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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맨 조국 스토리를 소설로,,'그 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

마침내 조국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나왔다. 조국 스토리는 소설 이상일까? 소설 이하일까?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20/02/2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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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  사건 맨 조국 스토리가 소설로,,

작가는 28년 경력의 팩트맨...베테랑 기자 홍찬선이 썼다

 

[yeowonnews.com=김석주기자] 사실 조국 스토리는 소설보다 더 소설이다. 여기서 '소설보다 더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조국 사건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조국의 여러가지 언행이 소설보다 흥미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찬선의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는 뜨거웠던 2019년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담금질해서 우리들 앞에 제시한다.

 

▲     © 운영자

 

28년 팩트맨, 28년 경력의 베테랑기자가 쓴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도 보여진다. 201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테마는 바로‘조국정국’이고, '조국정국'을 테마로 한 소설을 쓴 작가는,  "조국정국을 소설 형태로 재조명해 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점검해본다"고 작가의 변을 책 앞머리에 얹었다. 작가의 말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 본다. 

 

작가가 말한다..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를 내며

 

소설 쓰기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정해져 있는 건 없는 모양이다. 황금돼지해(己亥年, 기해년) 여름과 가을을 들끓게 만든 조국의 조국이야기가 그 거리를 좁혔다. 

 

시와 칼럼과 술안주로도 풀 수 없었던 가슴앓이, 그대로 두면 암 덩어리 될 것 같아 문득 펜을 들었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던 지하철 안에서, 마치 그 님이 오셔서 내 손으로 그분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 책 뒷부분에 써내려갔다. 써놓고 나서도 ‘내가 이걸 어떻게 썼지’하는 의아감이 가시지 않았다. 

 

군대 간 큰 아들이 첫 휴가를 나왔다. 술 한 잔 나누며 얘기를 나누었다.

“아빠 소설 쓰기로 했다.”

“레알?”

“그래 열심히 써서 노벨문학상 받아보려고…”

“가능할까?”

“도전해보면 결과가 나오겠지. 상금 받으면 너 다 줄게.”

“콜! 아빠 파이팅 팅 팅!!!”

 

▲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시절의 홍찬선...[사진=머니투데이 자료사진]  © 운영자

 

 추천사

 일선에서 수십 년 팩트전달 경력의 언론인이 시인 되더니 어느덧 소설가

 

- 최문형(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산다는 건 살아내는 것이다. 함께 살아내는 것이다. 땅이 아무리 무겁고 질척대도  하늘을 향해 마음의 빛을 쏘아 올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어른도 아이도 부모도 자녀도 모두 자기 몫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우리 어깨에는 희망이라는 고리에 대롱대롱 걸린 오색 빛깔 삶, 生이 있다. 

 

이 소설은 샘(泉)이다. 작가가 짧은 기간 내에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쏟아낸 샘이고, 우리가 이 이야기에 쫑긋하면 다름 아닌 자기 얼굴을 보게 되는 샘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시리디 시리게 맑은 샘이다. 정겨웠던 한국 농촌에서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눈동자로 퍼 올린 샘이다.

 

 바로 이 샘 속에 누군가가 있다. 그건 바로 나이고 당신이고 우리이다. 급하게 달려야 했던 숨 가쁜 인생, 모퉁이 돌 때마다 맑은 샘물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한 모금 축이고 가라고. 그 샘 속에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팩트 전달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선에서 수십 년 기사쓰기에 전념했던 언론인이 시인이 되고 시조시인이 되더니 어느덧 소설가가 되었다. 자신의 꿈과 희망과 염원의 단초들을 삶의 현장에 끌어들여 풀어 놓았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땅 속에서 보물 찾는 법을 알려준다. 그 보물을 창공을 향해 힘차게 던져 올리면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추천사를 쓴 최문형도 작가, 칼럼니스트, ‘식물처럼 살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  홍찬선은 시인이기도 하다. 2016년 첫 시집 '틈'을 냈을 당시의 사진...   © 운영자

 

북리뷰/ 차별화된 풍자적 기법을 동원하여 냉혹한 사회현실 고발

정유지(문학평론가, 경남정보대 교수)

  

“부조리가 사회에 만연되어 정의가 죽었다고 외칠 때,

작가들의 시대정신만은 죽지 않는다.” 

우월한 권력으로 부(富)와 명예를 축적하는 시대적 모순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정의가 죽었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어딘가에서 횃불처럼 번지는 영혼의 목소리가 감지된다.

 

그 영혼의 목소리는 작가들의 시대정신에서 비롯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대적 상황에 안주하며 순응하려는 삶의 자세가 주입되어 있지만, 이처럼 ‘정의가 죽었다’고 외치는 위기의 상황까지 도달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중심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렇게 탈바꿈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이가 작가들인 셈이다.  

 

홍찬선 풍자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조국사태에서 발화된 그의 문체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화공(畵工)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해박한 감각의 물감을 풀어놓듯 한 번 붓을 화선지에 대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혼돈의 질서가 한꺼번에 잡혀 뛰어난 골격이 생성되고, 이어서 푸르른 오월의 숲에 녹음으로 물든 꽃향기가 삽시간에 만개한다.

 

 더 나아가 풍자적 감성의 꽃향기를 실어 나르는 샛바람과 희망의 햇살이 만나 조국 게이트의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큰 이야기‘조국 정국’을 모티프(Motif)로 삼고 있는 그 자체가 산문정신과 작가정신의 발로로 평가할 수 있다. 걸출한 입담으로 대중들을 사로잡는 소설가의 등장에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다. 

 

더불어 홍찬선 소설은 온통 자전적 전원 교향곡으로 치장한 서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서정으로 물든 작품은 일상으로부터 미적 거리를 유지한 채 체념과 달관의 미학마저 구가하고 있다. 그런 미학적 감성이 좌우의 대결구도를 무너뜨리는 산문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홍찬선 작가는 잡초철학을 대변해주고 있다. 잡초는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한다. 나중에 현인(賢人)은 그 잡초가 소중한 약초이거나 귀중한 나물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밭에 심지 않는 망초, 씀바귀, 쇠비름, 광대나물 따위를 ‘잡초’로 여겨 모두 뽑아 버렸던 풀이 오늘날 꼭 필요한 약제나 각광 받는 나물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처음부터 알고나 있었을까? 결국 이 세상에는 잡초란 없다. 

 

그 잡초라고 여긴 풀이 세상을 구하는 데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잡초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장마다 거름 냄새와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 토양이 비옥하다는 의미이다. 

 

차별화된 풍자적 기법을 동원하여 냉혹한 사회현실로부터 괴리된 인간의 갈등양상까지 프리즘 안에 직조해내며 연속적 이미지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튼실한 산문의 집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끈질긴 자생력을 갖춘 ‘잡초’의 깊은 사유(思惟)로, 끝없이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홍찬선 저/ 그 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넥센미디어/값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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