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환자에게 살해당한 정신과의사는 환자바보였다

그는 우리 시대 보기 드문 환자바보였다. 우리 모두 의사의 안전을 위한 청원에 참여하자

이정운기자 | 기사입력 2019/01/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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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생각하는 사람, 먼저 보아주어야…"

환자만 생각하던 숨진 의사가 남긴 글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중이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47)씨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페이스북에 A씨가 생전에 SNS에 올렸던 글을 발췌해 소개하고 추모했다.

 

이 글에서 A씨는 한국형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듣고말하기’를 개발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전국에 보급돼 2013년 이후 60만명이 교육을 받았다.

 

▲ 지난달 31일 저녁 강북삼성병원에서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조선일보)    © 운영자

 

A씨는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외롭다.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절박하고 애처로운 신호를 보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외롭게 죽어간다"며 "먼저 보아주어야 한다. 알아야 볼 수 있다. 그러니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도 또 듣는다. 잘 들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야 한다.충분히 들은 후, 그제서야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살릴 수 있게 말하는 방법을 알려야 한다.그것이 ‘보고듣고말하기’의 전부다"라고 적었다.

 

이어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당신의 삶에 기회를 조금 더 주어 보자고,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라며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적었다.

 

A씨는 2016년 출간한 책에선 자신이 겪었던 우울증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언의 말을 건넸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으로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고, 그 이후 환자의 감정을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이 절망에 빠져 있는 분들, 마음이 아픈 이들은 가족으로 두고 있는 분들, 무엇보다 삶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채워나가고 싶어 하는 모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 A씨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의료진에 대한 폭력에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 운영자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 행위에 대해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북 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자는 "우리나라에서 의료인들은 수 많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의사가 응급실에서 폭행당한 사건은 2018년에 너무나도 많이 벌어져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마침내 한 의사가 이런 힘든 환경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의업 종사자,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서 폭력과 폭행 행위 및 범죄 행위에 대해서 강력히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구비해달라"고 썼다. 청원이 올라온 지 하루가 지난 1일 오후 10시 현재 2만3000여명이 동의했다.

 

다음은 A씨가 ‘보고듣고말하기’와 관련 SNS에 남긴 글 전문이다.

흉부외과와 보고듣고말하기 요즘 ‘흉부외과’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내가 인턴이었던 1996년, 나는 흉부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흉곽을 절개하고 나면 내 눈앞에서 박동치는 붉은 심장이 드러난다.

 

혈액을 심장 밖에서 순환시키는 체외순환기를 비롯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수많은 장치들을 조정하며 집도하는 흉부외과의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였다. 수술이 끝난 후 중환자실에서 밤새 환자를 킵(keep)하는 1년차 선생님을 돕는 것이 인턴인 나의 임무였지만 그것도 정말 멋있었다. 주치의인 1년차 선생님은 소변주머니로 노랗게 환자의 소변이 잘 나오자 정말 기뻐했다. 그것은 혈액과 체액의 순환이 원활하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나도 기뻤다.

 

생면부지의 환자 곁에서 밤을 세우며 우리는 사명, 생명, 사랑, 인권 뭐 이런 거창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진짜 의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흉부외과의사가 될 수 없었다.

 

내가 흉부외과에 관심을 보이자 전공의 선생님들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했다. 어느 날 응급실로 폐암말기 환자가 방문했다. 당시 당직이셨던 3년차 선생님은 내게 흉곽천자(thoracentesis)를 해보라고 하셨다. 이전에도 1번 해보았던 술기였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결국 옆에서 지켜보던 3년차 선생님께서 이어 받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 환자에게 유독 미안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분이 사망했다…

 

그 죽음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내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자책했고 절망했다.

아둔한 나의 손을 탓했다. 이런 간단한 술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내가 과연 나의 무능력으로 내 손으로, 내 눈 앞에서 누군가를 죽게 한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흉부외과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흉부외과와는 가장 거리가 먼, 아둔한 손으로도 최소한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정신과의사가 되었다.

 

전공의 2년차 시절, 나는 자신만만한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전 퇴원시켰던 할머니 환자가 나를 찾아왔다. 반복성 우울증으로 5~6번 입원하셨던 분이지만 내가 주치의를 맡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환자였다.

 

남편을 사별하고 자녀들은 모두 출가하여 혼자 사는 집으로 퇴원하시는 것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우울증상 자체는 많이 호전된 상태에서 퇴원했기 때문에 나는 반가운 인사로 할머니를 맞이했다. 그리고 서로 감사와 안부를 전하는 대화를 조금 하고 나서 그 분은 내게 "그 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말을 선생님께 꼭 전하고 싶었다" 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지만 그때 나는 너무 바빴고 할머니의 표정도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더 이상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할머니의 아들이 찾아왔다. 할머니께서 자살하셨고 자살임을 확증하기 위해 경찰에 우울증 진료기록을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나는 또다시 자책했고 절망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는가? 손도 머리도 이렇게 아둔한 의사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리고 10여년의 시간이 더 지난 후 나는 경희대 백종우교수, 서울대 김재원 교수와 함께 ‘보고듣고말하기’를 만들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외롭다.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절박하고 애처로운 신호를 보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외롭게 죽어간다. 그리고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그렇게 떠나 보낸 남은 사람들은 그 때 그 신호를 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고 절망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먼저 보아주어야 한다. 알아야 볼 수 있다. 그러니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도 또 듣는다. 잘 들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야 한다. 충분히 들은 후, 그제서야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살릴 수 있게 말하는 방법을 알려야 한다. 그것이 ‘보고듣고말하기’의 전부이다.

 

힘들어도 오늘을 견디어 보자고, 당신의 삶에 기회를 조금 더 주어 보자고,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 함께 살아보자고… 나는 손재주도 없고, 건강도 그리 좋지 못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김재원 교수와 백종우 교수는 앞으로도 평생의 동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삶을 보호하고 싶다는 진심을,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이 주는 따듯한 희망을 우리가 함께 만드는 ‘보고듣고말하기’에 담고 있다. 지난 금요일 공군에 이어 ‘대한민국 육군을 위한 보고듣고말하기’를 완성했다.

 

육군은 10월부터 모든 장병에게 ‘  보고듣고말하기’를 교육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전역하면 사회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전파되면서 우리의 진심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까지도 모두 ‘보고듣고말하기’를 통해 서로를 지켜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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