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첵임사원 구자관 칼럼 (47) 불이얏!
살기 힘들 땐 죽는 것도 방법. 나는 10층으로 올라갔다
불이 났다. 불이 붙어서, 온몸이 불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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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도 없고 팔지도 않는 왁스..그럼 만들지 뭐!!
[yeowonnews.com=구자관] 3빅4일을 서울세관에 붙잡혀 있다가 나오니, 화도 나고 겁도 났다. 가난하긴 했지만 법을 어기며 살아보질 않아서, 세관이라는 곳에 붙들려 가 있었던 3박 4일은, 힘들고 겁나는 경험이었고 큰 충격이었다.
충격은 컸지만, 그 충격과 상관 없이 왁스가 필요한 현실을 어쩌랴, 싶기도 해서 며칠 동안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게 된다. 왁스는 필요하다. 먹고 살려면 필요한 왁스...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나오지 않고, 미군부대 물건은 훔치지 않고 돈주고 사다 써도 범법자(犯法者)가 된다.
그렇다면.....그렇다면.....별 수 없지. 그렇다면, 그렇게 돈 주고 사다 써도 법에 걸리는 것이라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왁스를 만든다는 건 막연한 결심이었고, 지금으로 따지자면 ‘도전하는 정신으로...’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어쨋든 일단 한 번 만들어 보자고 결심을 하니 이미 내 손에서 일은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왁스를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화학공업 전문도 아닌데, 전문이 아니기 커녕 문외한이었다.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낮엔 일하고 밤에 다니는 야간학교 출신이라, 학교에서 배운 어설픈 화학지식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고, 물론 화공약품을 직접 다루는 것도 배운 일이 없다.
그래도, 왁스 때문에 세관에 끌려갔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화공약품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하면서 왁스를 직접 만들어 보자고 달려들었다. 왁스를 만들기 위한 실험 단계에서 작은 사고들이 터지기도 했다.
동생은 실험하고 연구하다가 머리를 다 태웠다. 나는 눈썹이 다 타버리기도 했다. 용재(用材)를 잘못 다뤘던 것이다. 용재는 왁스를 녹이는 재료를 말하는데,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했다. 솔벤트 등 인화성 물질을 다뤄야 하는 일이라 매우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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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관리해도 터질 일은 터진다
왁스를 만드는 데는 그 원료로 파라핀을 썼다. 파라핀 원료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딱딱한 왁스를 불을 때서 녹히고.. 거기에 솔벤투를 부어서 만드는 것이 액체왁스였는데, 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일이라 위험했다. 거의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격이었다.
좋은 원료나 제조용 기구 등, 준비물 없이 만드는 왁스였지만, 미국 제품보다 훨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위험했다. 항상 화재위험을 안고 하는 일이었다. 왁스를, 거의 물이 되었다 할 정도로 녹여서 썼다.
솔벤트를 부으면 증기가 만들어져 나오기도 했다. 왁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화되서 나오는 가스는, 예를 들어 라이터를 켜서 들이대면 펑하고 불이 붙을만큼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 왁스를 써 본 사람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것으로 구두약도 만들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청소당번이 되면, 교실 바닥 닦는 것도 왁스였다. 빌딩표 왁스는 학생들이 교실 바닥을 닦을 때도 사용했다. 캉가루 구두약이 있던 시절... 청소용 왁스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왁스 만드는 공장을 만들었다. 공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시설... 그 조그만 시설이 서울 근교에 만들어졌다. 위험시설이니까 물론 잘 관리해야 했다. 잘못 관리하면, 그야말로 목숨이 오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잘 관리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잘 관리해도, 터질 일은 터진다. 어느 비 내리는 날. 비 오는 날이니까 기압도 낮았다. 기압이 낮으니까 기화되어야 할 가스가 바닥으로 깔린다. 공장 바닥이나 마당에도 비 오는 날에는 깔리는 걸 모르고 있게 된다. 잘 보이지가 않으니까 모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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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불이 붙어 살이 타 들어가고..살은 뚝뚝 떨어져
그 날도 가스는 바닥으로 깔렸다. 잘못 관리한 가스는 마당 저 쪽 연탄 아궁이 있는 쪽으로 가더니 화기와 접촉하면서 폭발했다. 온몸에 불이 붙었다. 당시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하면, “불기둥 하나가 뛰어 다니고 있더라!” 라고 말했다.
옷에 붙은 불을 끄려고 뛰어 다녀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뜨거우니까 견디기 힘들어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뛰는 것이다. 그대로 두면 불길에 타 죽을 것 같으니까 덩치 큰 사람이 나를 밀어 땅에 쓰러뜨리고, 비가 와서 드럼통에 고인 물을 떠다가 나에게 끼얹어서 불을 끄려고 했다.
그동안 손에 들었던 걸레에 불이 붙어 살이 타들어가고, 불에 탄 고기덩어리가 늘어져 있어, 이 쪽 손에 든 걸레를 버리고 나니, 반대 쪽 손에 쥐어졌던 걸레가 또...
더욱 겁나는 건 그러는 동안에 화공 약품에 불 붙으면 화재는 물론 인명 희생도 생길 지경이었다. 소방관이 왔지만, 인화물질이 어딨는지 모르니까 내가 소방관 붙들고 설명을 해주고 있는 동안에도. 손에 불이 붙었다.
경찰관도 오고 소방관도 왔다. 경찰관이 날 붙들고 조서를 쓰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이 “이 사람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야!”하고 고함을 처서 나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가서 옷을 벗기려니, 옷과 살이 다 타서, 옷에 붙어 볏길 수가 없었다. 옷을 벗기면 살도 같이 벗겨져 내렸다. 의사 여러명이 어쩔줄을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다.
아내가 병원에 달려왔다. 내 몸에서 수액이 다빠져 내려, 침대에 비닐을 깔아놓았는데, 온몸에서 물이 흘러 나와 비닐은 물침대처럼 되었고, 수액을 꽂긴 했어도, 내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었다. 응급상황이었으니 응급대응을 해야 했지만....
수액만 꽂아놓고 별 조치를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매부가 쌍용비서실장으로 재직하고 있어서, 어찌어찌 손을 썼는지, 그 덕분에 시골 병원에서 서울 백병원으로 옮겨 왔다.
나는 10층으로 올라갔다. 뛰어내리려고....
정형외과에 입원했는데, 며칠이 지나서인지, 온몸을 둘둘 감다시피 했던 거즈를 다 풀고 목욕을 시키려고 나를 물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온몸울 쑤세미로 긁어냈다. 살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대로 두면 썩을까봐 긁어내야 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내게 자갈을 물렸다. 너무 아파서 이를 지나치게 악물면 이빨이 다 부서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쑤세미로 마취도 안 하고 내 상한 살점들을 긁어내는데 그 아픔이야 말로는 표현이 어려울 정도였다. 아니 너무 아파서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치료를 받고 겨우 살아나긴 했다. 몸은 물론 말이 아니었다. 아니 몸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그 아픔은 말로 할 수도 없고 비명을 질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통제나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생으로 하는 치료에 따른 아픔은, 지금도 뭐라고 표현이 안될만큼이었다. 나는 화상환자 중에서도 아주 중한 환자라, 다른 환자와 같은 방을 쓸 수가 없어서 독실에 들어가야 했다.
전신의 3분지 1이 3도 화상을 입었다. 그래도 의사를 잘 만나서 45일만에 퇴원했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으로 남은 피부를 떠서 다른 쪽으로 이식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는 동안, 그 고통을 제대로 표현할 작가가 이 세상에 있을지...
나는 그 고통 속에서 45일을 견뎠다. 그리고 퇴원했지만,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화상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치료비의 아픔은 또 별난 아픔이었다. 치료비가, 나는 신분이 사장이라 산재보험도 안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치료비를 내야 하니....조금씩 모아두었던 개인돈까지 다 써버렸다. .
치료 받기가 고통스러워서 자살하려고까지 마음 먹었다. 손이 다 없어졌다. 있긴 있지만, 손가락이 모두 붙어버린 손. 어느 날은 의사에게 물었다.
“이 고통 다 지나고 나면 내 몸이 괜찮게 됩니까?”
의사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모르겠으면, 그러면 나는 다 끝난 거냐고 물으니 그의 대담은 희망적이 아니었다.
“잘모르겠습니다.”
“.......”
“환자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까?“라고 또 물으니 그의 대답이 짧게 끊겼다.
”잘 모르겠습니다.“
의사조차 모르겠다면...자살하려고 마음 먹었다.
병원은 10층이었다.
나는 10층으로 올라갔다.
뛰어 내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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