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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이희호 없었다면 대통령 될 수 있었을까? (4)

DJ를 위한 이희호의 헌신은 절대적이었다. 좋을 때나 궂을 때나, 이희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고....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08/0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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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4)

DJ.. 이희호 없었다면 대통령 됐을까?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라, 급할 때 내 편 된다

                  

     

▲ 집에 하루도 빼지 않고 수백명의 소님이 온다면, 대한민국의 아내들은 어떤 얼굴을 지을까? 이희호는 하루 300여명의 손님이 와도, 깍듯이 인사하고 대접하고, 피로한 내색은 전혀 없이...     © 운영자

 

   동교동집에는 항상 300명분의 밥그릇이 있었다 

 정치판에는 또는 권력의 마당에는 평범한 인간상보다 극단적인 인간상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허기야 정치는 지배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까 평범한 인간상들이 자리를 잡을만큼 편안치 않을 것임은 사실이다.  

 

 더구나 난세의 정치판에 뛰어든 인간상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넌덜머리 나게도 하고, 기겁을 하게도 한다. 

  그 난세의 정치판을 대표하는 저술(著述)로, 중국 최고의 사가(史家)로 꼽히는 사마천(史馬遷)의 ‘사기(史記)’가 있다. 

  ‘사기’에는 그당시 중국 고대의 각가지 인간상이 다 등장하지만,  그 시대 중국의 갑부이고 나중에 재상까지 벼슬을 한 대표적 정치가로 꼽히는 춘성군과 맹상군의 얘기가 있다. 

 

 그 두 사람 집에는 언제난 줄잡아 2-3천 명의 식객이 있었다. 식객이란 주로 정치가나 재산가의  집에 얹혀서 살며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냥 얻어먹으러 온 가난뱅이가 아니라, 자기가 신세 지고 있는 주인을 위해서 언젠가 한 가닥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3천여 식객 가운데는 무용지물이라  쌀이나 축낸다는 평을 듣는 사람까지도 섞여 있었지만 춘성군이나 맹상군은 절대로 그런 사람들까지도 홀대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현재는 식객 노릇을 하고 있으나 학문이나 무예가 언젠가는 써먹을 데가 있으리라고 그들을 신뢰하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춘성군이나 맹상군은 그 식객들로 해서 재상까지 뒨 것은 아니지만, 식객들은 그 두 사람의 성공을 있게 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희호의 동교동 집에도 그런 의미에서의 식객은 아니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그칠 날이 없었다. DJ를 고립시키려는 군사정권이 아예 동교동 출입을, 들어오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까지 완전 통제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손님이 그치지 않는 나날을 이희호는 보내야 했다.

 

 이희호의 동교동 집에는 부엌의 그릇만 300인분이나 된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찾아오는 손님의 숫자가 보통 집 하고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있었다. 

  

 

 

▲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위에도 이희호는 항상 국민들과 함깨 하기를 즐겼다. 대통령 영부인이 된 후 DJ의 고향을 찾아 그 곳 DJ의 이웃들에게 다가가 인사하늕....     © 운영자

 

                      "손님은 모두 우리 가족입니다"

 고향과 타향의 차이는 내 집과 남의 집의 차이이다.  내 집과 남의 집의 차이는 편안하고 불편하고의 차이이다.   고향 같은 집에는 손님이 많다. 내 집 같은 집에는 당연히 손님이 많다. 

 

 타향 같고 남의 집 같아서 불편한 집에는 손님이 있을리 없다.  사람이 찾아 오지 않는 집도 집이냐는 소리를 필자는 듣고 자랐다. 가난했지만 오는 사람을 한 번도 소흘하게 대접해 보지 않은 집이었고, 번잡스럽게 사람의 왕래가 있는 집이야 말로 사는 것 처럼 사는 집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종가(宗家)나 맏이의 집엔 언제나 손님이 많다. 종가나 맏이의 집인데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그 집 주인의 인간성이 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희호가 하루 2-3백명의 손님을 맞았다는 사실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혼 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은 67년, 7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고 민주당 대변인을 맡고 부터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손님 위주의 가정이 된 것은 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직전부터였다. 

 

 남편이 큰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찾아오기 시작하는 손님을 자칫 소흘히 대하면 그 피해가 남편에게 돌아오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이희호였다. 아니 꼭 피해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손님을 맞는 데는 예의를 다 해야 하는 것으로 배우고 자란 순 서울 태생의 이희호였기에 힘이 들어도 내색하는 일이 없었다. 

 

 가족과 비서들에게도 손님 맞기에 예의를 다하도록 항상 당부하는 이희호였다. 

 “집에 오는 손님은 누구나 내 가족처럼 대해야 합니다. 방문객이 누구든지 친절과 겸손으로 대해야만 됩니다.”

 

             

▲ 집안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하고 화기애애 해야 된다는 것이 이희호가 받은 가정교육이었고, 그래서 아들손자 며느리와 함께 있기를, DJ도 영부인도...     © 운영자


    

                   불청객도, 내 집에 왔으면 엄연한 손님이다

 72년에 유신이 선포되었을 때 이희호는 뼈를 깎는 듯한 외로움과 공포에 휩쌓인다. 

 

 집안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DJ는 이희호의 간절한 설득으로 고관절 치료차 일본에 가 있었고 동교동 집은 페쇄되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아무도 들어 올수도 없다는 해괴망칙한 조치가 이상야릇한 정권에 의해서 취해졌다. 

 

 그토록 사람의 그림자가 끊이지 않던 집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어른거릴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이희호를 생각해 보라.  감옥에 가 있는 것보다 더 한 적막감과 외로움이 뼈를 깎 듯 했으리라.

 

 그러니까 이희호는 손님으로 발 디딜 곳도 없는 가정만 꾸려 간 것이 아니라 손님 커녕 내 집 식구도 못 들어오게 된 이상한 가정도 꾸려 나갔다.  밤이나 낮이나 사람이 끊이지 않는 번잡스러움과 아무도 오지 않는 적막강산 중 어느 것이 인간이 사는 것 같앴느냐고 물으면 이희호는 당연히 번잡스러운 쪽이라고 말 할 것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즉 DJ가 한창 정치활동이 왕성할 때는 밤에도 밀어 닥치는 손님이 있었다. DJ는 귀한 손님이라고 때로는 이희호가 자려고 하는 안방에까지 함께 들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자리에 들려던 이희호는 혼비백산 화장실로 피해 있다가 손님이 간 다음에나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그런 번잡스러움이 적막강산 시절 보다 다행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이희호다.

 

 집에 사람 찾아 오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이, 그 집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집 사람도 드나들어야 집이 집 같은 맛이 나고 사람이 사람 같이 사는 맛이 난다.   불청객도 손님이다. 불청객이라 해서 찌프리고 대하면 찌프릴 일이 내게도 생김을 어찌 하랴?

 

 

▲ 일본 동경에서 강제로 납치당해 온 DJ. 그의 생명은 풍전등화 같았고,곁에서 외롭게 남편을 온몸으로 지키는 이희호는, 탄압울 당할수록 점점 더 지혜롭고 강한 아내가 되어....     © 운영자

 

 

           만나는 사람마다 내 편 만들기      

 손님을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실패한다는 나쁜 전제를 미리 세워 놓고 출발하는 것이나 같다.

 

 이희호의 동교동 집은, 그리고 DJ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일산집도 언제나 개방되어 있었다.

 

 그 개방된 집에서 빈한할 때나 여유가 있을 때나 손님을 가족같이 대하던 이희호의 인품이 DJ 곁에 많은 사람이 있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친구나 회사 동료나 또는 시집 식구들이 오면 상부터 찡그리는 아내는 없는가?

 남편들의 불평 중의 하나가 “아내는 찾아오는 손님을  잘 접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내 집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에게는 내 가족 같은 친절과 겸손으로 대하라는 이희호의 충고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결과적으로 내 편을 만들었다는 이희호의 인간관계가 결국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였단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능하면 남편 곁에 많은 좋은 사람이 다가 오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아내의 인간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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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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