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구자관 회장 칼럼 ...아침얼굴과 저녁얼굴이 같아야 효자다

마음은 가득하지만, 가난해서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지금도 가슴 아파하는 대표책임사원은...

구자관 | 기사입력 2022/04/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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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책임사원 구자관 회장 칼럼 (42) 효도

아침얼굴과 저녁얼굴이 같아야 효자다

  매일 자전거를 타시던 아버지의 중노동은,,,

 

▲     © 운영자

 

             의사는 맹장이라는데 아버지는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yeowonnews.com=구자관] 아버지는 64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오래 앓으시던 심장내막염이 끝내 아버지를 ... 그런데 그렇게 편찮으신 가운데, 따로따로 모셔져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한군데로 합장하는 것을 서두르셨다.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합장해서 모신 것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돌아가시기 전에 어떤 예감이 있지 않으셨나 생각된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건강 때문에 힘든 와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을 자신의 손으로 해야 된다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바로 효심(孝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솔이나 걸레, 그리고 빗자루 만드는 공장에 다닐 때였다. 행상도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면 아버지가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파셨다. 그걸 팔아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을 해결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병은 오래 된 지병이었다. 잘 잡숫지 못하는 가운데 매일 자전거를 끌고 다니시는 중노동에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래전부터 아프셨지만, 말씀을 안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거의 자전거로 일하셨다.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달리기도 하고, 짐이 없을 때도 자전거를 타셨다. 자전거는 아버지의 이동수단이었고, 생계를 위한 사업의 중요한 기계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건강이 나빠지신 걸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움직이기도 힘들어 하시니, 의사에게 왕진을 부탁했다. 의사는 청진기를 아버지 몸 여기저기에 대고 진단을 하더니, 별 것 아니다, 아마 맹장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의사가 간 다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맹장이 아니다. 가슴이 아파!“

 

 그런 와중에 아버지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지만, 큰 병원으로 모시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

 

미아리 산꼭대기에 살 때였는데, 동네 의원에 입원하셨다.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 ”심장내막염입니다.“ 그러면서 의사는 큰병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했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그 때 큰 병원 갔더라면,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과 후회는 지금까지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   부모님에 대한 孝心을 상징한다는 카네이션....그러나 백만송이 카네이션으로도 갚을 길 없는 부모님 은혜는 ..카네이션을 볼 때마다.... © 운영자

 

      ”아침얼굴과 저녁얼굴이 같아야 효자다.“

오랜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지금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송구하기 짝이 없다. 두 분 다, 돈이 있었다면 더 오래 사시게 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난이 웬수, 가난이 흉기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힘든 행상을 하시다가 자리에 누우셨다. 그리고 입원한지 보름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하면, 여한이 없어야 되는데 나는 여한이 너무 많다. 어버이날이 가까워 올수록 그 여한이 나를 옥죈다. 어버이 날에는 더 생각난다. 내가 모시고 있었으면 그렇게 일찍 가시지 않고, 더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친다. 

 

아버지가 내게 일러주신 말씀 가운데 잊지 못할 말씀이 있다. 어느날 내게 물으셨다. 

”뭐가 효도라고 생각하느냐?“

부모님을 호의호식 시켜드리는 것이 효도아닌가 생각할 때였다.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드시며 사시도록 하는 것이 효도 아닐까 ?

 

그 때, 참, 오래도록 가슴에 간직해야 할 말씀을 하셨다. 

 ”진짜 효도는 아침마다 부모님을 뵙는 것이 효도다. “

그리고 한 말씀을 더 보태셨다. 영원히 잊지 못할 말씀을. 그리고 자식 되는 사람 누구에게나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   사원들에게도 부모님에 대한 효성을 자주 강조하는 구자관 대표책임사원.... 지방에 부모님이 계신 사원들에게 부모님 뵙고 오라는 권유도 자주 하는....  © 운영자

 

                  ”호의호식 안해도 효도하고는 관계 없다.“                 

아침에 부모님께 인사할 때의 얼굴과, 저녁때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의 얼굴이 같아야 한다는 말씀은 지금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말씀은 거의 유언에 가까운 말씀이기도 했다. 

 

”내가 죽고 나면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다. 어머니, 마음 불편치 않게 해드려라. “

그리고 한 말씀을 더 하셨다.

”호의호식 안해도 효도하고는 관계 없다.“

그 당시 나는 능력이 없어서 잘 모시지도 못했지만, 그 말씀은 생각할수록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버지 떠나신지 얼마 후 미아리 산동네 집에 차압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일하시다가 낙상해서, 대퇴골이 부서져 꼼짝도 못하고 누워계실 때였다. 돈이 없으니 겨우겨우 연명만 하실 때였다. 

 

잘 잡숫지도 못하고, 못 잡수시니 당연히 건강은 계속 안 좋아지셨다. 부모는, 하루 종일 자식의 표정이 같아야 마음 놓고 사신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할 수 없이 도봉동 산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도봉동 서낭당이 있는 산꼭대기까지 이사 가는데, 어머니는 걸으실 수가 없어서, 들것으로 모셔와야 했다. 

 

도봉동으로 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모시고 왔지만,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비 오면 비가 새서, 기와를 다 갈아야 했지만, 기와가 오래 되어 삭을대로 삭아서, 밟으면 부서지니까 지붕 위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비만 오면 온 집안에 있는 그릇이나 깡통할 것 없이, 방에, 마루에 즐비하게 갖다 놓고 빗물을 받아내야 했다. 

 

나는 스물일곱에 노점상 사업을 시작했다. 살기에 바빠서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를 못했다. 그리고 4년 후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부모를 뵙는 얼굴이 아침에도, 저녁에도 같아야 한다는것은 자식의 아침 얼굴과 저녁 얼굴이 다르면, 부모는 걱정을 시작하신다. 아버지 가시고 4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더 사실 수 있었는데, 그 생각을 할 적마다 가슴이 메어진다.

 

▲ 회사 창립 기념일에, 거래처 임원진들에게 큰절하는 대표책임사원....부모님에게는 아니지만, 그는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 을 큰절로 표시하면서....    © 운영자

 

                일찌기 아버님이 알려주신 참효도의 길을 나는

”아침 얼굴과 같은 얼굴로 부모를 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그 말씀, 훨씬 후에야 그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짜증도 부리곤 했던 이 자식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아버지의 ”아침 얼굴과 저녁 얼굴이 같아야 한다“ 는 말씀도 잘 지키지 못했다. 아침엔 맑은 얼굴이지만, 저녁에는 지쳐서 짜증나고 힘든 얼굴이 된다. 그런 얼굴, 아침과 다른 힘든 얼굴로 어머니를 대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불효자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에게 좋은 얼굴 보여드리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만이 아니라, 그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다. 그러려면 아침얼굴과 저녁얼굴이 같아야 하는데....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다....일찌기 아버님이 알려주신  참효도의 길을 나는 충실하게 따르지 못했다. 자식이 부모를 잘 모신다는 거,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다. 

 

아침 저녁 같은 얼굴로 부모를 뵙기... 그것이 효도하는 길이다.. 늦게야 깨달음이 오긴 했지만, 그땐 이미 아버지 어머니는 내 곁에 계시지 않았으니...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해서 안타까움과 회한은 더해진다. 좋은 음식을 사드리려 해도, 입맛이 없다고 거절하시던 우리 엄마. 엄마는 내 주머니 사정을 아시기에 거절하신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   구자관 대표책임사원의 방....자그마한 중서기업 사장실보다 더 좁은 공간이지만 그는.....  © 운영자


              맛있는 거, 좋은 거는 자식 먹이려고 ”맛이 없다“고 하신

한번은 거구장에 모시고 가서 샤브샤브를 대접했는데 국물만 한 숟가락 잡수시고는, 더 이상 잡숫지 않으셨다. 

 

“맛이 없다.”

 

그것이 부모마음이다. 맛있는 거, 좋은 거는 자식 먹이려고 ”맛이 없다“고 하신 어머니. 그 깊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떤 자식이 있어 잘 헤아릴 수 있을까?

 

진짜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든 일 하는 자식이 부모 챙겨드리는 마음을 아시는 어머니가, 그러나 자식 먹이려고.... 거구장의 일품요리로 알려진 샤브샤브를 ”맛이 없다“ 한 마디로 거절하신 것이다.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해도, 어머니는 편하게 잡수시지를 못했다. 아들의 주머니 사정을 아시는 어머니. 그 음식이 고마우면서도, 힘들게 일한 아들이 번 돈으로 내가 어찌 비싼 음식을 먹으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왜 안드세요?“

”맛이 없다.“ 

그때 깨달았다. 좋은 음식 드리는 것이  효도가 아님을. 고기 한 점이라도 자식들 먹이려고 ”맛이 없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당시 토목 기사인 형님은 베트남에 가 있었다. 그리고 누나 셋은 다 출가했고, 내가 거의 장남노릇을 하게 된 상황이었는데, 그 일로 해서 형님은 항상 나에게 미안해 하고 있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아버님은 우리 곁을 떠나시고, 나는 다음해인 스물일곱에 결혼했다.  

아버지는 76년에 가셨다. 그리고 4년 후에 어머니마저 내 곁을 떠나셨다. 아버님 어머님 다 떠나신 후에야, 겨우 깨달음 하나가 내게 왔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이 있어도, 부모 마음이 편치 않으면 효도가 아니다. “

부모 마음이 편치 않으시면 효도가 아니다 .부모님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 생각할 적마다, ”무엇이 효도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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