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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려가서,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은 사연.. 구자관 칼럼 (46)왁스

한없이 힘들고 어려웠던 사업 초창기...그러나 그런 어려움 없이, 무슨 사업이 이루어지겠느냐는 구자관 회장..

구자관 | 기사입력 2022/05/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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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46)  왁스 

내가 불려가서,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은 사연 

인권이 없던 시대.. 사람대접을 못받을 수도..

 

▲   어려운 시절...그 어두운 시절은 큰 사업가의  탄생을 위한 토양이 되어 주엇고....   © 운영자

 

              미제 왁스... 그 당시에 합법적 제품 아닌 제한상품(制限商品)

[yeowonnews.com=구자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주가 다 필요하고, 그 외 식량이나 물을 비롯한 음료수 등... 문명이 발달할수록 필요한 것도 다양해진다. 그 가운데 왁스라는 것도 있다.

 

우리 생활 속에 필요한 왁스... 지금 내가 얘기하려는 왁스는, 생활 속에 필요한, 매일 먹는 음식은 아니더라도, 거의 생필품(生必品) 수준까지 진화한 왁스에 관한 얘기다.

 

일반인에게는 생필품이라도, 매일 보거나 겪는 물건이 아니지만, 우리 같은 빌딩 관리 업체 같은 곳에서는, 아주 중요한 원자재, 또는 생활 필수품에 속한다. 바닥을 깨끗하게 하고, 더 나아가 주변을, 그리고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물품 중의 하나가 왁스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직접 왁스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빌딩관리 업체나 청소 용업 업체에게는 아주 중요한 청소제품, 중요한 사업 품목에 속한다.

 

왁스 가운데는 바닥 청소에 필요한 왁스가 있다. 형태 별로 보면 고체왁스도 있고 액체왁스도 있다. 청소에 필요한 왁스는 우리가 보통 바닥왁스라고 말하기도 하는 제품으로 국한할 수도 있다.

 

청소용으로 사용하는 바닥왁스도 있지만, 왁스의 용도를 넓혀서 따라가 보면 헤어스타일 왁스라는 것이 나온다. 바닥에 바르기도 하는 청소용왁스와, 헤어스타일 관리에도 사용되는 미용왁스는 컨셉부터가 다르긴 하지만, 그 용도는 청소용, 또는 정리용으로 보면 된다. 헤어스타일에 사용되는 왁스는 물론 미용 왁스로 보면 된다.

 

건물 바닥에 왁스 코팅을 하게 되면 청소하는 데도 편리한 데다가 깨끗해 보인다는 장점까지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왁스제품도 훌륭하지만, 당시는 국산이 전혀 없던 시대. 결국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왁스를 구입해서 써야 하는데, 말하자면 합법적인 상품이 아니고, 제한상품(制限商品)이었다. 말이 좋아서 제한상품이지, 당시 시중에서 파는 왁스는 전부 불법상품이었다.

 

▲  이 사진은  바닥 공사중인 어느 건물 내부.... 기사 속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습니다. (편집자) © 운영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왁스를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그 불법상품 왁스로 인해 나는 불려갔다. 구금(拘禁) 당하는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건물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수품이던 왁스. 그래서 우리 같은 업체에서는 필수불가결한 물건이었지만, 필수불가결한 물건으로 인해서 나는 범법자(犯法者)의 입장에까지 몰려야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왁스를 생산하지 못해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온 물건을 구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이란 것은, 주한미군(駐韓美軍)이 사용하는 물건으로, 누군가가 몰래 시중에 유통시킨 불법 제품이었다.

 

그 물건은 미국 국무성이 주인인 장물(贓物)이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사용하면 관세법 위반으로 걸리게 되어 있었다. 직접적인 표현을 하면, 누군가가 주한미군부대에서 훔처가지고 나온 장물인 왁스를, 구입해서, 건물 청소 등에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우리 회사도 그 물건ㅡ장물-왁스를 사다가, 의뢰받는 건물청소에 사용했던 것이다.

 

위법이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그런 물건을 만들 수가 없으니, 즉 생산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그런 물건을 사서 사용하는 업체도 많았고, 그런 물건을 모아서 파는 가게도 많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밖에서 일을 보고 있다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사무실이라야 책상 2-3개 들여놓으니 빈 공간이 없는 작은 사무실이지만.....). 그런데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큰일 났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고 다그쳤더니 울면서 하는 소리가 우리 아버님이 잡혀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뭣 때문에 잡혀 가셨냐고 물으니, 여직원은 왁스, 왁스....”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것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회사 대표는 나였지만, 나를 잡으러 왔다가, 내가 없으니 아버님을 잡아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서울세관으로 달려갔다. 당시 서울세관은 지금의 서울역 뒤의 서부역 자리에 있었다. 양키물건 사고 팔고, 양딤배 피우는 사람들 잡아가는 곳이 서울세관이었다.

 

▲    사업 초창기에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따른다. 극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구자관 대표책임사원 © 운영자

 

               시멘트바닥에 무릎 꿇려놓고 다그치는 3박4일  

서울세관으로 달려가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기가 막혔다아버님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계셨다.

 

내가 책임잡니다. 나를 잡아가두시고 우리 아버지는 석방해 주십시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담당자는 콧방구도 뀌지 않고, 나를 거들떠 보지 않으려 했다.

 

나는 애걸복걸도 해보고, 그래도 말을 안들어 주어서, 사정을 하다가 항의도 했다.

내가 있는대로 다 얘기할테니, 죄 없는 우리 아버지는 풀어주세요! 내가 장본인이라니까요. 내가 책임자라니까요., 내가 다 말씀드릴께요!!” 라고 항의조로 요구를 하자, 못이기는 척, 우리 아버지를 풀어드리고 나는 시멘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풀어주기에, 거기거 끝나는가 했더니, 이번엔 사무실 여직원까지 잡아들였다. 인권(人權)이 없던 시대라... 취조가 끝나거나 중단되면,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서, 그 방을 지나가는 세관원이 공연히 사람을 툭툭 건들기도 하고. 머리를 툭툭 치기도 하고...양키물건 취급하는 소매상인들도 그 곳에 붙잡혀 와 있었다.

 

나는 물론 당당히 물건 값을 주고 사온 것이다. 그러나 알고 샀건 모르고 샀건, 결론적으로 나는, 미군 부대에서 도둑질 해 나온 장물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취조를 받으며 항의도 해보았다.

나는 몇 개 안 샀다. 또 장물인 줄 몰랐다.” 라고 항의해도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알고 있어. 기다려!”

미군 부대에서 얼마가 도둑 맞았고, 얼마를 팔았는지도 다 알아.”

그들은 반말로 다그쳤다.

잡혀온 우리 여직원에게는 너희 사장이 다 애기헸어. 바른대로 말 해!”

나에게 와서는 다른 소리로 다그쳤다.

당신네 여직원이 다 불었어. 우리가 다 알고 있어. 바른대로 말해!”

 

인권이고 뭐고 없이, 욕하고 때리고 하던 시절. 누구든 일단 들어갔다 하면, 무조건 떨던 그런 시절이었다.

 

34일을 그렇게 붙잡혀 있었다. 지옥 같았다. 바깥 사정이 궁금하고 답답했지만....놓아주는 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빽이 있어야 살기 좋은 그런 시대에, 빽도 끝발도 없으니......다행히 아버님 지인 중의 어느 분이 세관에 잘 얘기해 줘서 34일만에 풀려나왔다.

   

▲  여백이 없이 일에 몰두하는 대표책임사원 구자관회장....사내에 마련된 정원에서.....    © 운영자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었는데, 34일 동안을 사람 취급 못받고,,...다른 것이 고문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바로 고문이 아니었던가?

욕하고 쥐어박고. 사람 취급 안 해주던 그런 상황 속에서 사업을 이어갔다. 물론 내가, 그들이 원하는 얘길 다 해줘야 하는데, 다 털어놓지 않으니까, 욕하고 때리고....인권(人權)이니 이런 것을 거론할 상황도 아니었다.

 

전화 받는 여직원 하나 놓고 하는 사업. 서류도 제대로 갖추어졌을리 없고...

화공약품 상회에서 왁스를 판 사람까지 잡혀 왔다. 그 왁스를 취득한 사람, 그 왁스를 사서 다시 판매한 사람, 그리고 구입한 나까지...다 걸려들었다. 그리고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34일을, 고문을 해가며 인권이고 뭐고를 따질 수 없던 어려운 시절에 사업도 물론 그렇게 어려웠다. 일단 잡아들이고, 일단 가둬놓고, 일단 때려놓고 죄인을 만들던 시대. 그러나 국산 제품이 없어서, 미군부대에서 불법 유출된 물건인 왁스를 구입해서, 사업을 위해 사용했으니 죄인인 건 틀림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벌금형에 처해졌다. 벌금은 45만원이었다. 1970년이었다. 집 한채에 50만원 하던 시절이니까, 아주 작은 회사를 운영하던 내게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급히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빚을 냈다. 빚 낸 돈으로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 벌금만 해도 그렇다. 누가 그 당시의 어려운 처지에 있던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겠나? 그러나 나를 구하려는 아버지가, 사방팔방 여기저기서 돈을 구해서, 나를 겨우 끌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지금도 왁스를 보면 생각난다.

그 때 내가 끌려갔던 서울 세관이 생각난다.

그 때 내가 무릎 꿇었던시멘트 바닥이 생각난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다.

잘잘못에 상관 없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던, 그 어려운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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