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詩史

한국인 노벨문학상 한 발 다가선 소설가 이민진 <한국여성詩來 1>

성장환경이 어떻든 극복하는 여성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민진이 증명했다.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3/01 [11: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홍찬선의 새 연재 <한국여성詩來 1> 

한국인 노벨문학상 한 발 다가선 소설가 이민진

소설『파친코』로 한국 알렸다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억울하다고 잘못됐다고 한탄만 하는 건

과거에 발목 잡혀 역사의 노예가 되는 것

노예는 한(恨)만 있고 꿈과 내일이 없다

과거를 인정하고 이겨내야 자유로워지고

역사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꿈을 꾸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 멋진 내일을 맞이한다

 

자유로운 한 사람이 꿈을 이루었다

아픈 역사의 멍에를 미래의 주춧돌 삼았다

힘든 현실은 끝없는 상상력을 펼치는 누리가 되고 

마주하는 벽에서 활짝 여는 문을 보았다

 

▲  '파친코' 출간 이후 이민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MIT 초청 강연   © 운영자

 

소설은 이리 쓸리고 저리 굴린 삶을 세운 힘이고 

문학은 잊히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영향력이다

일곱 살 때 서울을 떠나 미국 뉴욕에 새 터전 잡은

그 사람, 이민진 작가가 힘과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신들 모두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파친코』를 썼다”는 말은 유머로 포장한 진심이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 일본에서 벌어지는 

자이니치의 눈물 밥에서 피어난 웃음을,***

30년 동안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았던 

대학 때 한 강연에서 들었던 그 내용을,

일본에서 한 한국계 중학생이 학교에서 

동급생의 집단 괴롭힘에 투신자살한 사건을, 

그 누구보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이

민족성과 사회적 통념 때문에 벗마저 

혐오할 수 있다는 충격을 담았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던 가난한 추억을 가진

감수성 풍부한 소녀는 자살한 그 학생을

멍에로 지고 다니다 결국 파친코로 풀었다

 

▲     © 운영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성공한 삶을

B형간염으로 나빠진 간 덕분에 작가로 

변신한 것은 하늘이 맡긴 소명이었다

일본계 남편을 따라 도쿄에 가서 산 것은

소명을 완수하라며 내린 운명이었다

 

언청이는 흠이 아니었다

모든 것 넓고 깊게 받아들이는 바다 닮은 맘

고통을 즐거움으로 곰삭히는 다이아몬드처럼

굳센 사는 힘 살리는 정성 살아가는 뜻 있어

하늘을 탓하지 않고 사람을 핑계대지 않으며

그 사람 만나 그 사람과 함께 산 삶을 그렸다

 

가난하기만 했던 식민지 백성으로

오로지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와 

갖은 차별과 학대를 가까스로 이겨내며

아들 딸과 손자 낳고 살고 있는데

 

그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부조리,

아무리 기를 써도 어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파친코만이 유일한 생업,

야쿠자는 악의 세력이지만

철저한 차별에 의해 출구가 막힌 자이니치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현실,

 

▲    한국어로 번역된 <파친코> 표지 © 운영자

 

담담한 눈물로 조용조용히 고발했다

영리함과 정신력과 유머러스함을 무기로

문맹과 사회적 천대를 불평하지 않고

삶을 헤쳐 나가는 잡초보다 강한 생명력,

 

그런 현실에서 그런 생명력으로 살아 온

수십 수백만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부산 영도에서 시작된 훈과 양진의 딸

선자와 한수의 모자수, 선자와 이삭의 노아, 

요셉과 경희의 파란만장으로 풀었다

 

줄거리와 이야기가 응집되고 견고해서

독자들이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드는 

경험에 가슴 졸인 고개를 끄덕이고

스물아홉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에게

잊히고 뒤틀린 역사를 제대로 알게 했다

 

40년 넘게 영어로 말하고 쓰느라 

한글을 거의 잊었지만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절반이 한국인임을 좋아하는 사람

동양과 서양 문화 양쪽을 접하는 특권이라며

미국인인 것도 사랑하는 그 사람 Korean-American,

 

무지함은 편견이고 편견은 오만이고

편견과 오만은 무뇌 인간을 만드는 죄악이라며

미국학원(American Hagwon)****으로 한국인에게

교육의 역할과 가치를 탐구하는 여행에 나선 

그 사람이 한글과 한국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고향을 잃었어도 진짜 고향을 일구었다

  

▲     © 운영자

 

 

* 소설 『파친코』의 시작 첫 구절. 

** 이진민 소설가가 MIT 등의 강연에서 한 말.  

*** 자이니치: 일본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한국인들. 재일(在日)의 일본어 발음

**** 미국학원: 이민진 작가가 “백만장자를 위한 무료 음식”와 “파친코”에 이어 3부작 마지막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품 주제.

***** 이민진(1968~);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브롱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예일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 픽션과 논픽션 글쓰기에서 수상했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건강으로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나섰다. 

2007년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무료 음식”으로 성공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과 함께 4년 동안 일본에 살면서 ‘자이니치(在日; 재일한국인)’들과 인터뷰하면서 “파친코”를 완성했다. “파친코”는 2017년 미국의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29개 국가에 번역돼 읽히고 있다. 

“파친코”는 2020년에는 애플TV에서 8부작 드라마로 제작에 착수해 2021에는 드라마로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이민호가 고한수 역에, 윤여정이 선자 역에 캐스팅 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현장의 작가 홍찬선...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서도 현장을 찾는 작가정신. 지난 여름  의림지를 취재차 찾았던 홍찬선작가...셀프사진이다    © 운영자
홍찬선의 다른기사 보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wonnews.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여성詩來 1>,#홍찬선,#이민진,#파친코,#노벨상,#여원뉴스#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