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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나라 구하는 데 남녀구별?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한국여성詩史>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여성이 있다. 우리나라엔 어딜 가도 그런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0/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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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7> 윤희순

나라 구하는 데 남녀구별? 최초의 여성 의병장 

내 몸은 하나 된 나라 만드는 데 쓰인다는 뜻

 

▲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 세워진 윤희순 동상  © 운영자

 

덜렁대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파랑과 하양과 연두가 하나 되는 것

보여주려는 깊은 배려였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뜻이었다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왜놈들을 잡는 것이니 

의복 버선 손질하여 만져 주세*

나라를 잃었는데 남녀노소 가릴 것이냐

안사람 함께 나서 강탈당한 국권 되찾고자

목 놓아 부른 의병가 가을 하늘 적셨다

 

 

▲     © 운영자

 

시아버지와 남편의 항일투쟁 의병 뒷받침에

스스로 여성들 모아 의병장 되어 싸웠다

아들도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본받아 

항일투쟁하다 고문 받고 순국한 가족

 

우리나라 의병들은 애국으로 뭉쳤으니

고혼이 된들 무엇이 무서우랴

의리로 죽는 것은 대장부의 도리거늘

죽음으로 뭉쳤으니 죽음으로 충신되자**

 

충효 애국정신과 자손의 만대 보존이라는

소박하고 사람다운 소망도 이루기 힘든 시대***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고향과 

고향에 쌓았던 추억과 

일제의 비인간적 침략에 함께 싸웠던 고향 사람들

 

모두 버리고 만주로 떠났다

명성왕후 시해를 응징하려 일제와 싸웠고

고종 강제퇴위와 대한제국 군대해산을 바로잡으려   

길쌈 바느질 마다하고 

주먹밥 짓고 화약과 총알 만들었던 땅

그 아프고 정다웠던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  윤희순의 약력...    © 운영자

 

국권을 강탈당한 치욕

경술국치를 죽음으로 씻으려던 

시아버지를 남편과 함께 설득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서 싸워야 한다고

살아서 만주에 가서 싸우자고

 

땅 설고 물 설은 그곳에서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오로지 할 일은 무뢰한 침략자 일제와 싸우는 것

동창학교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해

연설 잘하는 윤 교장으로 항일투쟁에 나설

젊은 투사들을 키워냈다

 

만주로 망명한 지 3년 만에 시아버지가

그 뒤 이태 만에 남편마저 독립 못 본 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떠났지만   

두 아들을 독립운동단체에 가입시키고 

나라 되찾는 항일투쟁 이어갔다

 

 

큰 아들 돈상(敦相)이 일제 경찰 고문으로 

순국하자 며느리도 절규하며 세상을 떴다

아들 며느리 먼저 보낸 울분을 참지 못해

곡기를 끊고 해주윤씨일생록으로 지나온 삶

정리하며 스스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철이 나고부터 평생을 여성의병장으로서

항일독립투쟁에 바쳤던 삶을 훨훨 털었다

 

▲   윤흐순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의병가 가사......



그분의 넋은 아직도 만주 땅에 있지만

그분의 얼은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서

그분의 혼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나라 어려울 때는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오로지 

나라 위해 모든 것 바쳐야 한다는 노래로

나라 구하는 데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말씀으로

내 몸은 하나 된 나라 만드는 데 쓰인다는 뜻으로 

 

▲     © 운영자

 

 

* 윤희순, <안사람 의병가>에서 인용.

** 윤희순, <병정 노래>

*** 윤희순, <소망>, 강원도 춘천시 남면 관천리에 있는 묘소에 새겨져 있다. 

 

**** 윤희순(尹熙順, 1860. 6. 25~1935. 8.1): 서울에서 윤익상(尹翼商)과 평해 황씨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16세 때 고흥 유씨 유제원(柳濟遠)과 결혼해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서 살았다. 유제원은 춘천 의병장이던 외당 유홍석(畏堂 柳弘錫, 1841~1913)의 장남이며 의암 유인석의 조카이다. 

1895년 민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왜변이 일어나고 그해 말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외당 유홍석도 춘천에서 을미의병을 일으켰다. 윤희순은 그 때 마을 여성들에게 “비록 여자라 해도 나라를 구하는 데는 남녀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의병을 돕자고 호소했다. 일제가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직접 30여명으로 구성된 여자의병도 조직했다. 또 <안사람 의병가> <병정 노래>를 비롯한 8편의 의병가와 <경고한다 오랑캐들에게> 등 4편의 경고문을 지었다. 

1910년,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 뒤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만주로 망명했고, 윤희순도 이듬해 아들 돈상 민상 교상 등을 데리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5년 7월, 큰 아들 돈상이 제사지내러 집에 왔다 일제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숨진 뒤 11일 만에 곡기를 끊어 숨을 거뒀다. 유해는 요녕성 해성(海城)현 묘관둔(廟官屯) 북산에 안장됐다.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 1994년(甲子年) 6월에 옥석에 윤의사의 신위를 새겨, 춘천시 남면 관천(冠川)리 선영에 남편과 합장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에 윤희순 동상이 서 있다. 만주에서 항일투쟁할 때 남긴 <신세타령>이 그의 삶을 요약해주는 듯하다. 

 


<신세타령>

슬프고도 슬프도다 이내신세 슬프도다

이국만리 이내신세 슬프고도 슬프도다

보이는 눈 쇠경이요 들리는 귀 막혔구나

말하는 입 벙어리요 슬프고도 슬프도다

이내센세 슬프도다 보이나니 까마귀라

우리조선 어디가고 왜놈들이 득실하나

우리인군 어디가고 왜놈대장 활기치나

우리의병 어디가고 왜놈군대 득실하니

이내몸이 어이할고 어디간들 반겨줄까

어디간들 반겨줄까

 

▲ 의병장 윤희순 취재를 위하여, 윤희순 묘소를 방문한홍찬선 작가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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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화 20/10/12 [10:48] 수정 삭제  
  역사적 양식을 쌓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순국선열님들의 얼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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