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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패션, 일본 중장년 여성들 백발 열풍 "늙어 보여도 좋아"

허긴 새까맣게 염색되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머리카락보다, 자연 백발이 더 매력적일 수도,,,

유인정기자 | 기사입력 2019/01/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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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보이지 않아도 괜찮아…흰머리도 패션인 걸

'그레이 헤어'가 일본에서 '올해의 유행어' 후보에 오른 이유

“매번 염색하는 스트레스 줄고 있는 그대로 나 해방감 느껴”

 

지난해 기준 일본은 총인구 1억2652만9천명 중 65살 이상이 28%(3547만1천명)인 초고령화사회입니다. 일본 사회를 취재하다보면 뉴스 대부분의 배경에 고령화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머지 않아 겪게 될 현실이기도 합니다. 초고령화사회 일본에서 보고 느낀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48살의 아사쿠라 마유미는 염색을 그만둔 뒤 미용실 가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 운영자

 

흰머리도 패션이 될 수 있을까?


한겨레에 의하면, 올해 48살인 일본 작가 아사쿠라 마유미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45살 때부터 염색을 그만둔 아사쿠라는 자신이 어떻게 흰머리를 가꾸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그레이 헤어(Gray hair) 아름다운 마담에의 길>라는 책도 펴냈다.


최근 일본에서는 영어로 흰머리를 뜻하는 ‘그레이 헤어’라는 말이 유행이다. 출판사 자유국민사와 유캔이 해마다 함께 선정하는 ‘올해의 신어·유행어 대상’ 후보 중 하나로 지난해 그레이 헤어가 뽑혔다.

 

아사쿠라도 처음부터 그레이 헤어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사쿠라는 18살 때부터 30년 가까이 염색을 계속해왔다. 집안 내력 탓에 어렸을 때부터 흰머리가 많았다. 잦은 염색으로 두피가 아파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적도 있다. 의사가 “염색제는 아무리 자극이 약한 제품을 쓰더라도 피부에 좋을 수가 없다.

 

염색하는 횟수라도 줄이라”고 말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흰머리는 보기 싫다’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잡지에 기고하는 일이 많은 프리랜서 작가라는 특성상 취재를 위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흰머리를 보이는 게 실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사쿠라는 염색을 그만두면서 어려 보이기보다는 멋있어지기를 택했다. “염색을 그만두고 나서 아무래도 실제 나이보다는 더 많아 보이게 됐죠. 처음에는 저 자신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무리하게 제 나이보다 적게 보이는 것보다는 멋지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50대를 앞두고 있어 ‘나이듦’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점도 염색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일본에는 ‘어라운드 피프티’(around fifty, 일본식 영어 표현으로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초중반을 이르는 말)라는 말이 있어요. 50대 전반 정도로 보이는 것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무리하게 40대 전반으로까지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주위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매너 위반이다” “염색하면 더 어려 보일 텐데 아깝다”는 말도 들었다. 본인도 신경이 쓰였다. 어느 기업의 사장을 인터뷰할 때 “이상한 머리 색깔이라서 미안합니다”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한 적도 있다. “나중에 내가 왜 사과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동창회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모임에 가면 “두근두근할 것 같다”고 했다.


염색을 그만둔다고 바로 그레이 헤어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한 달에 1㎝ 정도 자라기 때문에 중간에 염색한 머리카락과 흰머리가 뒤섞여 어색한 모습이 될 수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머리카락 전체를 탈색한 뒤 갈색보다 옅은 색깔로 물을 들이면서 조금씩 흰머리를 기르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동시에 머리 길이도 점점 짧게 잘라나간다. 그레이 헤어 ‘완성’까지 보통 1년이 걸린다.


그레이 헤어를 완성한 아사쿠라는 미용실에 갈 때 마음이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 염색할 때는 의무감으로 했죠. 즐겁지 않았어요. 전에는 흰머리를 어떻게 감출까를 고민했는데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머리 색깔을 어떻게 살릴까 생각해요. 꾸미는 게 더 즐거워졌어요. 머리 색깔이 가벼워지면서 화려한 옷도 더 잘 어울리게 됐고요.”

 

▲ 54살인 스기타 미와는 염색을 중단한 이후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 운영자

 

올해 54살인 여성 스기타 미와도 흰 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이후 “해방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23일 만난 스기타는 원래 “흰 머리는 당연히 염색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0대 때부터 한 달에 1번씩 염색을 해왔다.

 

하지만 2017년 9월부터 염색을 중단했다. 직접적 계기는 미용사가 무심코 건넨 말이었다. ‘염색하는 게 귀찮다’고 하자 미용사가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보통 미용실은 염색을 권하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그만두라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남성 중에 흰머리를 드러내는 경우가 늘어난 점도 용기를 줬다. “나와 동년배인 남성 배우들이 흰머리 그대로 승부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그대로의 모습을 세상이 점점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염색을 그만둔 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됐죠. 머리카락도 더 건강해졌고요.”


그레이 헤어라는 단어가 최근 일본에서 유행한 데는 출판사 ‘주부의 벗’이 펴낸 사진집 <그레이 헤어라는 선택>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레이 헤어를 선택한 배우와 디자이너, 주부 등 다양한 여성의 사진과 사연을 실은 이 책은 지난해 5월 초판이 나와서 5만5000부가량 팔렸다.

 

출판사 안에서도 ‘흰머리를 다룬 책이 팔리겠느냐’는 우려가 컸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지난 12월27일 도쿄 분쿄구 사옥에서 만난 이 책의 편집자 요다 구니요(61)는 “(일본 유명 여성 아이돌 그룹인) AKB48 사진집도 4만부 정도 팔렸다고 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레이 헤어라는 선택>은 꽤 팔린 편”이라고 말했다.


요다가 흰머리를 주제로 사진집을 기획한 계기는 2014~15년 60살 이상 일본 여성들의 거리 패션을 다룬 사진집 <오버 60 거리 스냅(OVER 60 STREET SNAP)>이라는 책을 시리즈로 두 권 내면서였다. 요다는 책을 완성한 뒤 다시 보니 의외로 등장인물 중에 흰머리를 한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했다.

 

“일본에서 흰머리는 염색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런데 진짜 멋쟁이들은 흰머리도 패션의 일부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죠. 흰머리를 염색하지 말자는 제안을 하는 책을 만들 수 있겠다고 하고 생각했어요.” 요다 자신이 2014년 책을 만들 당시 흰머리로 고민하고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요다는 당장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책을 만들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2016년 프랑스 파리 장년층 여성 사진집인 <파리 마담 그레이 헤어 스타일>이라는 책을 냈다. 그레이 헤어라는 말부터 알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해외 여성들이 등장하는 책을 냈다. 일본어로 흰머리라고 하면 세련된 느낌이 잘 들지 않기 때문에 영어 단어인 그레이 헤어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 그레이 헤어 관련 책들. 위 왼쪽부터 <그레이 헤어 미인> <그레이 헤어라는 선택> <파리 마담 그레이 헤어 스타일>. 아래는 <그레이 헤어 아름다운 마담에의 길>     © 운영자

 

그레이 헤어라는 말이 유행한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2020년이 되면 여성 절반은 50살 이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요다는 “많이 감추고 있지만 사실 흰머리인 사람들이 많다. 두피까지 상하면서 염색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염색하지 않아도 멋있을 수 있다고 보여주니 책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요다도 이 책 편집을 계기로 2017년 10월부터 염색을 중단했다. “정기적으로 염색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다만,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가끔 누군가 내 흰머리를 보고 있지 않나 스스로 신경 쓰일 때는 있다”고 말했다. 요다는 ‘그레이 헤어와 삶의 방식’을 주제로 다음 책을 기획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백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염색을 하고 안 하고에 우열은 없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개인이 선택하면 될 일이다. ‘나이듦’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면, 흰머리 선택도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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