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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뉴스 희망 연재

고구려 백제를 건국한 최초의 女帝 소서노.. 한국여성詩史<9>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사람이 여성임을, 매일매일 이 나라 어린이들에게 알게 하자. 여성의 큰 능력을...

홍찬선 | 기사입력 2020/09/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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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9> 소서노

고구려 백제 두 나라를 건국한 최초의 女帝 

칠백 년 사직의 기틀을 튼튼히 다진 그 사람

 

대한민국의 21세기 앞날을 묻거든

조선상고사를 펴고 소서노를 보게 하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재력과 담력을 지혜로 버무려 

나라를 두 번이나 세워 경영한

소서노의 창업정신과 솔선수범을 

 

본받게 하라

 

한 번은 운이 좋았다

돈 많은 아버지를 만난 덕분으로 

뜻 높은 추모(鄒牟)와 함께 고구려를 세웠다

 

두 아들 남기고 남편이 죽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지만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  인기 충천했던 TV 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로 출연했던 한혜진. (인터넷 캡쳐)   © 운영자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갖고 있는 장점을 합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꿰뚫어 보았다

믿었다

의심하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현실을 만나서도 분노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나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

두 아들과 새 터전을 찾아 나섰다**

 

두 번째는 스스로 운을 만들었다

운명(運命)은 하늘에서 받은 명(命)을

내가 운전해서(運) 나의 삶을 만드는 것

두 아들에게 기대거나 맡기지 않고

앞장서서 백제를 건국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임자 없는 땅도, 공짜도 없었다

낙랑이 차지하고 있는 곳을 지날 때는 통행세를 내고

마한 땅에서 나라를 일구려니 세입금을 받쳐야 했다

좋은 사냥물과 맛난 곡식을 뇌물도 보내야 했다

 

추모왕과 나눈 재력이 도움이 됐다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의 담력을 빌렸다

오간 마려 등 열여덟 신하의 지혜도 뭉쳤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고

공정과 정의로 백성들의 협력을 끌어냈다

 

▲   소서노는 여러 권의 동명 제목으로 소설화 되기도 했던 걸출한 여제로서....  © 운영자

 

연타발(延陁潑)의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나

우태(優台)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뒤

추모와 두 번째 결혼으로 고구려 건국하고

남쪽 한강으로 내려와 두 번째로 백제 세워

예순 하나에 두 번째 삶 살러 하늘로 돌아갔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꽉 차게

욕심 부리지도 버리지도 않은 중용으로

칠백 년 사직의 기틀을 튼튼히 다진 그 사람

 

대한민국 앞날이 궁금한 사람 있거든

김부식이 쏙 빼먹은 소서노를 알게 하라***

 

 

 

 

*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은 미완성으로 남은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 건국은 추모(鄒牟, 朱蒙)가 연타발의 딸인 소서노(召西奴)와 결혼해 그녀의 재산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합작”이라고 밝혔다. 또 “김부식이 『삼국사기』 <온조본기>에서 온조가 하북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했고,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라고 기술하고 있으나, 백제를 건국한 것은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이며 비류와 온조는 해부루왕의 서손인 우태(優台)”라고 고증했다. “소서노는 조선사상 유일한 여제왕의 창업자일뿐더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 추모는 소서노를 만나 고구려를 건국하기 전, 부여에서 예씨(禮氏)와 결혼해 유리(儒留)를 낳았다. 부여 금와왕의 큰 아들인 대소(帶素)가 추모의 기량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과 협의해 졸본(卒本)으로 도망했다. 고구려를 세운 뒤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를 친아들처럼 대했다. 하지만 부인 예씨와 유리가 찾아오자 예씨를 원후(元后)로,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공동 창업자 소서노는 소후(小后)가 되었다. 비류와 온조는 소서노에게 다른 데 가서 나라를 세우자고 건의했고, 소서노는 추모왕에게 청하여 다량의 금은주보(金銀珠寶)를 나눠받았다. 소서노는 두 아들과 오간(烏干) 마려(馬黎) 등 십팔(十八)인을 데리고 낙랑국을 지나 마한으로 들어가 백제를 세웠다.(조선상고사) 

 

*** 소서노(召西奴): 졸본부여에 살던 부호(富豪) 연타발(延陁潑)의 세 딸 가운데 둘째딸. 처음에 해부루(解夫婁)왕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결혼해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낳았다. 우태가 죽은 뒤 과부로 살다가, 37세에 추모(鄒牟, 주몽, 22세)와 결혼했다. 소서노는 추모왕과 헤어진 뒤 하북위례성에 백제를 세우고 13년 동안 왕으로 직접 통치하다 61세로 훙(薨, 왕과 왕후 또는 왕세자들의 죽음)했다. 

 

소서노가 훙한 뒤 비류와 온조가 의견이 엇갈려 비류는 미추홀(彌鄒忽, 인천)로 가서 비류백제를 세우고, 온조는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해 위례백제로 독립했다. 미추홀은 땅이 습하고 물에 염분이 많아 백성이 살 수 없어 많은 수가 흩어지자 비류는 울분을 참지 못해 병사했다. 그 신민들이 위례백제로 와서 다시 합쳐졌다.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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