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소설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

문정화기자 | 기사입력 2019/04/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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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리뷰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소설


2019년 4월 11일, 역사적인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있었다. 낙태죄가 형법에 규정된 지 66년만이다. 이 결정을 이끌어내기까지 많은 여성들의 노력이 있었다.

 

열다북스가 출간한 이유주 작가의 장편소설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는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혜화역 시위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의 새로운 세대 여성운동을 촘촘히 재구성해냈다.

 

'혜화역에서', '사면발이', '탈코르셋', '강남역 살인사건' 등 소제목에서부터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대 여성이 차별받은 것이 무엇이냐는 한국 사회의 물음에 당사자들은 '왜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되었나' 그 답을 소설 속에서 풀어낸다.

 

여성에게도 동등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고 헌법에 '남녀평등'이 명시됐는데도 왜 여자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는지. 이 책은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구조에 여성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평등이 달성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성 평등에 대한 사회 통념 및 기존의 사회운동과 그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는 여섯 명의 페미니즘 동아리 멤버들이 각자의 소신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펼치며 전개된다. 운동 노선에 따라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충실한 묘사이다. 동아리 멤버들은 각자 노선에 따라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낙태죄 폐지’ 문제에 있어서는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인다.

 

▲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열다북스 제공]    © 운영자

 

운동권 페미니스트 유진과 대립각을 세우던 수진은, 유진이 임신중절수술을 한 뒤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렇게 말하며 유진과 화해한다. “난 여전히 유진이가 싫고, 유진이의 방식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는 건 반대해. 그뿐이야.”(p.193)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는 물리적, 사회적 폭력은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떤 차이도 뛰어넘어 여성을 일치단결하게 한다.

 

한편, 여성 운동뿐 아니라 각종 사회 운동에 열렬히 참여하던 유진이 임신중절수술을 하게 되는 장면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결정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임신중절수술은 분명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지만, 임신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들은 결코 여성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다 부작용 때문에 중지하고 콘돔 착용을 요구하는 유진의 말을 남자친구는 간단히 거절한다. 유진은 잠시 고민하다 ‘사후 피임약을 복용하면 되겠지’ 하고 허락해 버리는데, 마침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사후피임약을 복용할 수 없었다. 다음날 수업을 마치자마자 유진은 병원에 가서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지만, 결국 피임에 실패하여 임신을 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해 줄 병원을 알아보고,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은 모두 동아리 친구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 수술을 허락할 권한은 유진의 남자친구가 쥐고 있다. 수술 받으러 찾아온 유진에게, 의사는 말한다. “애기 아빠랑 상의도 한 번 잘 해봐요. 애기 아빠 동의 없이는 수술 못하니까.”라고. 그리고 남자친구의 동의가 왜 필요하냐고 따져 묻는 지현에게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혹시나 애기 아빠가 나중에 딴 소리할 수도 있고, 나중에 알고 경찰에라도 신고하면 학생이나 우리나 다 곤란해져요.”라고.(p.190-191)

 

여자 친구의 피임 요청을 간단히 거절함으로써 임신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남자친구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임신중절수술 여부를 결정할 권한, 더 나아가 이를 경찰에 신고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을 이 소설은 고발하고 있다.

 

나중에 소설 말미에서 유진의 남자친구는 또다시 콘돔 착용을 거부하고, 이에 실망한 유진이 섹스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낙태까지 한 게”라며 유진을 깔보고 위협한다.(p.234) 여기서 낙태죄는 사실상 남성의, 자신과 성관계한 여성을 위협할 권리를 위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낙태죄 폐지는 그간 진영을 막론하여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집중하던 의제였다. 소설 속 페미니즘 동아리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의견 대립을 보이다가도 낙태죄 폐지 운동에는 모두가 동참하는데, 여기서 낙태죄 폐지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살펴볼 수 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현의 지적에 따르면 사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대립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이 아닌, 국가 권력이다.(p.183-184)

 

한편, 동아리 멤버인 보라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동참하면서도, 낙태죄가 폐지된다 한들 비혼, 비연애, 비섹스주의자인 자신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음에 씁쓸해한다. 그리고 낙태는 문란한 여성들이 많이 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사실은 기혼 여성이 제일 많이 함을 지적한다.(p.185)

 

낙태죄 폐지는 여성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일 뿐,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이 소설은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거는 물론, 낙태죄 폐지 이후 갈 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편 작가 이유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운동에 동참해 오신 자매님들께서 지금 무척 지쳐 계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한 템포 쉬어 가면서 무너진 몸과 마음을 추스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공감해줄 상대를 만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지요. 제 소설이 지친 자매님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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