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국여성詩史

1000억 넘는 재산, 백석 詩 한 줄 어치도 안된다 <한국여성詩史>

사랑은 수백억의 재산을 한 개의 돌로 볼 수도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헌납하는 사랑의 큰 힘을 ...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0/15 [10: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18>김영한

1000억 넘는 재산, 백석 詩 한 줄 어치도 안된다 

법정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고 길상화로 거듭 나

 

▲   생전의 길상화 보살이 법정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운영자



받으세요 

받을 수 없습니다 

꼭 받으셔야 합니다 

이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십년 동안의 줄다리가 끝났다

요정 대원각은 법정 스님의 길상사로 거듭났고

기생 자야였던 김영한은 길상화로 활짝 피었다

 

진흙탕 연못에서 핀 연 꽃이었다

대지 7000여평 건물 40여개, 1000억원 넘는 재산은

백석의 시 한줄 값어치만큼보다도 못했다

가족을 위해 이팔청춘에 스스로 기생이 된

진향(眞香)은 자야로 백석을 살렸다

 

삶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인연을 마련했다

운명은 일본 유학 갔던 진향을 함흥으로 데려갔고 

영생여고 선생이던 백석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거라 다짐했다

부모의 눈을 피해 서울로 온 둘은 청진동에 

아슬아슬한 신방을 차렸다

 

▲  백석과의 사랑을 주제로 한   김영한의  '내 사랑 백석' 표지 © 운영자

 

인생은 단막극이 아니었다

달콤한 날이 꿈결처럼 지나고 2막이 올랐다

기생을 며느리로 들일 수는 없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시대의 인식을 피할 수 없었다 

부모들끼리 정해 놓은 결혼식에 

백석은 억지로 끌려갔다 첫날밤에 자야에게 갔다

 

2막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시집온 처녀는 인습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자야는 신혼을 망쳐버린 가정 파탄자가 됐고

백석은 만주로 도망가서 함께 살자고 했다

자야는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백석은 고개 떨군 채 신경(新京)으로 떠났고

운명의 여신은 둘의 삶을 비극으로 끝내려 했다

이데올로기 귀신이 나라를 38선으로 갈랐고

둘의 사랑은 목을 늘이고 가슴을 태우게 했다

백석은 북쪽에서 자야를 그리워했고

자야는 남쪽에서 백석을 위해 돈을 벌었지만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었다

 

▲  길상사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김영한을 기념하는....   © 운영자

 

사랑이 이념보다 강했다

사랑이 권력보다 길었다

사랑이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은 금

사랑이 억지로 그은 금 뛰어 넘었다 

사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바람결 따라 마음 가는대로

꽃무릇 눈시울 붉히는 만큼

시와 사랑과 믿음으로 머물러

여인들이 옷 갈아입던 팔각정엔 

범종이 장엄하게 울렸다

백석은 백석문학상으로 살아났다 

 

속세 술 내음이 이세(離世) 묵향으로  

익어갈 때 그님이 갔다

그님이 떠나고 그님이 잠들었다

가진 것은 꽃 한 송이 발갛게 밝힌

담벼락 밑의 한 줌 재

 

지긋한 웃음이

넓은 품과 너그러운 가슴 내주고

첫가을 낙엽 예약하며

자야는 백석과 법정을 

하나로 이으며 한 물로 흘렀다

 

▲   젊은 시절의 김영한(왼 쪽) 과 노후의 김영한(오른 쪽)을 ..... © 운영자

 

* 백석(白石, 1912. 7.1~1996.1.7.): 평안북도 정주에서 백시박과 이봉우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해방 후에 그가 좋아했던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石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1938년에 발표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에서 나타샤는 자야 김영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영한(金英韓, 1916~1999. 11.15); 서울에서 태어나 16세 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뛰어난 미모에 시, 서, 화, 가무에 능했고 잡지에 수필도 게재해 엘리트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스승 신윤국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스승이 조선어학회 건으로 투옥되자 함흥으로 갔다. 

함흥 영생여고 교사이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둘은 서울에 와서 3년 정도 함께 살았지만, 백석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 1939년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김영한은 3대 요정 가운데 하나였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했고, <대원각> 모습 거의 그대로 <길상사>가 됐다. 법정이 김영한에게 준 법명 길상화(吉祥華)에서 절 이름을 지었다. 김영한은 1997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을 기탁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김영한의 호 자야(子夜)는 백석이 지어준 것이다. 김영한은 『내 사랑 백석』이란 책에서 “함흥에 있을 때 서점에서 <<당시선집(唐詩選集)>>을 사서 백석에게 선물하자, 말없이 책장을 한참 뒤적이다 당신 아호를 자야(子夜)라고 지어주겠다”고 밝혔다(김자야, 『내 사랑 백석』 (파주: 문학동네, 1995, 1996, 2019), 79~80쪽.) 이는 이태백이 지은 <子夜吳歌>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  저널리스트, 시인, 소설가, 거기에 극작가이기도 한 필자 홍찬선   © 운영자

 

 

홍찬선의 다른기사 보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wonnews.com
고다르크 20/10/15 [12:41] 수정 삭제  
  항상 많이 배웁니다 감사드립니다 :)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여성詩史,#백석,#김영한,#법정스님,#홍찬선,#여원뉴스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