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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詩史

귀신을 물리치고 아들을 병사로 키운 광주 안씨 <한국여성詩史>

귀신에게 현혹되지 않고, 귀신과 겨뤄서 물리쳤다는 대가 쎈 여인 광주안씨..마침내 아들을 병사로까지 키워...

홍찬선 | 기사입력 2020/12/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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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史<36>

귀신을 물리치고 아들을 병사로 키운 광주 안씨

 소를 타고 다니던 그 정승댁 따님이.....

 

▲  병사 손명대의 영정   © 운영자

 

사람은 귀신을 무서워하지만

귀신은 사람을 어쩔 수 없다

귀신은 무섭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해코지할 뿐

귀신과 담판하는 기 센 사람 앞에선

하릴없이 줄행랑을 치고 만다

 

새댁과 무당귀신이 맞붙었다 

신당을 다시 짓고 나를 모셔라

잡신을 섬길 수 없으니 네가 떠나라

네 아들들을 모조리 잡아가겠다

아들 목숨으로 협박해도 아닌 건 아니다 

 

첫째 아들이 죽었다 그래도 굽히지 않았다

둘째 아들도 죽었다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셋째 아들을 낳았다 귀신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도 잡아가고 앞으로 아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잘못된 것을 옳다고 할 수 없다

 

너의 뚝심에 내가 졌다 

내가 어떻게 아이 목숨을 가져가겠는가

첫째 둘째는 어려서 죽을 운명이었을 뿐이다

셋째는 병사가 될 대인이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집에 나타나지 않겠다

 

▲ 밀양 다죽리에 있는 병사 손명대의 고택    © 운영자

 

아들 목숨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더 중요했다

귀신이란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

옳은 일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밀고 나가면 

하늘과 땅이 감동하고 사람이 도와주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귀신도 두 손 든다

 

병사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정승 집 딸이면서도 소를 타고 다녔다

타고난 대담함과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이 

시아버지의 마음을 첫눈에 사로잡았다

소심한 남편은 그녀 앞에만 서면 오그라들기만 하고…

 

첫날 밤 술상을 끌어다 먼저 한 잔 마시고

신랑에게 따라주니 벌벌 떨며 잔을 내려놓았고

각시 옷을 벗겨주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있자

스스로 벗어 병풍에 걸어놓고 큰대자로 잠드니

신랑은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부가 처음으로 시댁에 가는 신행(新行) 날

영남루에 들러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고 

늦게 시댁에 도착해서 신당에 절하라는 얘기를 듣고 

사귀(邪鬼)를 모실 수 없다며 신당을 불태웠다

귀신과의 한판은 마을 서낭당의 신목(神木)까지

베어내고도 아무 탈 없이 지냈다

 

▲   손명대 어머니 광주 안씨의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사진은 광주 안씨의 기록이 있는 단행본의 표지  © 운영자

 

시집을 가면 그 집 새내기로서

벙어리로 3년 귀머거리로 3년 장님으로 3년을 

살아야 한다는 새댁처세술의 탈을 쓴

남성 중심 지배이데올로기는 그에게

일찌감치 벗어던져야 할 구태였다

 

스스로 큰 인물을 낳을 몸이라는 자부심으로

합리적 신념을 버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귀신도 다스리는 강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손자 등 병사(兵使)를 일곱이나 배출한

일직손씨의 큰 할머니 되었다

 

▲   30여년 기자 생활.. 팩트 위주의 작가이며 시인인  <한국여성詩史>의 필자 홍찬선  © 운영자

 

* 홍나래 외, <손병사의 어머니, 광주 안씨>(『악녀의 재구성』 (파주: 들녘, 2017), 31~45쪽)과 황은주, 「손병사 이야기 연구: 밀양 산내.산외면 현지조사 자료를 중심으로」(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등을 참고했다. 

 

* 광주 안씨(?~?); 조선 숙종 영조 때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낸 손명대(孫命大, 1675~1733)의 부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나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고 밀양과 경상도지역에 <손병사 어머니>라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손명대는 1728년(영조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운봉 영장으로서 난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훈련도감별장과 선천방어사 등을 거쳐 1733년 제주목사로 임명돼 부임하러 가던 중 강진에서 병사했다. 그의 아들 진민공(鎭民公)과 손자 상룡공(相龍公) 및 그 후손 양석공(亮錫公) 등이 무과에 합격한 무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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