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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평생 모은 땅을 내놓아 역사를 얻은 조희재 <한국여성詩史>

오늘을 사는 사람은 재산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고, 내일을 사는 사람은 재산을 과감히 던져 미래를....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2/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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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 <33>  

평생 모은 땅을 내놓아 역사를 얻은 조희재 

80만평 희사해 단국대 설립

 

▲    단국대학교 죽전 캠퍼스에 마련된 설립자 조희재 동상  © 운영자

 

땅을 내놓고 뜻을 얻었다

재산을 풀어 사람을 키웠다

 

인생은 짧고도 짧고 

역사는 길고도 유구한 것

돈은 시내처럼 돌고 돌아 

넓은 벌판 기름지게 만드는 것

 

내가 번 것이라고 

내가 안 먹고 안 입고 모은 것이라고

움켜쥐고 있으면 고인 물처럼 썩고 썩어

스스로는 물론 남까지 모두 해치는 것 

 

▲  조희재 단국대 설립자    © 운영자

 

함께 썩어 죽기보다 

함께 오래 사는 길을 골랐다 

남편이 평생 동안 하고자 했던 일

그토록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

하기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내가 이어받아 이루고 나서야 

저곳에 먼저 가 자리 잡고 있을

박기홍(朴基鴻) 장훈보통학교 전 이사장을 

떳떳하게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티끌만큼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땅 80만평을 내놓았다

1953년 당시 화폐 가치가

1억 환(圜)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이었다

교육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장형(張炯) 선생이 

뜻을 함께 하고 발 벗고 나섰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4년제 대학을 인가받아

1947년 11월3일 서울 낙원동 282번지 

서북학회 회관에서 단국대학교의 문을 열었다 

 

▲   단국대 죽전 캠퍼스의 분수   © 운영자

 

단군(檀君)으로 민족애를 생각하고

애국(愛國)으로 조국애를 상기하고자

단국(檀國)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국민개학과 홍익인간을 교육지표로

구국 자주 자립을 창학이념으로 

진리와 봉사를 교시로 세웠다

 

독립운동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이어받고 남북으로 나뉜

민족이 하나 되는 것을 대비했다

 

남편이 평생 꿈꾸었던 것을 이루어

어깨를 짓누르던 마음 빚을 갚고

몸이 후련해졌음이었을까

쉰여섯의 짧지도 길지도 않게 꽉 찬 삶을

훨훨 털고 새 세상으로 떠났다

단국대학교 설립 인가를 받은 지

고작 이틀이 흐른 뒤였다 

 

몸은 떠났어도 얼과 넋은 남았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내놓아

사람을 얻고 인재를 키운 설립자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영원히 사랑받고 있다

 

▲  김구주석 및 설립자 장형(앞줄)과 함께 한 조희재 딸 박정숙(뒷줄 맨 오른쪽)   © 운영자

 

* 조희재(趙喜在, 1892. 1. 12~1947. 11.3); 교육자이자 자산가로 독립운동가인 장형(張炯)과 함께 단국대학교를 설립했다. 호는 혜당(惠堂)이며 독립운동가 박기홍(朴基鴻)과의 사이에 무남독녀(박정숙, 朴正淑)을 두었다. 병환 중에도 단국대학교 설립 작업을 하다가 광주학생항일의거일에 맞춘 개교기념일에 서거했다. 

단국대학교는 처음에 종로구 낙원동 282번에서 개교한 뒤 1957년부터 2007년까지 용산구 한남동에 있었다. 2007년 8월에 경기도 용인시 죽전캠퍼스로 옮겼다. 이에 앞서 1978년에 충남 천안에 제2캠퍼스를 만들었다. 

 

▲  여원뉴스에  새로운 형식의 인물 오딧세이 <한국여성詩史>   를 집필하고 있는 시인이며 작가인 홍찬선...한국 문단과 매스컴이 인정한  2020년 최고의  작가 이다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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