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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가 세운 서울월드컵 필승전략 세가지 중 하나는....

올림픽보다 뜨거웠던 월드컵 2002의 비화..기획하고, 힘을 합치고...함께 했던 월드컵의 국민적 승리

김석주기자 | 기사입력 2022/06/2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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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서울 월드컵의, 지금도 뜨거운 추억

박승주가 세운 서울월드컵 필승전략 세가지 중 하나는.... 

"경기 뿐만 아니라, 응원에서도 승리..결국 국민의 승리다" 

 

▲   2002년을 완전히 가득 채운, 전국민의 뜨거운  응원 열기....[연합뉴스=여원뉴스=특약]  © 운영자


     20년 전이 엊그제 같은 2002 월드컵의 뜨거운 추억

[yeowonnews.com=김석주기자] 모든 이벤트에는 반드시 연출이 있다. 우리는 그 연출을 기획이라고도 부르고 아이디어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 귀애 쟁쟁한, 20년 전 붉은악마의 외침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된 참신하고 노련한 기획과 국민적 열기가 융합된 빅이벤트..그 기획의 주역은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지금 ()시민자원봉사회의 박승주이사장(전 여성가족부차관) 그 숨은 기획자. 그는 월드컵 기간을 전후한 60여일 동안 집에도 안들어 가고 노심초사하면서, 그 자신 응원단 이상의 열기에 가득찬 나날을 보냈다. ‘월드컵 지원 TF 국장, 월드컵 당시 그의 공식 직책. 그 대단했던 월드컵 응원의 신화(神話)가 거의 그가 중심이 되어 치밀하게 짜여지고 추진된 기획 산물이었음을, 그는 애써 감추려하진 않지만, 또한 비공개석상에서도 별로 언급한 일이 없지만, 이제 월드컵 20년을 되돌아 보는 자리에 그를 다시 세워본다.

 

--붉은 악마에 열광하던 2002년도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감회가 깊으시겠다.

월드컵 20년 맞는 감회라면 전국민이 다 똑깥다고 본다. 당시 내 직책은 행자부의 월드컵 지원 TF 국장이었다. 한국팀 필승전략, 외국팀 응원전략, 대대적인 길거리 응원이라는 3개의 정책을 추진하여, 전국민이 다 아시다싶이, 성공했다. 국민들은 길거리응원을 통하여, 그야말로 한없이 고함지르며 응원할 게기가 만들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선택은 자랑스런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응원이라기보다는진짜 애국이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월드컵 하면 생각나는 것이 붉은 악마다붉은 악마를 기획하고 함께 이끌어 온 입장에서 볼 때그 때의 열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전국민 애국심의 발로였다세계적으로 큰 대회였고단일종목으로는 올림픽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한국에서 개최되고 한국팀이 조1위가 되기전부터국민들이 열정을 갖기 시작했다. 4강에 오를 때까지의 기록이 4승 1무였다이건 세계적인 기록이다.

 

▲    2002 월드컵 당시  행자부의 월드컵 지원 TF 국장으로,  2002 월드컵신화 탄생의 주역 중 한사람이었던 박승주 (사)시민자원봉사회 이사장   [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그 해 월드컵 응원 준비하느라고, 공무원으로서 좋은 영전의 기회가 왔는데도 안 갔다는 설이 있는데.....

행자부 광주광역시 1급 행정부시장 제의가 있었다. 좋은 제의였지만....그 제이를 사양하고 이 직책 맡기를 잘 했다, 는 생각이 든다. 한국팀이 좋은 결과를 내고, 나도 성과를 내고 싶었다. “네가 맡으면 16강 될 것 같으냐?”고 수 없이 스스로에게 자문(自問)도 해봤다. 망설임 없이 그 길을 택했던 결정,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내에서, 창의력과 추진력 면에서 인정받았음은 물론, 그 부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들었는데....

과찬이시다. 나 개인에 대한 외부 평가야 어떻든...좋은 기획을 세워 참여하고, 월드컵에 기여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기획통으로 살아온 자존감이 살아났다. 내가 기여해서, 한국팀이 분명히 좋아질 거라는,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었다.

--그 때의 그 대단한 열기를 어떻게 해석하나? 왜 그렇게 국민들이 열광했을까, 그 원인을 분석해 본다면?

한국팀이 조별 리그전 1차전에서 폴란드와의 대전에서 이겼다. 국민들은 이제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기 시작했다고 믿기 시작했다. 스포츠 응원은 준비를 잘하고 상황에 대처를 잘하면 열광한다. 월드컵이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폭발적인 응원에너지가 나온 것이다. 동시에 히딩크를 국민들이 믿기 시작했다.

-- 당시 대한민국을 외치는절규에 가까운 고함 등...그야 말로 국민총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되는데그 뜨거웠던 열기의 원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열광하고 소리를 지를 기회가 별로 없었다소리 지른다면 데모할 때나...그런데 월드컵 경기를 보며 소리를 지를 수가 있었다는 사실에국민들도 신이 났다거기에 히딩크가 있었고...아시다싶이 월드컵 기간 동안도둑도 화재도 별로 없었다자발적으로 국민총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마음껏 소리 지르고 한국팀이 이기니기분 좋아 더 소리 지르고...신이 나서경기 끝난 후 거리 청소까지 다 했다선진국민임을 입증한 거다.

 

▲  2002 월드컵에서, 골인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안정환선수...[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 붉은 악마가 입은 붉은색은 그동안 남자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색깔이었는데....

그렇다. 사실 붉은색은 남자들에게는 금기(禁忌)의 색이었다. 그러다가 월드컵을 계기로 붉은색을 선호하는 남자들이 늘어났다.

 

-- 지금 우리가 한국대표팀이 출전하는 경기가 있으면, 모두 열광한다. 흥분하고 난리를 치다싶이 한다. 그 열기가 2002년에 비롯되었다는 축구 열성팬들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하나?

그 주장 옳다. 그 전까지는 청소년들도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더구나 집단으로 발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스포츠를 보며 열기를 발산하는 풍조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월드컵 한 달 내내 뜨거운 열기가.... 그 후부터 축구경기는 물론, 모든 경기장에서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은 옳다고 본다.

-- 당시의 응원 열기는, 일부 스포츠팬들이 아닌 전국민적 이벤트였다고 한다.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하나?

월드컵이 미친 영향 가운데 기록적인 사항들이 있다. 국내적으로는 단군 이래 최초로 전국민 일념으로 국민통합이 되었다는 점은 이미 말씀 드렸지만...고교생들도, 어디 모여서, 크게 외치기 힘들었는데...이제는 어디서든지 모이기만 하면, 고함지른다.

--대외적으로도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등 월드컵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우리가 만든 제품이 일류국가와 동등하다는 국제적 공인도 받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확실해졌다. 한달 내내 시합을 하면서 전세계에 한국 이미지를 크게 선양했다. 또 한국 제품의 국제적 신임도가 일본과 동등할 정도로 높아지지 않았나?

--축국 영웅 손흥민의 탄생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2002 월드컵과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손흥민 뿐 아니라, 월드컵 이후 축구선수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늘어났다. 수출이 엄청 활성화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선봉에 월드컵 축구가 있었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앞으로도 손흥민 같은 축구영웅들이 많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겠나?

--스포츠는 국민을 단합시키는 중요한 촉매제라고 한다. 응원 열기과 경제성장과 관계는?

응원열기가 경제 성장과 연결된 것은 뜻밖의 소득이랄 수 있다.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이 확대되고, 선진국으로 가면서 계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2월드컵이, 현재 뜨거운 열기로 퍼져가는 한류열풍의 뒷받침이 되었다는 평가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월드컵을 통해서 한국과 세계가 가까워져서 한류 확산에도 기여했다고 본다.

 

▲   경기장에 나온 응원단만 붉은악마가 아니었다.  전국민이 진짜 붉은 악마가 되어, 목이 터져라 하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20년전의 서울 월드컵 축구는.... [연합뉴스=여원뉴스 특약] © 운영자

 

--2002월드컵을 되돌아볼 때, 잊지 못할 일도 많았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붉은악마와 김덕수사물놀이는 그 당시 응원의 선봉장이고, 내 역할은 붉은악마나 김덕수사물놀이 등을 뒤에서 도와주는 일이었다. 붉은악마는 2002월드컵을 대비해서, 2000년에 만들어진 자율 단체다. 젊은 친구들이 그 뜨거운 응원을 세계적으로 확장, 아니 거의 폭발시켰다는 사실은 지금도 감격하고 놀랄만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들에게 배정된 경기장 입장권이 너무 적었다....응원단 좌석은 모두 16,000석인데 붉은 악마에게 배정된 입장권은...1,600석이라서...

--거의 10분지 1밖에?

어쨌든 응원이 체계화되어야 했기에....전체 관중을 붉은악마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굿아이디어!!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꽹과리가 15. 김덕수의 사물놀이가 10명인데...운동장 전체에 사물놀이와 꽹과리 소리가 들리도록 해보자고 했다. 그러자면 붉은악마와 사물놀이가 손발이 맞아야 된다. 사물놀이단 25명이 응원단에 합류했다. 꽹가리 15명, 사물북이 10명....그들이 내는 소리가 운동장전체ㅐ 7만관중과 합쳐져서, 그야말로 운동장이 무너질 정도록 고함을 지를 수 있었다. 당시 월드컵 승리를 이한 전략회의를 할 때 김덕수 사물놀이와 붉은악마 대표도 회의의 참석토록 했다. 그렇게 되니, 상호 신뢰와 열기가 상승작용을 했다. 그 대표들은 세상이 떠나가도록 크게!”라는 합의까지 보았다, 그런 과정이 있었고,, 스포츠만 승리한 것이 아니고 응원도 승리했다. 결국 국민이 승리한 거다. 그때 그렇게 외치면서 국민통합이 이루어진 건, 역사에 기록될만큼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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