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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없었다면 DJ가 과연 대통령 되었을까? [ 6 ]

이희호가 지닌 능력, 또는 위대성은 그가 DJ를 선택하고 결혼하고, 만난들 극복한 데서 발견되지만...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19/08/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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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6 ]

          DJ.. 이희호 없었다면 대통령 됐을까?

 

아들을 엄격하게 키워라, 그래야 큰 인물 된다

 

 

     딸은 무효이던 시대에

 딸이 하나 태어 나면 두 사람이 피고석에 섰다. 

 하나는 아들 아닌 딸로 태어난 본인이고, 하나는 아들 아닌 딸을 낳은 그 어머니이다.

 여기서 피고석이라 함은,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난 사람의 어두운 미래를 상징적으로 의미하느라 필자가 붙인 이름이다.

 확실히 조선 땅에서는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피고석에 서는 것을 의미했다. 

 칠거지악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는가? 그 칠거지악 속엔 무자(無子)라는 조항도 있었다. 자식을 낳지 못함은 여자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곱가지 죄 가운데 하나를 저지른 것으로, 남편으로부터 쫓겨 나도 할 말이 없었다. 

 

▲ 아무도 그 앞날을. 밝게 예견할 수 없는 결혼식이었다. 군사정권은 DJ릐 목숨까지 노리는 판이었고....그러나 이희호는 "'이 남자에겐 내가 필요하다"며 결혼을...     © 운영자

 

 문제는 그 무자를 얘기할 때, 딸은 자식의 개념에 넣어 주지 않았다. 즉 딸은 낳으나 마나였다. 딸은 무효였던 것이다. 

 남자들은 아내가 딸 낳는 것을 싫어해서 다른 여자를 얻어서라도 아들을 보려 했으니까,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다른 여자 얻고 싶은 남자는 아내가 딸을 낳으면 낳을수록 대놓고 바람피울 기회가 주어졌으니 좋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자식의 개념 속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딸은 평생을 피고석에 선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반대로 아들은 어땠는가?  내 맘대로였다.

 조선의 모든 어머니들은 아들이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다 싶이 했다. 

 그런 식으로 성장한 아들은 결혼을 하면 자기 아내가 자기 어머니처럼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기를 요구한다.

 어머니들은 아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결혼 전에 어떤 여자와 며칠 밤을 자고 들어와도 눈 한 번 흘기는 것으로 그 죄를 사해 주었다. 아들은 도덕적인 어떤 것에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란 아들은 결혼 후에도  자신이 저지른 모든 부도덕에 대해, 아내가 어머니처럼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정말 이상한 남자가 되어 버린다. 

적어도 100년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최근 60-70년대까지도 우리가 구경할 수 있었던 풍경의 하나다.

 

      게다가 딸은 무용지물            

 많은 미혼남성들이 그래서 이상적인 결혼 상대자를 물으면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말했다.

 모성(母性) 그 자체를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잘못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어머니의 무한관용만이 남자가 제대로  사는 길이라고 믿는 의식의 소산이었다.

 아들 선호사상은 어디서 오는가? 

 첫째는 전쟁국가 시절에 군인으로 나가서 적군과 싸우기에는 자연히 남자가 여자보다 필요해서 그랬다.

 둘째는 농업국가 시절에 농사 짓는 데에도 당연히 여자보다 남자의 손길이 더 능률적이어서 그랬다. 

 셋째는 제사를 지내주는 것은 아들이어서 그랬다. 

 어쨋든 끈질긴 아들 선호사상은 여자를 탄생에서부터 비극적 인식 속에 감금시켰다. 제사를 지내 줄 수도 없는 딸은 자식 범주에 들지도 못했다. 무용지물이었다.

 아들들의 인성(人性)은 특히 여자를 상대로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아들들이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친하면서도 어머니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 역시 여자에 대한 비하감에서 온다고도 보여진다. 

 여자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대인 관계에 있어 심한 편견을 노출하고 독선적이기 쉽다.

 이희호에게는 아들만 셋이 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위의 두 아들(홍일, 홍업)은 이희호의 소생은 아니다. 망내 홍걸만 친자이다.

 이희호는 그러나 아들 셋을 똑같이 아주 엄격하게 키웠다.

 홍걸에겐 더욱 엄격했다.

 잘못 생각하면 정치하는 남편 뒷바라지, 툭하면 감옥에 드나드는 남편 옥바라지 하기에 자식들에게는 소홀했을 것이라고 믿기 쉬운데 정반대였다. 

 

▲ 김대중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여사..그리고 세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 등...이렇게 큰 살림가정이 형성되기까지...그러나 이희호는 한 번도 생활의 어려움을 들어낸 적이 없이...     © 운영자


             

     그러나 당당한 아버지

 자식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들어주면서 키우는 부모는 그 자식이 컸을 때는, 자식이 잘못을 저질러도 큰 소리를 못 치고 눈치만 본다.

 어려서도 비위나 맞추어 가면서 키웠으니 다 큰 다음에 야 오죽하랴? 비굴한 부모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잘못이 없는데도 자식 눈치나 보고 기껏해야 자식의 스폰서 노릇이나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없지 않다.   

 만약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날에는 늙어서 자식 눈치 보느라고 그야 말로 눈물콧물 신세가 되는 부모는 또 얼마나 많은가?

 DJ는 어떤 아버지였는가?

 잡혀 가고 연금 당하고 납치당하기를 떡 먹듯이 하고,  뒷바라지 옥바라지 하느라고 어머니는 고생이 그칠 날이 없고, 80년 5월 서울의 봄이 박살이 나서 DJ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는 홍일, 홍업 두 아들도 체포된다. 

망내 홍걸은 나이가 어려서 잡혀가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태어난 후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날이 더 많았다.

 투옥에 망명에 툭하면 가정이 풍지박산이 나고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긴 이별과 자기 집  출입금지와 기관원의 미행에 시달리는 가정이었다.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절대로 비굴하지 않았다. 

 76년 3월 1일의 ‘명동성당 민주 구국선언’의 주범으로 구속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은 DJ는 최후진술을 한다. 

 

 “....이 법정의 방청석에는 나의 두 아들이 와 있습니다. 나는 내 아들들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매도당하는 조상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나의 일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속으로 우는 아버지

 그렇다면 그 아들들은, 이희호가 엄하게 키워낸 세명의 아들들은, 자기들을 고생만 시키고 교도소 출입과 망명과 연금으로 편할 날이 없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했던가?

 이희호는 여러 가지 역할을 운명적으로 한꺼번에 수행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정치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때로는 남편이 비운 집의 가장으로서.

  세 아들을 키움에 있어서는 자비스러운 모성애는 물론이지만, 아버지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들들의 인성교육에 비중을 두어야 했다. 

자칫 아버지가 불행한 정치가라 해서 측은한 마음만으로 키우다간 아들들이 장차 어떤 인간상으로 성장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이희호는 남편 대신 아버지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 아들들을 위축됨이 없이, 그리고 그늘에서 자랐지만 비뚜러짐이 없이 자라도록 엄하게 키워 나갔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말하는 것은 세상에는 들리지 않지만 그의 자식들에게는 들린다. 그것을 이희호는 알고 있었다.  

 고생하며 투쟁하는 아버지를, 그러나 어머니와 형제들을 불행하게 하는 아버지라고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아버지의 대한 뜨거운 존경을 심어준 것은 물론 이희호였다. 

 정월 초하루나 DJ의 생일이면,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김 없이 교도소로 면회를 갔다.

 “아버님. 절 받으십시오.” 

 아들과 며느리들은 면회실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린다. 

 DJ의 가슴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다. 목이 콱 메어서 눈물을 참기도 힘든 통증 같은 응어리가 가슴 가득히 퍼진다.

 자식들 앞에서 울 수도 없던 DJ는 참고 참다가,  독방에 돌아와서야  통곡한다.

 약하지 않게, 의연하게, 그리고 어른을 존경하는 예절 바른 아들들로 이희호는 키워 낸 것이다.

 DJ가 통곡하는 슬픔 속에는 그런 아내에 대한 감사도 틀림 없이 섞여 있었다. 자식들 교육과 인격형성과 장래에 대해선 DJ가 전혀 걱정을 안하도록 이희호의 눈물 겨운 노력이 거기 있었다. 

               

▲ DJ와 결혼한 이희호에겐, 아니 결혼 이전부터도, 웃을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탄압받는 야당 투사의 집에 웃음이 꽃피울리 없었고...대통령이 된 후에야...     © 운영자

 

 

              스포크박사의 ‘육아법’

 딸을 아무렇게나 키우던 시대에서 멀리 떠나 왔는데도 아직 전근대적으로 아들. 아들. 하는 가정이 남아 있음은 우리 시대의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아들이 해달라고 하면 교육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그것이 아들의 장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전혀 따져 보지 않은채 무조건 해주는 엄마들은 없는가? 

 민주주의식 교육을 방임으로 오해하는 엄마들은 사실은 그 민주주의식 방임이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을 스포일(파괴)하고 있다는 스포크 박사의 충고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98년 3월에 세상을 떠난 스포크 박사의 저서 ‘육아법’은 아직도 육아 문제에 관한 한 실효성이 끝나지 않은 권위 있는 고전이다. 

 그는 자식을 벌하지 않는 육아법에 대해서 강력하게 충고한다. 

 “지나친 관대함으로 해서 빚어지는 피해는 적당한 체벌을 가하는 데서 오는 피해의 몇 배 이상이다. 말을 안 듣거든 망설임 없이 때와 장소에 상관 없이 회차리를 들라.”

 미국 육아법의 대가 스포크의 충고가 이 정도다.

 

 

               아버지의 초상화    

 이희호는 아버지 역할까지 맡아야 했기에, 아들들을, 아버지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인격체로 키워야 했기에 아들들에게 엄하게 했고,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존경하도록 가르쳤다.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하나의 이상이고 우상일 수 있다.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슴에 지니지 않고 자라나는 아들은 거의 없다. 때로 아들은  한창 성장할 성인모방 단계에서 장차 아버지처럼 되겠다고 희망한다.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초상은 아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그러므로 아들의 가슴에 심어질 아버지의 초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가 최대의 노력과 협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들 뿐 아니라 딸에게 있어서도 아버지는 최초의 남자이며 가슴에 심어지는 이상적 남자가 된다. 어머니의 손으로 아버지의 초상을 험집 내는 일은 극도로 삼가야 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했을지 모를 고통 속에서도 이희호가 단 한 번도 남편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나 태도를 자식들 앞에 안 보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식들 앞에서 공공연히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는 없는가?. 

 아들을 강하게 키워라.  

 사나이로, 대장부로 키워라.

 위기에 강한 아들, 큰 일을 할 아들을 원하거든 ‘마마 보이’나 바퀴벌레 한 마리도 못잡는 ‘배내병신’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아들과 딸을 구별 말고 키워라. 그것이 진짜 아들 교육이다. 

 딸에게도 엄격한 가정교육을 실시하라. 사려 깊게 엄격한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란 딸들은 자기 방어에 능하고 실수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 가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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