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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손가락 3개 자르며 온몸으로 항일..남자현..한국여성詩史<10>

남자 100명이 못 할 일을 해 낸 여성들이 이 나라 역사에 뚜렷하다. 지금도 위대하고 유능한 여성들이...

홍찬선 | 기사입력 2020/09/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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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0> 남자현

손가락 3개 스스로 자르며 온몸으로 항일독립투쟁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정신에 달렸다"

 

▲   남성 못지 않은 기개와, 끓는 영혼으로 일제에 항거했던 남자현은....   © 운영자

 

그대는 조국의 하늘과 땅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셨길래 마흔여섯 살 적지 않은 

나이에 고향 영양을 떠나 허허벌판 만주로

싸우러가 아니라, 이기러 가셨습니까

 

을미의병 일으켜 왜놈에게 전사당한 남편과 

왜놈들 등살을 이기지 못하고 귀천한 아버지의

원수 갚지 않고 저 세상에서 뵐 수 없다는 각오,  

지금까지의 남자현은 잊으라 했읍니다

 

경술국치 10년 되는 날 엄지손가락 잘라 

우리끼리 다투지 말고 왜놈들과 싸우라 질타했습니다

2년 뒤엔 검지 손가락도 잘라 내 손가락 아끼지 말고

우리 동포와 이 나라의 내일을 아끼라 호통쳤습니다

 

▲    남자현을 임종하는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 © 운영자

 

무심한 세월이 또 10년 흐른 뒤엔

국제연맹조사단에 대한독립 호소하려

무명지 두 마디마저 주저 없이 잘랐습니다 

손가락 3개나 자른 정성에도 하늘은 무심했읍니다 

마지막 거사마저 성공하지 못하고 체포됐읍니다

   

내가 스스로 죽어 너희들을 이겨야겠다

대한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 죽음은 끝이 아니요 시작일 뿐이다

너희는 사는 것이 죽는 것이요

나는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그대는 왜놈들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고문하던 왜놈들이 놀라 보석으로 석방했읍니다

그대는 아들과 손자에게 조용히 

내가 잠들면 깨우지 말라고 한 뒤 유언 남겼습니다

 

▲     © 운영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정신에 있다

249원80전 중 200원은 대한이 독립되는 날

축하금으로 정부에 바치라, 나머지는 손자와 

영양에 있는 외손자를 찾아 교육시켜라**

 

그대는 독립군 어머니답게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부친과 남편의 원수 갚지 못하고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해방 보지 못한 채 

이국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귓전을 때립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 다 한 뒤 만주의 여호(女虎)가 되신 

그대는 참된 어머니,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   남자현의 초혼묘   © 운영자

 

 

* 남자현 의사가 옥중에서 단식을 선언하며 일제 간수들에게 한 말.   

** 남자현 의사의 손자, 김시련 옹이 전한 말. 이상국, 『남자현 평전』 (서울: 세창미디어, 2018), 163~166쪽.

 

*** 남자현(南慈賢, 1873~1933. 8. 22); 경북 안동군 일직면에서 태어나 19세 때 영양군 석보면의 김영주(金永周)와 결혼했다. 김영주가 을미의병에 참가해 전사한(1896) 뒤 태어난 아들 김동성을 데리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 효부상을 받았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46세의 나이에 아들과 함께 요녕성 통화현으로 망명했다. 

 

분열된 항일독립운동 세력을 한곳으로 모으고자 엄지와 검지를 잘라 혈서를 썼고, 만주사변을 조사하기 위해 온 국제연맹조사단(단장 리튼경)이 1932년 하얼빈을 방문했을 때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보냈다. 1926년에 재등실(齋藤實) 총독을 죽이기 위해 서울에 잠입했다가 송학선(宋學先, 1897~1927)의 사전거사로 경비가 강화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33년2월, 무등신의(武藤信義) 주만주국 일본대사를 하얼빈에서 제거하려다 체포됐다. 

 

옥중에서 11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여 보석으로 석방된 뒤 조선인이 운영하는 고려여관에서 8월22일 서거했다. 묘소는 하얼빈 외국인 공동묘지에 있었는데, 1958년에 20km 떨어진 황산묘지로 옮겨질 때 무연고 묘지라고 해서 사라졌다. 1967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할 때 초혼묘로 조성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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