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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3 ]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날 때 더 아름다운 빛을 발휘한다. 그 사랑과 빛을 이희호에게서 발견하는 행복

여원뉴스 희망 연재 | 기사입력 2019/10/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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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없었다면 DJ가 대통령 되었을까? [ 13 ]

 

행동으로 보여 준, 남편에의 사랑을..

 

▲    우리가  이희호에게서 발견하는 놀라움 가운데는 , 무서우리만큼 강인한 행동력이 있다. 그 행동력이, DJ 를 대통령이 되게 한  에너지가 아니었던가 ?            © 운영자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해야 한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낸 사람의 행복을 아

는가불행이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의 상황을 말한다그리고 인간은 하기 싫은

 

 

일도 때로는 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직면한다.

 

 

 

 

사모님 사모님

 

웃읍게 보지 말라. 닥치면 어떤 일도 해낸다. 능력을 발휘만 하면 무서운 존재다. 그것이 한국의 아내이다.”

직장인인 남편들을 위한 강의의 마지막을 필자는 대개 그 아내를 사랑하고 신뢰하라는 얘기로 끝낸다. 많은 직장인들이 아내의 능력, 특히 사회적 능력을 인정치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실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리는 나날이 우울하고 어두워져 가고 있다. IMF 이후 2019년 가을 현재 상황이, 경제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특히 실패자가 된 남편들의 가정에 깃든 회색빛 우수는 언제 걷힐지 모를 형편이다.

실패자로 전락했다고 스스로 믿는 남편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남편이 실패하면 아내는 뭐냐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남편이 실패한 경영자이건 실패한 직장인이건 상관 없이, 아내가 그 실패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고민이라는 얘기다.

남편은 과거로부터 떠났다.

사장이었건 상무였건 남편은 이제 현실적으로 다만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출발하려 하는데 아내는 아직도 사모님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고급 장교의 부인 가운데 제대 못하는 사모님들이 과거에 많았다.

이제 제대해서 무슨 일이라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구멍가게라도 해야 하고, 막노동이라도 해야 했던 1950년대나 1960년대에, 그러나 그 아내가 남편의 제대와 상관 없이 제대하지 않은 사모님으로 남아 있는 통에 생활의 어려움보다 그 갈등 구조가 더 어려운 케이스도 있었다.

몸살 나게 경제가 어려워져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하는 IMF 당시 몸이 빠른 아내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있다. 남편의 실패를 미리 예감하고 옛날 직장을 찾아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아내도 있다.

장사를 시작한 아내들도 있고 살림규모를 줄이는 등 재빠르게 현실과 적응하는 일면을 보이는 아내들도 있다.

남편을 위해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과히 행복된 일은 아니다.

이희호 역시 남편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행동력을 보여 주었을 때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그 격렬한 행동의 현장에는 행불행을 따질 어떤 여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멋장이 부부

 

결혼한 여성의 사회활동은 일단 살림살이와 멀어진다는 점에서 찬반 양론을 항상 데리고 다닌다. 이 나라 역사가 시작되면서, 거의, 지금까지 그랬다. 이제 조금씩 낳아지고 있는 형편이긴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기의 이상이나 야망을 성취하려고 할 때,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흘할 수밖에 없다는 원죄의식에 시달려야 한다.

'일하는 여성의 미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세일즈 우먼의 대명사인 메리 케이 애시나패션 아메리카의 꿈을 실현하려 했던 리즈 클레이번이나화장품 업계의 신화적 인물이 된 에스테 로데 등은 물론이고 여권운동가이며 저 유명한 여성지 미즈(MS)'의 발행인이던 글로리아 스태이넘 같은 결혼 안 한 여자들 조차 가정이나 남편이나 아이들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 미국의 대표적인 커리어우먼이고, 성공한 여류사업가 메리 케이 애시...그녀도 가정과 일의 중간에서 고민해야 했는데....     © 운영자

 

 

세계적으로 자기 직업에서 성공한 여성들까지도 때로는 가정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하는 판이니, 우리나라 같은 경우의 아직 성공하지 않은 여성의 사회활동은 그야 말로 시비가 그치지 않을 정도이다.

다행히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8년의 남녀평등법안의 통과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거기에 경제적인 발전과 적지 않은 고용 창출 덕분에 여성의 일자리가 늘어났던 것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에다가 매스컴이 나서서 맞벌이를 하는 부부를 아주 부럽고 이상적인 부부 형태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갈등 구조가 있긴 했지만, 텔레비전 연속극 등이 맞벌이 부부를 멋쟁이 부부로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그것조차 전설처럼 되어갈 위기에 놓였다. 과거 역사에서도 그랬지만, 이제 여성들에게 적성에 맞고 입에까지 맞는 일자리란 거의 없다시피 했던 어두운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을 벗어나고 있지만...

시대가 변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고 있으니까.

몸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활동의 시대가 여성들에게 왔다.

 

 

인간의 철학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도

영혼 속에 깃든 마음또는 잠재의식은 육체의 창

조자이며 건축가이다그것은 육체의 생생한 활동

을 지배한다마음의 폭이 크면 클수록 육체가 움

직이는 스케일도 커지기 마련이다.

 

파김치

 

DJ가 투옥되던 80년 5월 이후 이희호가 보여준 여러 가지 활동 가운데에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부분이 여러 가지로 눈에 뜨인다.

 

아니 그 이전 73도꾜에서의 납치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이미 이희호는 상식을 뒤엎은 행동양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이희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빠짐 없이 해냈다. 그 가운데는 물론 반독재 투쟁도....     © 운영자

 

그녀가 상식을 뒤엎은 것으로 보여지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체력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매일 남편을 면회 다니고, 다른 수감자들의 재판이 있는 날이면 청주고 광주고 달려 내려가 꼭 재판에 참여했다.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독교 회관이나 한빛교회 등에서 열리는 석방 기도회에 다른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참가했고, 그녀가 리더로 되어 있는 항의 시위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다니다 보면 온 몸이 파김치처럼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누구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음은 물론, 바로 집으로 오지도 않았다.

먼 곳에 있는 시장이라도 싸고 좋은 찬거리가 있다면 다녀 오곤 했다.

DJ가 구속되고도 한참 후에야 면회가 허락되었을 당시의 일이다.

DJ를 면회하고 오는 날에도 집으로 직행하지 않고 영천시장 등에 들러 장을 보아 오곤 했다. 큰 며느리가 해산을 한 직후라, 매일 면회를 다니는 그 와중에서도 며느리를 챙기기 위한 장보기였으리라.

그 무렵 DJ가 수감되어 있는 서울 구치소 뒷산에 다른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올라가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격려한 적이 있었다. 당장에 인근 파출소에 끌려 갔다가 서대문 경찰서로 인계되었고 하루종일 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시달림을 받았는데도 늦게 조사가 끝난 뒤, 이희호는 태연히(?) 영천시장에 들러 찬거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가 하면 공식적인 일과가 끝난 다음에도 다른 구속자 가족들을 위로하러 다녔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방문객 접대 하느라고 쉴 사이가 없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고, 밤이면 늦게까지 기도로 새웠다.

쓰러져야 옳았을 일에 쓰러지지조차 않은 그녀의 체력은 그렇다고 해서 초인도 아니었다.

 

▲ 젊은 시절의 DJ 와 이희호여사. 이희호는 남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끼고 싶은 것이 없었다, 희생정신이고, 강인한 여성의 행동력이었다.     © 운영자

 

육체의 사용법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빈 틈 없이 미행하던 경찰이나 기관원에 의해 보고되었고, 감시자들이 체력이 달려 못 견뎌 할 정도였다.

그것은 몸을 아끼지 않는 행동력이었다.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어의 사용법과 함께 육체의 사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육체의 사용법이란 행동양식 내지는 행동반경을 말한다.

언어와 육체의 사용방법에 의해 인간은 평가받는다. 소위 언행에 의한 평가이다.

그런 평가기준으로 볼 때 이희호의 행동력은 그녀가 지닌 신념의 빈 틈 없는 실천이라고 보여진다.

남편을 위해서는 이희호는 아무 것도 아끼고 싶은 것이 없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들의 철학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불행한 왕자 햄릿은, 아우의 손에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 그 한 많은 독백을 들은 후 이렇게 외친다.

이희호의 인생에는, 그러니까 DJ와 함께 하는 이희호의 인생에는 우리들의 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터졌음을 우리가 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일들이 연속으로 그녀를 정신 못 차리게 휘몰아 갔다.

DJ의 불행이 이희호가 껴안은 원천적인 불행이었고, 그것은 동시에 우리 시대가 소유권을 주장할만한, 우리 시대만의 암울한 연대기(年代記)로 끝나야 하는 것이지만, 언론이 통제 받는 시대에서 우리는 DJ나 이희호가 겪은 고통조차 짐작도 못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런 사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이희호의 정신력이 상식을 뒤엎을 만큼의 행동력으로 변했다고 해도, 설명으로서는 적당치가 않다.

몸을 던져 DJ를 위하는 일을 실천하려 했고,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던질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는 아내의 드문 모습을 우리는 이 시대 이희호에게서 발견하는 기쁨에 사로잡힌다.

 

 

축가만 부르며 한 평생을 살 수도 있지만

 

보람 있는 일을 위해 열성을 다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존경하고 싶어진

.그러나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열성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가련하게 느껴진다.

  

 

 

 

보따리 장사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된다면 사는 재미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무지 때문에 누구의 인생이든 가장 유능한 추리작가가 쓴 소설보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재미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인생을, 어떤 고통이든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것으로 생각하라.

죽겠다, 못 해 먹겠다 하면서 끌려가는 인생은 육체적 행동 면에서도 비능률적이고 정신적으로도 이미 패배를 자인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허지만, 아 이것도 내가 겪어야 되는 일이로구나, 내 인생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한탄할만한 일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생각하면, 고생이라도 독약 안 먹드키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고생이라도 밥먹듯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희호가 고생 속에서 낙을 찾았다든가 하는 논리적 비약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의 아내들은 이희호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이든 해치울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50이 넘어 최근에 자기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C여사는 사업하던 남편이 80년대 중반에 부도를 내는 바람에 한 3년 사이에 체중이 20kg 이나 줄을 정도로 비참해 보였다.

그런데 그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력은 사나이다왔다. 여자가 사나이다왔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주저하는 남편을 설득해서 회사 재산은 물론, 자기나 남편의 명의 또는 자녀들이나 친인척 명의로 장만했던 모든 부동산과 심지어 자신의 결혼반지까지 몽땅 끄내다가 채권자들 앞에 던졌다. 집 한채도 남지 않았다.

아이들 둘과 남편, 네식구가 17평짜리 오피스텔에서 딩굴면서 그녀는 발 벗고 나서서 미국과 일본 유럽, 또 일류 브랜드 가짜 많은 홍콩을 드나들며 보따리 장사를 했다.

그녀가 악착같이 해 온 보따리 장수 3년에 전세 아파트로 이사하고 작은 오퍼상을 차려서 보따리 장사를 기업화했다.

 

울어라 박사학위

 

고급 여성 악세서리만 2류시장이나 3류시장에서 수입해다가 팔았음으로 수익성은 높았다.

부도난지 7년이 되는 90년대 초반에 사업을 남편이 맡았다. 남편은 C여사가 시작한 사업을 떠맡더니 여봐란드키 크게 번창시켜 집도 마련하고 큰 아이를 결혼도 시켰다.

그녀는 모교에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 석사는 이미 80년대 초에 받았던 그녀는 IMF 가 터지기 전 학기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기념 파티라 해서 초청을 받고 갔는데 축배를 들다가 C여사의 통곡이 터졌다. 말 없이 울기만 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부도 난 사람의 집에선 누구의 집이건 상관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그 아내의 통곡이 터지는 법이다.

축가만 부르며 살고 싶고 싶은 것이 여자이지만 눈물 젖은 축가도 있는 것이니까.

남편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뛴 10년의 세월이 한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고, 자기의 뒷바라지로 재기 해 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 남편은 요즘 부인을 엎고 다니지 못해 안달이다.

N 여사는 남편이 국책은행의 중역이었다. 정리해고가 시작되기 전에 일찌감치 옷을 벗은 남편은 못하는 일을 N 여사는 시작했다.

오랫동안 미국서 살다 돌아 온 친구의 권유로 유통시장에 뛰어 들었다. 불법 피라미드 회사가 아니고 미국에 본사가 있는 정통 유통업체였다.

1년은 그저 취미 삼아 반찬 값이나 뜯어 쓰는 정도로 하라는 충고를 그녀는 잘 따랐다. 그런데 상상 외로 잘 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도 체면 문화에 빠져 있는데 그녀는 자기가 아는 사람 모두를 적극적으로 만나고, 물건 사기를 권유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나온 부부라 교우관계도 넓었다. 그 넓은 교우관계 전체를 사업의 영역으로 삼아 남들이 잘 안되는 시기인데도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힘들게 밖에서 애쓰는 남편, 또는 지금 실패자가 되어 있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를 위해서 몸을 던져야 할 일은 없는가? 그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존하지 말라.

더구나 몸과 마음이 편하게 해주기만을 바라지 말라. 밖에서 시달리고 고통받는 남편이 하는 일의 어느 부분을 떠맡을 역할 분담을 연구하라.

그것이 바로 여성의 사회참여일 수 있다. 남편이 잘 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은 아내가 남편에게 이유도 조건도 없이 행동으로 잘 해 주어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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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재원(여원뉴스 수석칼럼니스트)의 저서 '이희호의 메이 아이 헬프 유?' 를 바탕으로, 저자 김재원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매주 월요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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