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남자는 평생 세 번만 크게 울어야 한다지만...구자관 칼럼 (눈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맛을 몰라도 좋으니 눈물은...

구자관 | 기사입력 2022/06/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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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책임사원 구자관 칼럼 51 (눈물)  

남자는 평생 세 번만 크게 울어야 한다지만... 

    나는 한국 사람 가운데서도 눈물 많이 흘린....  

 

▲  어린 시절 눈물을 누구보다 많이 울린 구자관대표액임사원...이제는 울 일이 없으니 눈물도....   © 운영자

 

사친회비 안 냈다고 졸업장 안 주던 그 졸업식장에서

[yeowonews.com=구자관] “울지 마라. 더구나 남자가 눈물을 그렇게 많이 흘리면 안된다.”

어느 라디오 연속극에선가 들었을법한 대사(臺詞). 그런데 내가 직접 들었다. 여러번 들었다. 10살 되기 전에 6.25전쟁을 겪은 한국남자 치고 이런 소리 몇 번 안 들어 본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전쟁은 그렇게 눈물 많이 흘리는 사람들을 양산(量産)한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눈물 많이 흘린 한국사람속에 포함된다. 그만큼 내 인생은, 특히 초반부에 눈물로 질척거린 삶이었다. 나이 들어 생각하면, 남자의 눈물이라면 역시 <박정희의 눈물>이다. 그가 우는 사진, 훌쩍거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콧물을 닦는 사진을 보며, 주먹 불끈 쥔 한국 남자도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남자의 눈물은 그렇게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물론 내 인생이 흘린 눈물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눈물과는 구별이 되지만, 사나이의 눈물에는 그만큼 애절함이 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먹으로 쓱 문지르는 남자의 눈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는 드라마틱하게도 보이겠지만, 그 눈물을 흘리는 당사자의 가슴은 오죽했을까?

 

물론 어려서 흘리는 눈물은 <사나이의 눈물> 에 안 끼워줄지 모르지만, 그 눈물을 흘리는 남자는, 그런대로 참기 힘든 인생사연을 지닌 사람임에 틀림 없다.

 

나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살았다. 눈물 많은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눈물을 흘리는 그 시간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나이는 평생에 세 번 운다는 눈물 철학은 누가 발명한 작품인지 몰라도, 눈물 공부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 한 말 같기도 하다. .

 

생각해 보면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울었다. 특히 어렸을 때 흘린 눈물은 또래들에 비해 몇 배는 많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 때 내 눈물은 양()도 많았지만, ()로 따져도 순도(純度)가 높은 눈물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때도 많이 울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새나라의 새일꾼이 되겠습니다

 

이 졸업식 노래를 들으며, 다른 애들은 안 울었지만 나는 많이 울었다. 사친회비 못냈다고 졸업장을 주지 않아서, 졸업장 못받은 졸업식이 서러워서였는지...어린 나이에 참으로 견딜 수 없어 흘린 눈물이다.

 

▲ 견디기 힘든 가난 속에서, 눈물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던 소년은..... 이제 매출 1조가 넘는 기업의 대표책임사원이 되어.....  © 운영자

 

참을 수 없어 울던, 나의 눈물 젖은 소년시절

그리고 그보다 먼저, 1958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사은회를 했는데 사은회비 안 냈다고, 나는 사은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사은회라야 사과나 사탕, 사이다, 삶은 계란 등을 놓고 하는 조촐한 모임이였지만, 사은회에 못 들어오게 해서, 사은회 하는 교실 유리창 밖에서, 사은회장을 창밖에서 들여다 보며, 그 때 내가 참 많이 울었다. 몇 끼를 굶어서 배가 엄청 고플 때도 안 울었는데... 사은회장에서 소외된 눈물....참을 수 없었던 나의 눈물 젖은 소년시절.

  

어머니는 5남매였다. 어머니가 장녀. 외삼촌이 그 다음. 그리고 다음으로 이모가 셋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5남매의 맏딸이었다. 엄마가 다섯번째 낳은 아이가 바로 나였다. 1944, 해방되기 전해였다.

 

1943년에 우리 막내 이모가 시집 가고, 우리 엄마를 비롯해 5자매가 다 출산했는데 모두기 아들이었다. 그렇게 같은 시기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초등학교 졸업식까지는 다 같이 했는데, 사촌 네명은 다 중학교에 갔고, 나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슈우샨보이 박스를 메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 때 많이 울었다. 교복 입은 사촌들과, 구두닦이 통을 메고 마주치던 날이 있었는데, 그런 날에도 나는 많이 울었다. 그러니까 가난은 항상 눈물을 동반했다. 가난은 한과 슬픔과 눈물을 함께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물로 질척거린다.

  

▲  그는 사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망정, 자신을 위해서는 이제 울지 않는다.   © 운영자

 

지금도 잊지 못할 세 번의 뜨거운 눈물은....

슈우샨 보이를 하다가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때는 공장에 다닌다면 깜장탈을 쓴다고 했다.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고 공업용 기름을 만지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매지니까, 깜장탈을 썼다고 한 것이다.

 

공장엔 다니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안 다닐 수는 없었다. 야간학교일망정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공장에선 내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 가기 위해 공장에서 나올때, 주인이 야 어디 가?”하고 부르기 일쑤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내가 야간학교 가니까, 그러니까, 공장 주인이 학교 가지 말라는데 가니까 미워서, 내가 학교 가려고 나설 때 꼭 나를 부르고, 학교 간다고 그러면, 욕을 하면서 야 너 내일부터 그만 둬! 나오지 마!!”.... 그러니까 해고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에 내가 굴하지 않고, 이튿날에도 공장에 나갔고, 일 하다가 책가방 들고 학교로 가곤 했다. 그것이, 야간학교나마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나의 희망이었다.

 

동갑내기 사촌들과 한 동네에서 함께 컸다. 해방도 함께 맞았다. 죽느냐 사느냐 6.25도 함께 겪었다. 그래도 사촌들과 함께 다 무사히 겪어나갔다. 키를 재보며 함께 자랐다. 같은 나이라 중학교도 함께 가야 하는데 나만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자연스레 가슴에 못이 박혔다. 열세살 그 나이에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밤이면 엄마 못듣게 소리 없이 흐느끼며 베갯잇을 꽤 여러장 적셔놓기도 했다.

 

그동안 꽤 많은 눈물을 흘렸다.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내 인생 동안, 세 번의 눈물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고,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눈물 잊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게 되리라는 것이 내 예감이다.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사주었는데, 아이들은 더 먹고 싶다고 했지만, 고기를 더 사주지 못해 흘린 눈물. 아이들은 불광동에 살고 나는 신당동 살 때였다. 아이들을 불광동에 데려다주고, 나는 신당동집으로 어두운 밤중에 걸어오면서, 밤중이라 남의 눈 꺼릴 것도 없이, 참 많이 울었다.

 

두번째는 시각장애인 학교에 가서, 그 학생들 앞에서 뭐라고 인사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 그냥 마이크를 잡고서 끼억끼억 울던 때의 그 눈물도 참으로 아픈 눈물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창립 30주년 되던 날, 거래처 사장님들 앞에서 인사말을 해야 하는데, 그분들과 악수할 때의, 그 분들의 거친 손...그 거친 손의 감각을 지울 수 없어,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 대신 울어버린 눈물.

 

참 많이 울며 살았다. 남자의 눈물이다 하면, 박정희 전대통령의 눈물이 생각난다. 그 눈물은 개인적인 눈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나 민족울 위해 흘린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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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댁 22/06/19 [09:32] 수정 삭제  
  기쁠때, 슬플때, 재미있을때 눈물이 납니다. 눈물은 눈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눈물은 살아 있다는것,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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