 들어 같은 70세라 해도, 현재의 70대는, 옛날의 70대와는 달리 체력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거리’가 필요한 연령이다. 사실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아직은 정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 난문제(難問題)에 속한다. 

 

▲ 천신만고 끝에 서강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구자관 대표책임사원     © 운영자

 

        어려울 때면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던 오기가...

대학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졸업시험이 닥쳤고 그 시험에 합격해야 논문을 쓰게 된다. 주로 공부해야 할 과목은 영어와 수학이었다. 영어는 미국에 오고가면서, 필요에 입각해서 공부한 끝에 어느 정도는 되었는데 수학은 진짜 문제였다.    

 

우여곡절끝에 68세에 졸업 시험을 보게 되었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 논문 제출 자격이 주어진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은 고등학교처럼 엄격해서, 늦깎이 공부하러 다니며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시절 내 주특기였던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는 오기도 충분히 발동되어 있었으니까.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회사 직원들 힘을 빌렸다. 몇몇 직원의 이력서를 보고 경영학 전공과 경제학 전공 사원 16명을 선별해서 함께 공부하기로 했다. 아침 회의가 끝나면 그들과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 중에는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신입사원도 있었다. 그에게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경제와 관련된 수학도 그 직원에게서 배웠다. 

 

공부는 물론 할 수 있었지만 졸업시험은 까다로웠다. 교수들이, 졸업은 시키자고 합의한 듯 했지만, 시험은 참 까다롭게 출제되었다. 예상했던대로 떨어졌다. 우리 회사 사원 중에 경제학 전공 사원들의 협조로 다시 공부를 해서, 재시험 끝에 겨우 합격한 것을,, 지금은 기쁜 마음으로 고백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대학에서 유혹도 있었다. 그동안 내가 힘들게 공부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박사학위까지 약속할테니 자기네 대학으로 오라는 제의(소위 스카웃)도 받았지만, ‘두 갈래 길이 있다면 어려운 길 택하려는 체질’ 대로 서강대학교 대학원을 고수했던 것이다. 

 

많이 힘들었다. 예를 들어 문제를 좀 가르쳐 주고 시험을 보게 하면 될텐데 서강대학에선 그게 안되었다. 결국 우리 회사 사원들 힘을 빌려가면서 공부한 끝에 논문을 써서 통과했다. 논문 제목은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였다.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는 기업의 근로자와 인사담당자를 상대로 방대한 조사 끝에 탄생한 논문이었다. 솔직히 많은 노력을 했다. 우리 회사 사원들, 또 다른 여러 기업의 인사담당자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쓴 논문인데,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 논문은 현재 국회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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