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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열네 살에 남장(男裝)하고 금강산 유람한 김금원<한국여성詩史>

얼굴도 남겨지지 않은채, 세계적인 여행기만 남긴 김금원...그 시대의 유능한 여성들이 대개 흔적도 없이...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2/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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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34> 

열네 살에 남장(男裝)하고 금강산 유람한 김금원

저 유명한 여행시 <호동서락기> 남겨

 

▲   김금원의 일대기...시대를 앞선 여성의 담대한 여행기다..그림책도시   © 운영자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고

야만국이 아니라 문명국에서 태어난 것은

복 받은 일이었으되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난 것과

부귀한 집이 아닌 한미한 집 자식인 것은

뛰어넘기 힘든 불행이었다*

 

불행이라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포기하는 것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여자라 넘볼 수 없는 담장 밖의 세상을 보려고

부모를 졸라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여겼던 

굴레를 훨훨 벗어던졌다

 

한 해 더 지나 열다섯이 되면

비녀를 꽂고 담장의 노예가 되는 

운명을 떨쳐버리고 사뿐사뿐 길을 나섰다

열넷 어린 소녀는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 

매가 조롱을 나와 하늘 높이 날아오르듯

천리마가 재갈을 풀고 들판을 내달리듯

 

제천 의림지와 단양팔경을 거쳐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두루 지나

서울 평양 의주까지 1000km 

이천오백 리의 멀고 먼 길,

당시 남자라도 대부분 할 수 없던

국토순례여행을 사뿐히 다녀왔다 

 

▲   호동서락기의 표지  © 운영자



길은 스승이었고

들은 벗이었으며

뫼는 배움터였다 

세상과 끊어진 규방에서는 기를 수 없는

총명을 닦고 식견을 늘리고 가슴을 넓혀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에 차곡차곡 담았다

 

호는 의림지를 품고 있는 충청도 호서지방이요

동은 태백산맥 동쪽의 금강산과 관동팔경이요

서는 평양과 의주를 담은 관서지방이요

락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가리킴이요

기는 호동서락을 두루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시와 감상문을 쓴 것이었다

 

스쳐 지나간 일은 

눈 깜짝할 사이의 꿈이 되고 마니

글로 남겨 놓지 않으면

금강산 다녀온 것을 모두가 모를 것이고

오가며 읊었던 시들도 흩어져 잃을까

한 데 모아 기록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서 어렸을 때 배운 공부와

남장 여행을 허락해 준 바다 같은 사랑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재주를 인정해준 남편과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삼호정이

마음껏 시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를 모아주었다

 

▲   호동서락기의 본문 (일부)  © 운영자

 

하늘에 우뚝 솟은 헐성루에 올라서니

산문은 그림 같고 손끝마다 기암절벽

봉우리 그림자 마다 피어나는 부용꽃***

 

금원은 금강산 정양사 누각인 헐성루에서

부용꽃처럼 피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하늘로 우뚝 솟은 기암괴석처럼 살려는 뜻은

남성위주 사회에서 펼치기 힘든 꿈이었다

다음 세상에 죽서와 함께 남자로 태어나 

서로 시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희망을 운명은 받아주었을까

 

호동서락기를 쓴 뒤에 

그의 행적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빨리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서둘러 떠났을까 

그의 꿈과 그의 희망은 헛되지 않아

허리 잘려 일흔 두해나 끊긴 길

그가 걸었던 그 길을 이어가려는 

후손들이 두 손 모은다

 

* 김금원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남긴 말. 

** <호동서락기> 중에서.

*** <호동서락기>에 실린 김금원의 한시를 시조로 옮겨봤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歇惺樓壓洞天心(헐성루압동천심) 

纔入山門卽畵林(재입산문즉화림) 

指末千般奇絶處(지말천반기절처) 

芙蓉無數萬峯尖(부용무수만봉첨) 

 

헐성루가 하늘 중천에 우뚝한데

잠깐 산문에 드니 그림 같은 숲일레

손끝마다에 와 닿는 기암절벽에

부용꽃이 무수히 온 봉우리에 그림자 드리운다

 

▲    호동서락기는, 후학들에 의해  많은 연구서와 안내서가 나와 있는데...  © 운영자

 

 

**** 김금원이 시우(詩友)인 죽서(竹西)의 시집에 붙인 발문에서.

***** 김금원(金錦園, 1817~?); 원주 출신으로 열네 살 때인 1830년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그의 부모에 대해선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어린 딸이 금강산 여행을 다녀오도록 허락한 것을 볼 때 상당한 경제력과 자유분방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된다. 

금강산 여행을 다녀온 이듬해 원주 관아의 기생이 되었다가 김덕희(金德喜)의 소실이 됐다. 김덕희는 추사 김정희의 육촌으로 결혼 당시에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있었다. 뒤에 평안도 의주로 발령 나자 김금원은 남편보다 먼저 황해도와 평안도를 여행한 뒤 의주에서 임기마칠 때까지 함께 생활했다. 

김덕희는 의주 근무를 마친 뒤, 1847년, 서울 용산의 삼호정(三湖亭) 부근에 정착했다. 김금원은 삼호정에서 사대부들과 시를 지으며 어울리는 동시에 여성 4명과도 <삼호정시사(詩社)>를 만들어 지냈다. 연천 김이양의 소실인 성천 기생 운초, 화사 이판서의 소실인 문화 사람 경산, 송호 서기보의 소실인 원주 사람 죽서, 추천 홍태수의 소실인 자기 동생 경춘 등이 회원이었다. 

열네 살 때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지었던 시와 평양과 의주를 여행할 때 지었던 시 등을 모아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1850년)>를 만들었다. 그 뒤 행적은 전하는 것이 없어 미상이다. 

 

▲   34회를 맞는,  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의 작가 홍찬선...회를 거듭할수록 독자의 홍응이 뜨겁다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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