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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여성을 사로잡아라, 천하를 얻을 것이다 [김재원칼럼 11]

지금 우리 국회에는 정치낙제생들이 눈에 뜨인다. 이 칼럼은 그 정치 낙제생들을 위한는, 'DJ정치학당'이다

김재원칼럼 | 기사입력 2020/06/1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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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제11법칙

여성을 사로잡아라, 천하를 얻을 것이다

정치낙제생과 정치우등생은 여성에 대한 태도가 결정

 

[yeowonnews.com=김재원칼럼] DJ가 제일 먼저 끌어들여 성공한 여자는 영부인 이희호. 이희호가 아니었던들 오늘의 DJ는 없었으리라는 극언을 DJ 스스로도 할 만큼 이희호는 그의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아내를 자신의 성공에 참여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아내는 남편이 벌어오는 소득만 엔조이하는 존재여서도 안되고 남편이 하는 일의 방관자여서도 안된다. 아내만이 아니라 여성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아 손해 본 사람은 없다. '민심은 천심' 에서 이제는 '여심은 천심' 으로 바뀌었으니까...만약 이희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통령 DJ는 없었을 듯

 

▲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DJ와 이희호여사...[사진=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여자는 여자 편인가?

 

여성을 위한 일을 해도 그것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팽배해 있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여성을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생각처럼 우매한 것은 없다.

사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세상의 반이 여자다.

 

유권자의 반이 여자라면 당연히 중요한 표밭인데, 굳이 여성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과거의 전통적(?) 생각은 우매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매해 보이는 이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선거의 현실이고, 그동안 표의 현실이었다. 이 표의 현실을 뒤접어 놓은 것이 DJ다. 

DJ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1977년 현재 우리나라 15대 국회의원 가운데 지역구에서 선거로 당선된 여성은 두 명뿐이었다.

 

여성 출마자가 적지도 않았는데 지역구에서 당선된 여성 국회의원이 겨우 두 명인 것은, 여성 유권자들이 여성 후보를 안 밀어 주었다는 얘기도 된다.

여성이 국회에 많이 진출해야 여성을 위한 입법 활동에도 유리하고, 기타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여성 전반의 모든 문제에서도 유리할 텐데 말이다.

 

여기서 "여자는 과연 여자 편인가?" 하는 원천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볼 만하다.

아니 거창하게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말고 범위를 좁혀서, "한국 여자는 한국 여자 편인가?"라고 대상을 축소해 놓고 보면 훨씬 원인 규명이 쉬워질 것이다.

 

이 문제는 여성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제한된 여건 속의 여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정치는 무슨…” 이라는 사고 방식에 젖은 남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남자의 영향권 속에 사는 이 나라 여성들의 의식 역시 "여자가 정치는 무슨.” 이라는 남성적이고 유교적인 사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이 나라 여성의 정치 의식이, 그 당시까지는 깨어나지 않은 증거라고 볼 수밖에.

 

 

남자들아, 너의 이름 밑에

 

▲   DJ의 위기 곁에는 언제나 부인 이희호가 있었다. 일본에서 배로 납치되어 ....죽음에서 살아돌아온 남편을 치료해  주고 있는 이희호....이희호가 없었다면....   © 운영자

 

그렇더라도 한국 여성들이 지닌 의식의 한 단면을 두고 여성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평생을 여성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이다. 이 나라 여성을 위해서 목숨 바친다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고, 그런 소리를 공공연하게 듣고 다녔다.

 

70년대 말에서 90년대를 통틀어 이 나라 여성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필자만큼 앞장선 남자는 없다, 정도가 아니라 유일하게 앞장선 남자였다.

이 나라 여성의 아픔과,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피고석에 선 것만큼 불리함을, 떠들고 다니는 여성의 대변자였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그런 입장에서 여성의 정치 의식 문제를 말하라면 역시 남자들에게 책임의 반 이상이 돌아간다.

 

경제적으로 항상 종속적인 위치에 서야 했던 이 나라의 여성들은, 인생의 나머지 모든 부분까지도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취향이나 도덕관이나 인생관 등도 전부 남자에게 자기도 모르게 흡수 · 동화되어 갔다.

 

그러니까 정치도 당연히 남자가 가는 대로 가게 되어 있었다. 이 나라 남자들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또 하나의 슬픈 유산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 스스로가 아니라고 부인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여성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또 부정하고 안하고에 상관 없이 사실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표의 현실이고 선거의 현실이다. 적어도 DJ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희호가 아니었더라면

 

97년 대선에서의 DJ는 여성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가? 아니 대선에서 뿐만 아니라 DJ의 생애 전반에 걸쳐 여성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DJ는 여성 편이었다.

 

여성 편이었고 여성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DJ는 성공했다. DJ가 제일 먼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완전히 성공한 것은 부인 이희호다. 이희호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의 DJ는 없다, 이희호가 아니었더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으리라는 극언을 DJ나 주변 사람들은 서슴지 않는다.

 

이희호가 DJ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한국 전쟁이 한창 무르익던 부산 피난 시절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62년 5월이니까 만난지 11년 만에 이루어진 결혼이었다.그동안 이희호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여성계 인사로서는 DJ보다 더 유명해져 있었다.

 

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시초로 정치계에 뛰어든 DJ는 59년 부인과 사별한 후 아이 둘을 데리고 전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DJ와의 결혼을 이희호 주변에선 모두 반대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떨어지고 강원도 인제에서 보궐 선거로 당선되었으나 5·16으로 국회의원 선서조차 못한 입장이었다. 

 

홀아비에 노모(老母)에 병든 누이동생에 아이가 둘이나 딸린, 낭인이나 다름없는 실패한 야당 정치인과의 결혼을, 여성 운동가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이희호에게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마이너스라고 주위에서 들고 일어났다.

 

 

 

올바른 선택

 

▲   DJ와 이희호의 동교덩 집 문패...대한민국 모든 주택의 문패는 남자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DJ는 아내 이희호와 나란이 문패를 걸었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DJ....여성이 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DJ는....   © 운영자



그런데도 이희호는 DJ와의 고된 수난의 인생을 스스로 택하여 결혼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DJ의 어디가 좋아서 그러느냐는 친지들의 만류를 이희호는 조용히 물리쳤다. 스위트 홈, 또는 가정의 행복, 소시민적인 삶의 단란함 같은 것을 이희호는 꿈꾸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DJ는 결혼한 지 9일 만에 신부를 배반한다. 아니 배반이 아니라 마치 미리 준비하기나 했던 것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결혼 9일 만에 구속된 것이다.

 

결혼 9일 된 신부를 홀로 남겨 둔 채 감방으로 들어갔던 DJ는 1개월 6일 만에 신부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 후의 결혼 생활 동안에도 DJ는 그때 그 신부를 툭 하면 홀로 남겨 둔 채 교도소를 드나들고 저승 문턱까지 왔다갔다하고, 망명길에 나서곤 했다.

 

이희호와 같이 있던 시간은 주로 연금당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었으니, DJ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희호의, 거물 정치인 아내로서의 괴로움은 극에 달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 모든 상처와 수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DJ가 대통령이 되고 난 지금, DJ와의 결혼을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이희호의 선택이, 이미 35년 전 그때 옳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선택만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나라꼴이 IMF 수중에 들어가자 국민들도 DJ를 대통령으로 뽑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심지어 반대자들조차도 인정하고 있다.

 

 

임자 만난 가족법

 

37년을 헤매 돌던 가족법 개정/이희호와 합작으로 DJ가 이룬 셈

이희호는 DJ의 인생 구석구석에 잠재해 있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든 불행을 함께 껴안고 결혼 35년 만에 그가 큰 뜻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

만약 이희호가 고통받는 DJ를 도저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그에게 "정치 그만두고 편하게 살 수 없을까요?” 소리를 한 번이나 했었다면 오늘의 DJ는 없다.

 

또는 DJ가 받는 곤욕이 아니라 자기에게 떨어지는, 형벌보다 더욱 잔인한 온갖 수난을 견디기가 어려워 팔자 한탄을 시작했다면, 고통에 대한 면역성이 사라져 이희호 자신이 먼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뒤이어 DJ가 무너져 내려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희호는, 때로 DJ보다 더 담담하고 더 의연하게 다가오는 모든 사태와 마주 섰다.

 

남편이 작은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부도만 나도 충격이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여성이 지금 이 나라에는 헤일 수도 없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희호는 불행이나 힘든 현실에 약해질 수도 있는 이 나라의 모든 여성들 가슴에, 주먹 쥐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 한 다발을 단단히 안겨 준 셈이다.

 

DJ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이희호였고, 어떤 면에서 DJ의 여성 취향 내지는 여성 정책도 이희호에게서 힘입은 바 크다. 89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되고 93년에 개정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가족법은, DJ가 국회 통과를 위해 앞장섰던 법률인데, 1952년부터 국회에 상정되었다가 폐기되기를 37년이나 거듭한 끝에 DJ라는 임자(?)를 만나 통과된다.

 

이 가족법은 DJ와 이희호를 젊어서부터 아끼고 후원하던 여류 변호사 이태영과 이희호 등 여성 운동가들이 52년에 처음 국회에 개정안을 낸 법률안이다. 결국 DJ가 이 법안 통과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이희호의 영향력과 직접 관계가 있다.

 

DJ는 여성 전문가로서의 이희호의 능력과 경륜을 인정하고 있으며, 밖에서는 물론이고 옥중에서도 여성 문제를 비롯한 모든 현안에 대해서 이희호에게 묻고 상의했다.

 

▲   우리나라의 여성지도자로서 이희호와 이태영은, 막강한 영향을 미친 큰 지도자였다.  이희호 김대중부부와, 이태영 정일형(전 외무부장관) 부부의 어느날....  © 운영자



독립된 인격체로서

 

이 나라 여성들의 법적 지위 향상에 그 부인과 함께 직접적인 공헌을 한 DJ의 여성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 등, 그의 여성관은 그의 《내가 사랑한 여성》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그 아름다움이 한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남성과 집안의 종속물로서 평가되는 것을 나는 꺼려한다.”

DJ는 여성을 남성의 종속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서 보려고 애썼다. 

 

그런 그의 의식은 이희호에게서 영향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가족법 개정안의 통과도 DJ의 그러한 여성관에 힘입은 것이다.

 

가족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필자도 가슴에 집히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89년 정기 국회에서도 동 법률안이 또 한 번 폐기될 위기에 있었다. 여당의, 주로 지방 출신 의원들의 반대 때문이었는데 본인이 발행인으로 있던 월간 《여원》이 그 반대한 국회의원들 사진을 명함만한 크기로 게재하여 일종의 압력 수단이 되도록 했었다.

 

그 시대의 잡지가 그따위 짓(?) 을 했으니 어떠했겠는가? 당연히 여기저기서 오라 가라 하는 소동을 겪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인지 어느 여성들 모임에 참석한 필자를 반기며, 이태영은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필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김재원 씨는 이 나라 여성들의 권익을 10년은 앞당기겠다는 각오로 애를 많이 쓰는 남자입니다. 여성 잡지도 아주 잘 만들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대중 문화의 붐을 일으킨 인물 세 사람을 저는 압니다. 대중 가요 붐을 일으킨 이미자 씨, 성인 만화 붐을 일으키 고우영 씨, 그리고 여성 잡지 붐을 일으킨 김재원 씨입니다.” 

물론 본인에 대한 과찬이고, 격려하기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그토록 이 나라 여성들을 위해 몸바쳐 왔고, 그처럼 DJ를 뜨겁게 지지하던 그였다.

 

 

여성에게 항상 감사하고 존중하라

뜻하지 않은 큰 축복이 내게 있다

 

한국의 많은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잡아 놓은 붕어' 취급을 한다. 아직 잡지 않은 붕어에게는 미끼도 새로 쓰고 밑밥도 주는 등 정성을 기울이면서 아내에 대해서 소홀한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이 '잡아 놓은 붕어론'을 들고 나온다.

잡아 놓은 붕어에게 새 미끼 먹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DJ에겐 이희호가 인생 최대의 후원자였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자기 아내 하나조차 착실한 후원자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아내를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아 그 아내의 가슴에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원죄다” 라는, 억울해 하는 의식이 싹틀 때 그 남자는 이미 아내에게서 후원자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나라에서 사업가의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 사업에 보증인으로 되어 있고, 사업 자금이 모자라면 친정이나 친구를 찾아가 돈을 꾸어 와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후원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아내의 이런 헌신적인 역할에 대해서 진심 어린 감사조차 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려 든다.

 

옥중에서 보내온 DJ의 서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아내 이희호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ㄱ,의 편지 서두는 항상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라고 되어 있다. 자기 아내에게 '존경' 이란 극한적인 용어를 쓰는 한국 남자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DJ는 애처가이기에 그럴 수 있었고, 감사의 마음을 있는 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서슴없이 아내에게 '존경' 을 표시 할 수 있었다.

자기 아내를 통하여 이 땅의 여성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기에 그는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모든 일이 풀리게 마련이다. 여성을 위하면 축복받는다는 진리를, 여성을 위한 한 가지 일에 적지 아니 앞장섰던 필자는 종교 이상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불행을 딛고 일어섬에 있어서 여성의 축복 없인 불가능했으니까. 여성을 확실히 잡아라. 천하가 내 손에 들어오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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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성공법 활용팁

 

• 아내를, 자기자신보다 더 사랑하라. 

• 여성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잘된다.

• 이제는 여심(女心)이 천심(天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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