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45) 딸
”내가 그랬어요!“ 거짓 자수하고 대신 맞은 본심
어른들도 배워야 할 그 배려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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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세대
[yeowonnews.com=구자관]어디를 가도 요즘은 꽃밭이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꽃 많은 나라가 되었는지.....아마도 경제 여건이 좋아지고, 국민 1인당 소득이 1만달러가 넘으면서 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꽃이 있다. 꽃은 축하, 또는 축복의 의미로 주고 받아진다. 꽃의 일상화(日常化)라고 해야 하나, 주변 어디를 둘러 보아도 꽃이 보인다.
5월은 자세히 보면 모두가 꽃밭이다. 어린이날을 5월에 배치한 것도 꽃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꽃은, 나아가 꽃밭은 여유를 상징한다.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쫓기고 다급한 생활을 하던 어려운 시절에는 꽃이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때는, 꽃을 볼, 또는 키우고 꽃밭을 형성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꽃밭이다. 더구나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꽃밭이다. 그러나 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못 느끼던 세대(世代)도 있다.
어려움을 겪은 세대, 전쟁을 겪은 세대가 그렇다. 꽃밭엔 꽃이 있지만, 마음 속엔 꽃이 없을 때, 어디를 가도 꽃밭이 보이지 않는다. 힘든 시절을 겪은 세대에게는 그래서 꽃은 더욱 새삼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5월이 되면 특히 꽃과 세대의 관계가 뚜렷해지기도 한다.
어쩌다가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꽃밭이 보인다.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자체가 꽃 아닌가? 5월이라 더욱 꽃이 아름답고, 꽃을 생각하게 된다.
5월이 꽃인 이유 가운데 어린이날이 있다. 어린이 날이 있기 때문에 5월은 더욱 꽃을 생각하게 된다. 어려웠던 시절엔, 누가 일부러 꽃을 심기도 어려우니, 그 시대 사람들은 꽃을 잘 모른다. 심을 줄도 감상할 줄도 모르는 건 물론, 꽃 자체를 모른다. 꽃이 주는 감흥도 알 리가 없다. 그러나 5월이면, 꽃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의 마음도, 꽃밭에 서면 환해진다.
꽃 없는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꽃을 즐기지 못한다. 꽃 없는 세대란, 생활 속에도 꽃이 없고, 인생 자체에도 꽃이 없던 시대를 산 사람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은 어디엘 가도 있는 꽃밭... 어디에 있는 꽃이라도 아름답게 느끼게 되는 시대...5월의 꽃밭을 보고 있으면, 축복 받은 세대라는 생각이 사무친다.
어린이날...사실 어린이날을 생소하게 느끼는 세대도 있고,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지 않은 소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5월을 맞으며 살던 사람들은, 당연히 5월의 꽃과 5월의 아름다움을 알 리가 없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꽃의 아름다움을, 5월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온 세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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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이 없는데도 대신 나서서 종아리를 맞은 딸은...
지금은 체벌(體罰)이 없는 시대다. 대개 자라는 세대의 훈육을 위해서 존재하던 체벌은, 이제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보기 힘들지만, 우리 또래들이 자랄 때는, 잘못하면 맞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체벌은 늘 가까이 있었다.
나에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 태어난 나의 1남1녀는 어려운 시대, 힘든 가정에 태어났자만, 환경에 물들지 않고 잘 커 주었다. 나는 비교적 엄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애들도, 넉넉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비교적 엄한 가풍(家風)에서 잘 자라 주었다.
5월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달(月)이라서 그런지, 가정과 아들딸과 훈육(訓育)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내 아들 딸에게 철저하게 지키라고 한 것이 있다. 거짓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행위이다. 가끔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러니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면에선, 즉 거짓말에 관해서는 엄격했다고 생각한다. 정직하게 살라는 것이,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이었다.
내가 거짓말에 관해서 아이들에게 약속한 것은, <종아리 10대>였다.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10대, 거짓말을 했지만 다시 솔직해지면 5대를 아이들과 약속했다.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면 나도 맞겠다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다. 그중에 시간약속을 많이 강조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훈육을 하는 가운데 강조한 것은, “사람이 가끔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절대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거짓말이니, 그것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우리 애들은 비교적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랐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린 시절, 용돈을 타기 위해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거짓말도 하지 않고 자랐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면도기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라고 하면 거창한 일이 일어난 것같지만, 사실은 내가 매일 사용하는 면도기가, 그 날은 도무지 들지를 않는 것이었다. 수염이 깎이지가 않았다. 아내에게 면도기 손댔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이 ”나 수염 없는데요!“였다. 딸에게 면도기 만졌느냐고 물으니 ”아뇨!“하는 대답이었다.
집안에서 내가 쓰는 면도기가 못쓰게 되었다. 아들딸에게 물어도 면도기를 모른단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화가 났다. 거짓말 하면 종아리를 때리기로 아이들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을 때리려고 하니까 딸이 나섰다.
”아빠. 사실은 내가 그 면도기......“
그래서 딸은 종아리 다섯 대를 맞아야 했다.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마!“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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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에게 배우는 배려심
퇴근해서 집에 오니 조카딸(둘째 누나의 딸)이 와 있었다. 우리 가족이 연남동 6층 아파트에 살 때였다.시간이 나면 가끔 우리 집에 들리곤 했다. 내가 아이들 때렸다는 소리를 듣더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으응? 그 면도기? 내가....“
그러니까 딸이 대신 맞은 그 면도기 관련된 사람은 우리 애들이 아니고 조카딸이었다.
대학 다니는 조카는, 그 날 학교가 결강(缺講)이라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거울을 보니 지저분해서 닦기 시작했다. 잘 안 닦여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카는 내 면도기를 가지고 거울에 묻은 때를 긁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랬어요!“ 하고 나선 딸이 대신 맞았다. 내가 했다고 자수하면 5대만 맞게 되니까 자기가 나선 것이다. 아마도 딸은 오빠가 한 것으로 생각하고, 오빠가 10대 맞을 것 같으니, 자기가 대신 나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오빠 대신 나서서 맞으려 할 만큼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생각이 깊었다. 조카딸은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우리 딸에게 미안해 했다.
그 때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애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려심이 깊었다. 오빠 대신 엉뚱하게 종아리를 맞은 딸아이가, 그 나이에 보인 배려심은 나에게 충격을 줄만도 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우리 딸을 그 후 더 사랑하게 된 것으로 기억된다.
결국 어른들이 판단을 잘 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아이는 지금 커서 40대가 되었고 8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딸은 나에게 평생 잊지 않을 감동을 안겨주었다. 오빠 대신 매를 맞으려고 나서는 도량(度量)이 깊은 아이의 그 때 나이가 11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는 사실은 그 때 나를 감동하게 했고, 두고두고 그 때를 잊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딸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원만하고, 봉사정신이 강했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아이가, 그 11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매를 대신 맞으려고 나섰을까, 나는 지금도 의아하고 감동한다.
그 딸아이는 원만한 성격으로 성장해서, 지금은 미국에서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서, 가정생활은 물론 사회생활도 잘 하고 있다. 때로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자기 자식보다, 생각이 짧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主役)이다. 지금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잘 자라야 다음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이 그렇게 잘 성장할 때까지, 우리 기성세대는, 그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하여서라도, 착한 사람, 선의(善意)로 사는 사회인으로서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날에, 어른들이 생각할 것이, 때로는 반성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바르게 키우는 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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