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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로 데뷔한 팔순 노신사,[김재원CEO]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니어들이 늘어난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편집국 | 기사입력 2020/08/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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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모델'로 데뷔한 팔순 노신사,,[김재원CEO] 

 8개 월간지 발행하던 ‘여원’CEO 김재원

여성 행복이 나라의 행복이라는 페미니스트

팔순 시니어 모델로 3모작 인생 시작

 

[편집자 註] 여원뉴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이며, 詩人이고 우리나라 최고령 현역기자인 김재원 여원뉴스회장이, 지난 8월 8일, 우리나라 최고령 시니어 모델로 데뷔했습니다.이런 사실은 많은 매체에서 보도되고 했으나, 여원뉴스는 이 보도를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5일 인터뷰 전문 미디어인 '인터뷰 365'에 이 김재원회장 인터뷰기사가 게재되면서 네이버와 다음 Google 등에도 보도되는 등 세상에 널리 알려짐에, '인터뷰 365'에 게재된 '우리나라 최고령 시니어모델 김재원' 관련 기사를 옮겨 싣습니다.  [여원뉴스 편집국]

 

▲ 시니어 모델 김재원 씨가 프로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았다. 80대에 모델로 데뷔한 김재원 '여원뉴스' 회장. 젊은 시절 ‘여원’을 비롯한 8종의 잡지의 발행인으로 기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잡지 출판계에서 성공 신화를 남겼던 그는 팔순 시니어 모델로 3모작 인생을 시작했다.     © 운영자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인터넷 문화가 제대로 열리기 전인 20세기 말까지 도서 잡지 신문 등 출판 언론매체는 인쇄물을 통한 종이 활자미디어 시대였다. 그 무렵 여성월간지 중심에 ‘여원’이 있었다. ‘여원’사는 한창 번창할 때 ‘소설문학’ ‘신부’ 직장인‘ 등 7개의 자매지까지 쏟아낸 잡지왕국이었다.

 

총수가 김재원이라는 탁월한 재사(才士)였다. 여원사의 CEO이면서 동시대의 일간지 칼럼니스트, 인기 TV프로와 라디오 방송의 진행 및 고정 출연자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강남의 요지에 빌딩까지 세웠다가 무리한 투자로 하루아침에 마이너스 인생으로 추락한 실패담도 있지만 일찍이 ‘여원’ 잡지를 통해 전개한 ‘아내를 사랑하라’는 캠페인은 지금도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그의 일생일대의 구호가 되어 있다.

 

온라인 ‘여원뉴스’를 발행하면서 여전히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하며 최근에는 최고령 시니어 모델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8월 8일 남예종예술실업전문학교 시니어 모델 클라스 오디션에 선발되어 직업 모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여성의 삶에 불편함이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페미니스트협회를 창립, 상임대표로 강연활동을 하면서 선거 시즌이 되면 ‘이 당 저 당 가리지 말고 여성후보 밀어주자’는 캠페인으로 여성 정치인 지원활동에 앞장 서기도 한다.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말이 아내를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가두게 하는 족쇄로 단정, 영구추방을 선언하고 ‘아내 사랑’의 전도사로 살아온 김재원 회장을 만났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매일 밤 아내 발 씻어주고 발에 입맞추기

 

▲ (남예종실용예술전문학교 시니어모델 클라스 3기로서 지난 8월 8일 오디션을 거쳐 모델로 데뷔한 김재원 남예종실용예술전문학교 시니어모델 클라스 3기로 지난 8월 8일 오디션을 거쳐 80대에 모델로 데뷔한 김재원 여원뉴스 회장. 함께 수련한 시니어 모델 아홉 명 중 김 회장이 최고령자였다. /사진=김재원 제공     © 운영자

 

- 팔순을 넘어선 연세에 패션 모델로 나서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그 질문은 ‘왜 그 나이에도 밥을 먹느냐?’는 말로 들린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80대라고 해서 모델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굳이 동기를 내세운다면 아마도 호기심일 것이다.

 

- 호기심이라고 하지만 연로한 어른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직종이다.

누구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분야, 내 나이의 사람들이 가보지 않는 길을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의 체력과 끼를 테스트 해보고 싶은 충동이 따랐다. 모델을 하려면 우선 다리가 건강해야 한다. 모델의 상징은 캣츠워크라고 불리우는, 무대에서의 패션 워크다. 다리가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연기 율동에 가까운 끼가 없으면 건강해도 적응하기 어렵다.

 

-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는가?

내 스스로 느낀 감각은 나이를 의식 않고 젊었을 때와 비슷했다. 다만 오른 쪽 다리가 약간 오픈 되면서 오른쪽 발이 미세하게 팔자걸음이 된 것 말고는... 모델은 쪽 곧은 다리, 굽혀지지 않은 어깨의 반듯한 자세, 머리 위로 누가 끌어당기는 듯한 목선 유지 등이 필요하다. 약간 거북목이었는데 수련 기간 동안 많이 교정 됐다. 이번에 내 몸에, 모델 되기에 부적합한 점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 김재원은 지금도 발로 뛰는 기자다.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쓴다. 유재석을 내세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금년 초여름을 달군 작사가 이건우와 인터뷰를 끝낸 후 함께한 사진.김재원 여원뉴스 회장은 지금도 발로 뛰는 기자다.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쓴다. MC 유재석을 내세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금년 초여름을 달군 작사가 이건우와 인터뷰를 끝낸 후 함께 찍었다./사진=김재원 제공     © 운영자

 

- 앞으로 패션 모델이나 광고 모델로 꾸준히 활동할 생각인지?

기회가 주어지면 팔순 모델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싶다. 100세에도 신문에 칼럼을 쓰는 김형석 교수님이 우리 노령 층의 훌륭한 롤 모델이다. 모델 생활의 기본은 무대에 서는 것이다. 건강이 밑받침되는 한 모델로 무대에 등장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꿈이다.

 

- ‘노령기의 멋’이 관심을 모으는 때에 젊은이들의 활동무대인 모델직종에 시니어 모델의 등장도 시대적 변화로 볼 수 있다. 시범적인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인간사회의 시대적 환경과 생활의 변화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관을 바꾸게 하고 나이와 연계된 직업 활동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인생 2모작시대가 3모작시대로 한걸음 더 연장이 된 시대다. 아직도 내가 여원뉴스라는 온라인 매체를 만들어 글을 쓰는 최고령 기자에 최고령 모델 활동까지 넘보고 있는 것을 이 시대의 달라진 풍속도로 보면 된다.

 

- 젊은시절 ‘여원’ 발행인으로 잡지 출판계에서 성공신화를 남겼다. ‘여원’을 비롯해 8종의 잡지를 발행하면서 기발하고 혁신적인 기획기사들이 속출해 발행인의 아이디어가 잡지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다. 어느 때는 ‘여원’에 누워있는 모델이 표지인물로 등장해 독자들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젊은 시절 걸어 다니는 싱크탱크, 움직이는 아이디어 박스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시작해 편집국 주간부장, 계열사인 동양방송 방송위원으로 옮겼다가 월간 여성잡지 ‘여원’을 인수해 독립했다.

 

‘여원’은 내 창의력을 동원해 특색 있게 발전시켜 번창했다. 자신감이 생겨 새로운 장르의 잡지를 연이어 창간했다. 국내 처음으로 웨딩 정보지 ‘신부’, 육아잡지 ‘젊은 엄마’, 미용생활 가이드 잡지 ‘뷰티 라이프’, 마이카시대 생활정보지 ‘뛰뛰빵빵 차차차’, 각종 선물정보지인 ‘주고 싶은 마음’, 그밖에 ‘소설문학’과 ‘직장인’ 등 줄줄이 창간한 월간 잡지들이 날개를 달아 회사를 끌어 올렸다. 남들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내 몸이 불덩이가 된, 내 일생에서 가장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 ‘아내를 사랑하라’ 칠언절구로 한 시절 세상을 흔들었던 김재원은, 419졍신으로 혁명하듯 해야 된다며 한국페미니스트 협회를 창설하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아내를 사랑하라’ 칠언절구를 평생토록 외치며 여성 권리운동을 펼쳐온 김재원 ‘여원 뉴스’ 회장은 "4.19정신으로 혁명하듯 해야 된다"며 한국페미니스트 협회를 창설해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 운영자

 

-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여성상을 ‘현모양처’로 표현했다. 그런데 당시 ‘여원’이 '현모양처' 4글자를 영구폐기한다고 선언하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캠페인을 시작해 독자들의 화제거리가 됐다. 그 당시 뒷얘기를 듣고 싶다.

 

'현모양처'란 무엇인가? 남편이 무슨 짓을 하든 찍소리 말라는 것이 현모양처 아닌가? 현모양처는 결국 여성을 노예 신분으로 족쇄를 채우게 한 말이었다. '현모양처'라는 용어가 살아있는 이상 여성인권은 계속 지옥상태라는 전제아래 영구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한창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사회에서의 남성의 역할이 커지고 있을 때였다. 남편의 성공에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했던 시절이다. ‘여원’은 제호 위에 ‘사랑받는 아내, 성공하는 남편’이라는 컨셉을 분명히 박아 놓았다. 그래서 남편들이 사다주는 잡지가 됐다.

 

- ‘여원’을 통해 ‘아내를 사랑하라’는 주제를 캠페인 형식의 사회운동으로 이끌어내면서 겪은 일화들이 많았을 것이다. 강남의 여성독자들이 팬클럽을 만들었다는 소문, 그런 인기 영향력으로 정치권의 유혹도 많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길목인 서울 서초동의 여원사 빌딩벽에 ‘아내를 사랑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도 화제의 기폭제가 됐다. 양성평등운동의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그 한마디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이 사회운동으로 호응을 받았다. 여원을 포함한 자매 잡지를 통해 그 캠페인을 펼쳐나가면서 많은 여성들의 응원이 따르기도 했지만 실제 뒤에 대통령이 된 분으로부터 정치입문 요청을 받고 고사한 적도 있다.

 

당시 돈과 권력 등 힘깨나 있는 남자들은 거의 '아내 외의 여자'가 있었다.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지방으로 발령되어 가는 고급 관리들은 현지에서 거의 '변사도'가 되었다. ‘여원’은 변사도와 대결한 매체였다. 지금도 지자체 관청의 수장들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처신을 함부로 하다가 패가망신을 하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으니 나의 캠페인은 포기할 수가 없다.

 

나의 라이프 스토리에는 경영에 실패한 좌절담도 있지만 그 캠페인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 인생을 건 제1과제로 남아있고 실천 운동의 강령이 되고 있다.

 

 

- ‘여원’의 전성기에 시도한 각종 사업 중 특별히 희열감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면?

여성 월간지들의 연례 인기 부록이 가계부 별책부록이었다. 그것을 없애고 대신에 ‘Husband’s Apron’, 즉 남편용 앞치마를 별책부록으로 발행했다. 남편들은 밖에서 쓰고 싶은대로 돈을 쓰면서 아내에게는 100원 한 장 쓰는 것도 기록하라는 것이 가계부 였다.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대신 남편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일을 권장한 것이니 백종원 보다 30여년 앞서 남자의 부엌 출입을 당연하게 선언한 점은 지금 생각해도 혁명적인 시도였다.

 

- 방송활동으로도 한 때 분주한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초 컬러방송이 시작되면서 KBS-TV ‘8시에 만납시다’ MC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여원’을 통해 펼친 여성의 권리 신장운동에 방송도 관심을 가진 결과였다. 주로 남녀불평등 문제, 여성의 권익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어서 나의 여성관이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이어서 민창기 아나운서의 ‘9시에 만납시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11시에 만납시다’로 발전된 유명 토크프로였다. 그 무렵 나는 ‘아내를 이렇게 사랑하라’, ‘남편을 이렇게 성공시켜라’ 등의 단행본을 시리즈로 출판해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여원’과 더불어 시작한 ‘아내를 사랑하라’는 주제를 두고 방송과 출판을 통해 정치, 사회, 경제 분야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적용하고 알아야할 정보와 가치관, 지식을 일관성 있게 펼치는 여성운동가로서의 역할에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

 

▲ 월간 여성지 여원은 1994년 1월호에서 매년 신년호 부록이었던 가계부 대신 남자의 주방생활을 권장하는 남편용 에이프런으로 교체, 고정관념을 깬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큰 화제를 모았다. 또 세계 최초로 표지 모델을 눕혀서 촬영한 첫 여성지였다.     © 운영자

 

- 실패담도 듣고 싶다.

90년대 초 빌딩 신축, 8개 잡지를 간행하느라 과다한 지출 등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부도가 났다. 사업의 실패는 대체로 과욕에서 맞이하는 현상이다. 재산관리는 분수를 지키지 않고 탐욕으로 기울어지면 무너지는 것이 순리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실패를 뼈아프게 경험한 사례다.

 

‘아내를 사랑하라’ 칠언절구를 평생토록 외치며 여성 권리운동을 펼쳐온 김재원 ‘여원 뉴스’ 발행인은, 419정신으로 혁명하듯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국페미니스트 협회를 창설해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 이제 자신의 아내사랑은 어떤지가 궁금하다.

솔직히 정작 나 자신은 아내에게 잘 못하고 있다. 한 때는 잘 나갔지만....결과적으로 사업가로서의 실패가 나의 출판업을 가까이서 도와주던 아내에게까지 고통을 안겨 한동안 너무 많이 고생시켰다.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지만, 나머지 인생을 아내에게 사죄하는 기간으로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도전 한국인본부 / 대한민국최고 기록인증원’이 시행하는 행사에서 아내사랑 실천 여성인권운동가로 인증 받았다. 인증 내용은 매일밤 아내에게 발을 씻겨주고 발에 입을 맞추는 세족(洗足)을 5년 넘게 실천한데 있었다.

 

▲ (도전한국인 운동본부로부터, 아내사랑 달인으로 5년 넘게 아내의 세족, 아내 발에 입 맞추는 기록으로 인증서를 받고 수줍어하는 김재원)도전한국인 운동본부로부터 아내사랑 달인으로 5년 넘게 아내의 세족, 아내 발에 입 맞춘 기록으로 인증서를 받고 수줍어하는 김재원 회장(사진 중앙)./사진=김재원 제공     © 운영자

 

- 놀라운 얘기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한 5년 전 쯤 어느 날 문득, 죽기 전에 아내에게 사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는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그래서 그날 저녁부터 더운 물에 발을 담그게 했다. 그리고 30여분 후에 세족을 끝낸 아내의 발에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주고 나도 모르게 그 발에 입 맞추며 매일 사과한다. ’용서하라. 미안하다.‘고.

 

- 감동이다. 이제 시인으로서의 활동도 소개해 달라. 캠퍼스 커플로 만난 부인 이정숙 씨와 시인부부로 알려져 있다.

대학시절부터 연애만 하며 살아온 것으로 소문난 것 같다. 나는 1959년에 등단해서 55년만인 2014년에 첫시집을 냈고 아내는 2년전에 ‘나팔꽃 속에 숨어 있는 죽음을 노래함’이라는 시집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내에게 바친 시한 편을 소개한다.

 

‘고해세족’(告解洗足)을 주제로 한 내용인데 ‘그대 앞에 무릎을 꿇고’라는 제목으로 2019년 월간 ‘시’에 발표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대 앞에 무릎 꿇는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대 발을 씻어 주는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대 씻은 발에 입 맞추는 일이다.

 

나쁜 대한민국 남편들을

 

나쁘다고 흉보면서,

 

좋은 남편 되라고 타이르면서,

 

스스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나쁜 남편인 내가

 

이제 그대 앞에 무릎 꿇는다 해서,

 

이제 그대 발을 씻어주고,

 

그 발에 입 맞춘다 해서,

 

좋은 남편 될리도 없지만,

 

그래도 남은 날 동안은 계속하려 한다.

 

눈 감는 날까지는.

 

그래서 몇 생(生)이 지난 뒤

 

어느 후생의 한 자락에서 우리가 만났을 때,

 

당신이 내게

 

"아 내 발에 입 맞춘 남자로군요.“

 

하고 웃어준다면.... ”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서는 그의 뒷태가 쓸쓸해 보일 줄 알았는데, 쓸쓸할 여유도 없이 그는 모델 특유의 캣츠워크로 사뿐사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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