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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없이도, DJ가 대통령 되었을까?(5)

이제는 누가 이희호처럼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다. 우선 이 나라엔 현재 DJ같은 남자가 없으니....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08/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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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없이, DJ 대통령 되었을까?{5}       

 

    선택에 책임 지라, 아름다운 끝이 있다

이희호는 스스로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여자의 몸과 마음으로 견뎌내기에는

형벌 이상이었던 괴로움과 어려움과 외로움과 무서움을 뛰어 넘어

그녀가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안다. 

                  

 

 

▲ 사형선고까지 받은 남편 DJ는, 이희호의 인생에,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나 이희호가 형벌 이상이었던 온갖 괴로움과 어려움을.,..     © 운영자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랑

 만나는 것이 쉬운 시대에는 헤어지는 것도 쉽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은 후, 몇 년 씩이나 아픈 상처를 안고 보듬고 살던 사람들의 시대에서 보면, 지금은 사랑도 쉽고 이별도 쉬워졌다.

 사랑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별의 통증으로 시달려 본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겐 쉬운 사랑도 쉬운 이별도 낯설어 보이기만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랑하는 기간도 짧지만, 사랑보다 더 짧은 이별의 뒷마무리에 아무런 장애도 안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겐 지나치게 긴 사랑의 시간이나 사랑보다 더 긴 시간의 이별의 고통 같은 것이 낯설어 보이기만 한다. 

 

 그런데 일단 결혼에 이르면 결혼 전에 사랑과 이별을 겪은 경력 여부에 상관 없이 따지는 일에 부딪치게 된다. 

 사랑은 아무 것도 따지지 않는다. 

 시대에 상관 없이 사랑은 따지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혼에 이르면 돌연 따지는 일이 사랑의 통행을 제지한다. 

 흔히 이런 현상을 사랑은 시(詩)지만 결혼은 산문이라서, 시적(詩的) 느낌과는 달리 산문답게 따질 것을 따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은 따지지 않기에 상대를 가리지도 않는다. 

 

 사랑은 따지지 않기에 상대의 신분이나 재산이나 연령이나 좌우간, 결혼이 기어코 따지러 드는 여러 가지를 좋게만 보아 넘긴다. 사랑이 지닌 시적 감미로움이다. 

 그런데 결혼은 사랑이 놓쳐 버린 것을 그냥 넘기는 법이 별로 없다. 까다로운 후진국 공항의 세관원처럼 이 구석 저구석을 잘도 뒤져내어 당사자들을 당혹하게 한다. 사랑이 관대하게 넘겨 버린 여러 가지를 짓궂게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사랑은 감정이고 느낌이지만,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 군사정부에 의해 항상 감시당함은 물론, 구속 수감도 여러차례,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던 DJ.. 아무도 그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던 DJ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믿었던 이희호는....     © 운영자

 

 사랑은 즐거움이 목적이다.  정신적인, 육체적인, 물질적인 즐거움이 사랑의 목적이지만, 결혼은 인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 가야 한다는 것이 결혼의 집요한 조건이다. 

 

 특히 여자에게는 부모를 잘 만나는 것보다 남편을 잘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따지는 것도 여자 쪽에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이 안 보이는 결혼                              

  사랑을 함에 있어선 당사자의 눈으로 상대를 고르고, 결혼을 함에 있어선 제3자의 눈으로 상대를 고르라는 충고는, 결혼 조건의 객관성 유지를 위해서다.

 사랑은 부드러운 것, 감미로운 것, 밝은 것, 따사로운 것만을 가지고 오지만, 결혼은 딱딱한 것도, 쓴 것도, 어두운 것도, 차거운 것도 있는대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이 제3자의 눈에는 용케도 뜨이는 것이 결혼조건이다.

 

 본인이 선택한 사람을 주위에서 마다 하는 경우 대개는 결혼의 장래를 생각하는 주관과 객관이 다른 데서 연유한다.  이희호도 DJ와 결혼함에 있어, 이희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까다로운 제지를 수도 없이 당한다. 

 

  DJ가 지닌 여러가지 여건을 꺼려 하는 사람들과, 이희호가 지닌 여러 가지 조건을 고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뜻이 어우러져 비롯된 완강한 반대에 이희호는 부딪친다.

 그러면 DJ가 지녔다는 조건은 무엇이고, 이희호가 지녔다는, 주변 사람들이 고수하고 싶어 했던 조건들은 무엇이었을까?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김정례(전 보사부장관)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된 두사람이었다. 깊이 알게 되기 전 이희호는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결혼은 62년에 했으니까 알게 된지 11년만에 이루어진 결혼이었지만 주변에는 찬성자보다는 반대자가 더 많았다. 

 

▲ DJ와의 결혼을 반대하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DJ의 아내가 되기엔 이희호가 너무 아깝다는 소리까지 하며 그 결혼을 만류했지만....     © 운영자

 

 반대하는 이유는 물론 DJ가 지닌 조건들이 이희호에게 적당치 않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 DJ냐는 것이었다. 

 

 DJ는 한 번 상처한 홀아비인데다가 자식이 둘이나 있고, 늙은 어머니에 병 든 누이동생에 전세방에 사는 가난한 사람인 데다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3번이나 낙선을 했고 겨우 61년 인제 보선에서 당선은 되었지만 5.16으로 선서도 못하고 감옥에 다녀온, 야당 하는 사람으로서 당시엔 낭인이나 다름 없는데 왜 하필 DJ냐는 것이 이희호와 함께 YWCA 등 여성운동을 하던 주위 사람들의 만류였다. 

 

 한 마디로 앞이 안보이는 결혼이라는 이유였다.

 

       이희호가 DJ를 만나지 않았다면...        

 ' 앞이 안 보이는 결혼'.  즉 희망 없는 결혼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깜깜한 절망이 어떤 전망도 할 수 없는 결혼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주위에서 이희호를 아끼는 사람들의 눈에는 심지어 결혼이 아니라 함정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결혼이었다. 

 

  이희호는 여성운동을 하는 선배나 동료들이 아주 아끼고 키우고 싶어하는 인재였다. 

 이희호는 이화여대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귀국, 이대 사회사업과 강사, 대한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 협의회 이사 등, 이미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DJ만큼 많이 알려진 여류명사였다.

 

 그러니 DJ와 결혼 할 것이 아니라, 장차 이 나라 여성계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당부가 섞인 만류였다.  말이 만류이지 노골적이고 때로는 집단적인 반대이기도  했다. 

  그 능력과 경력을 살려 가면, 장차 김활란(전 이화여대 총장)같은 교육자가 되거나 마더 데레사 같은 기독교 사회복지사업가가 될텐데 DJ가 뭐냐고, 그녀를 아끼는 사람들은 공동으로 그 결혼을 반대 했고 눈물을 흘리며 반대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나라 여자는 결혼 후, 자기의 능력과 경력과 야심 모두를 보류하고 연기하고 체념하고, 그러다가 아기를 낳으면 마침내는 ‘꿈의 매장’이라는 순서에 도달하게 된다.

 이희호가 그렇게 되는 것은 너무 심하게 아깝다는 것이 그 결혼 반대자들의 테마였다. 

 그러나 이희호는 자기를 잊고 한 사람의 그늘에 들어가는 그 한국식 결혼, 한국식 여자의 인생을 선택한다.

 

 주변에서 말리고 방해하고 깨려 해도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정도의 설득과 만류를 무릅 쓴 결혼의 결정은 결정이라기 보다는 결단이라고 해야 옳다.   한 남자를 선택함으로서 다른, 모든, 보다 좋을 수도 있는 결혼 상대자를 포기하는 데서 오는 선택의 고독은 평범한 결혼의 결정에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희호에게는 평생 그러한 선택의 고독조차가 따르지 않았다. 선택의 고독 어쩌고 하는 것이 사치스럽게만 여겨질 정도로 현실이 항상 다급하고 생사가 걸리기 십상인 사건의 연속이었으니까.

 

▲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했던 이희호여사. 그 시대에 가장 어려운 남자였던 DJ와 결혼함으로서 이희호는 주변 사람들 말대로 "진짜 고생길에 들어섰다"지만....     © 운영자

 

     결혼 9일만에 잡혀간 남편              

  그 당시 DJ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이희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은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도와야 할 좋은  사람입니다.”   

 필자가 이희호의 결혼에 대해서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길게 얘기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경력이나 당시의 사회적 배경으로 보아 이희호가 아주 어려운 선택을 했고,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그 선택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면서 결혼 당시에 지녔던 DJ에 대한 자신의 뜻을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그녀가 그 후 이 나라  현대사에 끼칠 영향력과 그 선택이 무관하지 않아서이다.  

 

 평범하지 않은 여자가, 평범한 여자들이 하듯 결혼 후 스스로의 경력과 능력을 모두 파묻고 오직 남편의 일에만 전념키로 결심하는데, “어디 얼만큼 결심했는지 두고 보자!”는 짓궂은 운명의 신이라도 있었는지, 남편은 결혼하고 9일만에 붙들려 간다. 

 

 그 후 그녀가 겪어야 했던 온갖 가혹한 수난은 이 나라의 민주 발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역사를 책임지려는 한 남자의 거창한 꿈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꿈으로 그치지 않도록 협조하려고 결심한 결혼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희호는 그의  꿈을 마침내 이룩하게 했다.  이희호는 스스로의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여자의 몸과 마음으로 견뎌내기에는 형벌 이상이었던 괴로움과 어려움과 외로움과 무서움을 뛰어 넘어 그녀가 이룩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안다. 

 

 스스로 위대해지기 보다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 내기는 더욱 어렵다.  이희호는 자기가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묻어 두고 남편이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이룩하게 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기를 잊는 것도 뜻대로 했고, 자기 대신 DJ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어렵긴 했지만  뜻대로 했다.

 

 남편을 통한 일종의 간접 성공을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인데, 그렇다면 DJ보다 이희호의 인생이 더욱 자유자재였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곤두박질 치는 사회의 브레이크 역할

 결혼하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결혼 안 하면 죽인다고 누가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댄 것도 아닌 결혼을 해 놓고서 “아냐, 그 때 뭐가 잘못 되었어. 단추가 잘못 끼워졌었어!” 어쩌고를 뇌까리는 아내들도 없지 않다. 

 

 남편이 부도를 내거나 명퇴나 정퇴를 안 했어도  한두번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아내는 이제 한국에는 별로 없다. 허지만 스스로의 선택 앞에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남편이 비록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가 미흡하다 하더라도 그를 도와 그의 꿈을 이룩하고, 스스로의 꿈도 간접 성취 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버리고 다시 시작하느니 보다 훨씬 낫다. 

 

 실패하는 사회. 올라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려가는 사회, 그것도 곤두박질을 치는 사회에는 그 실패의 속도를 견제할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 때의 브레이크는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모델로 제시 할 표상이 필요하다. 그 동안에 없던 표상을 우리가 지니게 된 것은 드문 행운이다.

 

 여성들에게 있어 그 표상의 역할은 이제 이희호가 맡는다. 이희호는 실패 사회를 견제할 주체인 여성들의 표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살아 왔다.  결혼초부터 인생이 온통 IMF인 남자를 만나 자기의 인생도 IMF 가 되어 버렸던 이희호는 남편과 함께 ‘IMF 인생’을 극복함으로서 이 시대 여성들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온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 한 사람들에게,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용도폐기는 없다. 실업을 하거나 부도를 내서 쓸 모 없어진 남편이라고 용도폐기를 하거나 눈치를 먹인다면 누가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겠는가?

 

 남편과 함께 하는 인생이 힘들고 벅차거든 이희호를 생각하라. 그녀라면 이 어려움을 어떻게 넘겼을지, 어떻게 참고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뎌 나갔을지를 생각하고 남편의 인생을 보듬어 주라.

 

 그것이 우리의 선택에 대해 최대한으로 책임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선택에 책임지고 스스로의 선택을 마다 않고 짊어지고 갈 때 우리들 인생의 끝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것을 이희호는 증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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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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