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39) 호형호제
앞에서는 형님 동생, 돌아서면 이 놈 저 놈 죽일 놈
내가 아무하고나 호형호제 하지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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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wonews.com=구자관] 만나자마자, 그러니까 초면에 수인사만 나누고 나면 그냥,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형님 동생으로 진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는 여간해서 누구에게 호형호제 하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형님, 아우님 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답답하다 할 수도 있겠다.
호형호제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융통성 있고 인간관계를 아주 원활하게 하는 사람으로도 보인다. 내 주변에도 이름을 대라면 알만한 사람 가운데, 첫인사 하자마자 나이부터 묻고, 그리고는 연상연하(年上年下) 나이 차이 따져서, 대뜸 형님 동생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밥 먹듯이 해온 사람이라, 일도 가리지 않고 아무 일이나 했고, 먹는 것도, 음식 명칭이 붙은 것이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사람 사귀는 것도 까다로움 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간해서 아무하고나 호형호제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까다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면, 앞에서도 호형호제 뒤에서도 호형호제 해야, 그게 진짜 호형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앞에선 형님 동생 하며, 간이라도 빼줄 듯이 하지만, 돌아서면 전혀 얘기가 달라지는 사람도 있다.
즉 앞에서는 간(肝)보다 더한 것이라도 빼줄 듯이 호형호제, 형님 동생 하다가, 돌아서면 호형호제 잊어버리고, 곧바로 그놈 저놈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 호형호제 뭐하러 하느냐고 묻고 싶은 걸 참을 때도 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라면 앞뒤가 같아야 된다. 앞 다르고 뒤 다른 인간관계라면, 호형호제가 금방, 이놈 저놈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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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도 아니고. 쉽게 부르게 된 형님 아우 관계는
무너질 때도 역시 쉽게 무너지는 립서비스일 뿐
호형호제 하며 대단히 친밀하게 지내다가 이해관계로 호형호제가 깨지기도 하는 인간관계를 많이 본다. 진심으로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면, 동생은 형을 존중해야 하고 형은 동생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런 호형호제 사이에 이해관계가 생겼을 때 문제가 파생될 수도 있겠다. 호형호제하는 인간관계, 형과 동생으로 통하는 인간관계가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적지 않게 보아왔다.
나에게 형이라 불러라, 아우라 불러다오 하는 요구를 더러 받긴 했지만, 거의 받아드리지 않고 지낸다. 진심이 없는 호형호제라면, 진실된 인간관계나 진실된 호칭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호형호제 잘 하는 사람은 말투도 자유자재다. 손아래 사람이라면 아우님 소리 몇 번 하다가 바로 반말지거리로 진화한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관계에 있어 호형호제 사이이건 아니건, 말을 함부로 막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나이 좀 덜 먹었다 해서, 막바로. 하대(下待) 하는 인간관계라면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젊은 친구에게라도 반말 하는 관계가 막장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나는 태어나서 누구를, 내 형제 외에 사람에게 형님이라 부른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남남인 누구를 아우님이라 불러 본 적도 없다. 어릴 적부터 내 마음속의 인간관계는, 상대가 누구이든 ‘존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철칙이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형이라 불러도 나는 상대를 아우라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형이라고 불리우게 되면. 진짜 형 노릇 해야 하고, 진짜 형으로서 갖출 것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일단 형이라 부르면, 진짜 친형제처럼 지내야 되지 않을까? 상대에게 무슨 일 생기면, 그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어야 형제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남남간의 호형호제는 그야 말로 입술 끝에서만 형동생 하는 립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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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형호제하면서 진짜로 형제처럼 지내다가
서로 욕지거리 관계로 되면 창피하지 않은지?
형이나 아우 사이라면, 한 쪽에 문제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되나? 호형호제 하더라도, 거래관계나 이해관계가 얽히면 호형호제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간에, 특히 이해관계가 있다고 할 때, 그런 호형호제 관계는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그냥 이름만 존칭으로 부르는 것 보다는, 호형호제 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친밀도를 높혀주는 건 사실이다. 호형호제... 즉 형이나 동생은 남남관계가 아니니까.
나와 알고 지내는, 띠동갑인 손아래 친구가 있다. 인품이나 인격이, 나하고는 비교가 안될 만큼 훌륭한 사람이다. 평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누구를 대하는 태도나, 거래상의 관계로 누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나, 인간관계가 아주 돋보이는 그런 사람이다.
아무에게나 형이라 하고, 아무에게나 아우라 하는 사람이 호탕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은, 오래 사귀어 보면 금방 들어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내가 호형호제를 잘 안하고, 상대가 누구든 깎듯이 대하는 걸 원칙으로 하다 보니까 까다롭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호형호제를 하거나, 호형호제 같은 친선관련 용어(用語)를 사용하지 않고도 인간관계나 거래관계를 잘 이끌어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의 호형호제는 공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사회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단체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되는데, 간혹 어떤 단체에서 호형호제로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어떤 일로 그러는진 몰라도, 원수처럼 삿대질을 하며 이놈저놈 하는 걸 보면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환갑 나이에 대학에 들어간 늦깍이 나를 향해
‘아저씨’라 안부르고 ‘형’이라 불러줘서 고마워
내 경우 살면서 호형호제를 별로 안하고 지낸다. 인생을 조리 있게, 정확하게, 빈틈 없이 살려는 사람들은 여간해서 호형호제 하지 않는다. 인생을 그냥 얼렁뚱땅 하는 건 아니겠지만, 좀 쉽게 살려는 사람들이, 아무하고나 호형호제 하는 건 아닌지 생각될 때도 있다. 물론 호형호제 하고 지내면 친밀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나도 꽤 수준높은(?) 호형호제를 겪은 일이 있다. 대학 다닐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20대, 그런데 나는 60대. 같이 공부하는 클라스메이트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더니, 어느 순간부터 호칭의 급수가 올라가서 ‘큰헝님’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허기야 60대인 나를 20대 초반인 그들이 아버지, 또는 삼촌, 아저씨라 안 불러준 것만 해도 정말 고맙다. 그들은 호형호제는 안했지만, 큰형님이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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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를 서슴 없이 ‘큰형님’이라 불러준 데에는 전혀 이해타산이 개입된 일이 없다. 그러니 그때의 호형호제는 실제로 상호 존중의 호칭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냥 같이 공부하는 나를, 큰형, 큰오빠로 불러주던 친구들이 있던 시절. 그 때늦은 학창시절이 그리운 건, 큰형 큰오빠 소리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를 형이라 불러주는 사람 가운데는 훌륭한 사회 인사도 있다. 나는 그를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앞에선 아우네 형이네 죽네사네 하면서 돌아서면 달라지는 인간상들이 횡행하는 시대에, 전혀 세파에 물들지 않은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의 호형호제는 진심이 가득하다.
서울 강남 역삼동 조개집에서 밤 늦게라도 만나 속을 트고 지내는 호형호제도 있다. 만난지 18년 된 사이인데, 그 18년 동안울 지내면서, 내가 당신 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형 노릇을 안했었다. 그러다가 사귄지 18년만에 흉금을 트고 호형호제가 됐다.
호형호제 하는 형제라면, 그래서 내가 형 노릇을 하려면 공부해야 된다. 진짜 공부했다. 만약 급한 일로 나를 찾아오면 내가 목숨 바칠 용의도 있다, 고 하는 그런 호형호제가 되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는 아니지만. 형제가 됐으니 목숨이 위태로우면 서로 나서서 도와 주기로 하고 지낸다. 우리의 호형호제는 증인 세워 놓고 맺어진 호형호제이기도 하다.
그 때의 증인이, 호형호제 잘 되었으니, 잘 지내시라고 축사를 하듯이 말해주기도 했다. 그와 사귄지는 한 30년이 지났고. 호형호제지간 된지는 10여년 정도 된다. 순간적으로 즉흥적으로, 그냥 오다가다 된 형제가 아니고 진짜로, 진심으로 형제를 맺은 사이다. 자다가도 부르면 달려나가는 사이다.
표리부동해서, 앞에선 호형호제 하면서. 무슨 일 생기면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에선 그야 말로 알랑방구고, 뒤에선 마구 씹어대는 인간들의 관계에선, 진짜 참되고 진실된 호형호제가 성립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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