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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IMF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을 준 박세리 <한국여성詩來>

IMF 치하, 전쟁 같은 압박감,,그때 박세리의 승전보는, 625때 유엔군 참전소식처럼 온국민을 열광케 했으니.....

홍찬선 | 기사입력 2021/03/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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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이 쓰는 <한국여성詩來 9>

IMF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을 준 박세리 

 슬럼프 피하지 말고 인정하라

 

▲  우승이 확정된 순간, 환호하며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박세리   © 운영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운동화에 이어 양말까지 모두 벗었다

햇볕에 구릿빛으로 탄 장딴지와 

솜과 눈처럼 하얀 발이 보는 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게 하고 저절로 탄성이 쏟아졌다

 

물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이 

물웅덩이 턱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성큼성큼 물속으로 들어가 볼을 안전하게 쳐냈다* 

스물한 살의 수줍은 많은 처녀는 없었다

겁 없이 도전하고 싶어 할 때였다

 

오로지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이기리라는 다짐

오로지 이겨서 피눈물 참은 것에 보답 받겠다는 의지

오로지 우승컵 번쩍 들어올려 IMF 위기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새 출발할 희망을 줄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런 바람이 바람으로 통했다

물웅덩이도 그를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노련한 세계 상위권 선수들도 우승하기 힘든

US오픈에서 자신보다 더 큰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렸다** 

멀고 먼 미국으로 간 지 2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  신발 벗고  맨발로 물에 뛰어드는 박세리...세계는 '맨발의 투혼'이라고 격찬했으니...   © 운영자

 

그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경제가 거덜 난 나라,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골프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작은 나라에서 온 

새내기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를 보고 꿈을 키운 

그의 키즈들이 LPGA를 휩쓸게 한 새 희망이었다

 

그것은 배달겨레에게 가슴 벅찬 힘을 준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는 것 알려준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꿈은 이뤄진다는 것

맑고 밝게 보여준 산교육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이었다

 

그런 엄청난 결과는 거저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연습하며 흘린 눈물과

아파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삼킨 땀과

어둑어둑해질 때 공동묘지를 다녀오는 떨림과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낸 필연이었다

 

그의 별명은 ‘프로 잡는 아마추어’였다

열다섯 살, 중학교 3학년 때인 1992년, 

KLPGA ‘라일앤스코 여자오픈’에 초청받아 

원재숙 프로와 연장전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

열여덟 살,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5년,

아마추어로 쟁쟁한 프로들을 제치고 4승을 챙겼다 

 

▲ 마침내 우승컵을 안고...US오픈 최연소  우승이었다  © 운영자

 

1996년에 프로로 전향하고 미국으로 갔다

가면 고생뿐이라는 모두의 반대를 뿌리치고

더 큰 세계무대에서 더 잘 하는 선수들에게

인정받겠다며, 진정한 프로가 되겠다며…

 

세상은 마음먹은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1년 동안 피눈물 흘린 덕분에 

연습학교를 1등으로 통과하고 LPGA에 데뷔했으나 

세계의 벽은 높고도 높았다   

소리 없이 불쑥 찾아온 슬럼프에도 시달렸다

 

더욱 더 강한 채찍질로 스스로를 채근했지만

슬럼프는 늪처럼 더욱 수렁으로 끌어들였다

생각을 바꾸었다 슬럼프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진드기처럼 달라붙던 슬럼프가 슬그머니 물러갔다

 

스스로를 좀 더 아끼고 보살피고 덜 인색하라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오르막이 끝나면 내리막이 있으며

나쁜 경험이란 없으며 딛게 일어서면

모두 좋은 경험으로 바뀐다는 것을 깨달아라***

 

▲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우승한  박세리와  박세리키즈들...사진 왼쪽부터, 김세영, 박인비, 박세리, 임희영, 전인지  © 운영자

 

나를 버리니 참된 나가 찾아왔다

매번 상금랭킹 1위를 낚아채는 소렌소탐마저

함께 즐기는 동반자로 여기자 공이 부드러워졌다

최연소 메이저4승이 보너스로 따라왔다

투어 7년 만에 LPGA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흙과 쇠의 기운을 듬뿍 타고난 사주에 맞게**** 

자신의 명을 운전하며 운명을 이끌었다

 

영웅도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영웅은 사라지지 않았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내주었던 영웅은 

리우데자네리우 올림픽에서 감독으로 

우승을 이끌어 감격의 눈물을 선사했다 

 

골프라는 말조차 듣기 힘들었을 때

온 국민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칠 때 

내가 꾸었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어

함께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게

축복이었고 큰 의미가 있었다

박세리 키즈들이 그 눈물과 기쁨을 함께 즐겼다 

 

▲    망중한....취재 여행 중 커피 한 잔으로 망중한을 즐기는  홍찬선작가© 운영자

 

*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맨발로 공을 친 것은 연장18홀 두 번째 샷이었다. 맨발 샷으로 파를 지켜낸 뒤, 서든 데스 2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우승했다. 

** 당시 이 시합은 정규경기 72홀에 연장전 18홀 및 서든데스 2호를 합해 모두 92홀로 US여자오픈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가장 긴 경기로 기록됐다. 당시 박세리의 상대는 아마추어로 출전한 무명의 태국계 미국인 제니 추아시리폰이었다.     

*** 박세리 어록에서. 

**** 사주명리 전문가인 박명우 선생은 박세리 선수의 일주(日柱)인 무자(戊子)의 무토는 필드를, 월주인 기유(己酉)의 금은 골프채로, 흙과 쇠의 기운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뤄 골프로 대성할 수 있었다고 풀었다.  

***** 박세리(1977. 9. 28~); 충남 대덕군 유성읍에서 박준철과 김정숙의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자 골퍼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서 활약했다. 어렸을 때 육상을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89년, 아버지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다. 새벽 2시까지 연습장에 혼자 남아 쉬는 날 없이 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92년 KLPGA 대회인 ‘라일앤스코 여자오픈’에 초청받아 원재숙 프로와 연장전을 벌여 우승해 골프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고3 때인 1995년에는 아마추어로 4승을 올렸다. 1996년 프로로 전향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진출했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해 국난극복에 심혈을 기울이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특히 볼이 물웅덩이(워터해저드)에 걸리자 맨발로 물속으로 들어가 공을 치는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LPGA 첫해인 그해 4승을 기록, 신인상을 받았다. 

2001년에 브리티시 여자오픈, 2002년에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 최연소 메이저4승을 달성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아니카 소렌스탐 및 캐리 웹과 함께 LPGA를 이끈 삼두마차로 활약, 2007년 6월에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어깨부상으로 2015년 이후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2016년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여자선수 감독으로 출전해 우승을 이끌었다. 

LPGA 25승, 메이저 5승, 연장전 6전 6승의 대기록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전성기였던 1998년과 2001~2003년에도 상금랭킹 2위에 머물렀다. 당시 골프 여제로 통했던 소렌소탐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박세리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선수들을 ‘박세리 키즈’라고 부른다. 1998년 10살 안팎이던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김인경 이선화 김하늘 이보미 양희영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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