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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담배공장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술은 화려함만으로 되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 이루어가는 예술공간은 어디에서나 가능

김미헤기자 | 기사입력 2019/02/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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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옛 담배공장, 미술작품을 품다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1층의 개방 수장고     © 운영자


수장고 개방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난 작품은 작가, 소장자에게 돌아가거나 수장고로 향한다. 상설 전시되는 작품도 있지만, 수장고 한쪽에 놓인 채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0년대부터 유럽에서는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 작품을 깨우기 위해 수장고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리창 너머로 보여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빗장을 열었다. 스위스 바젤의 샤울라거(Schaulager) 미술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ictoria & Albert)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랑스(Louvre-Lens) 박물관 등이 수장고를 개방한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국내에도 개방형 미술관을 갖춘 미술관이 생겼다. 바로 지난해 12월 27일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이하 청주관). 과천, 덕수궁, 서울에 이어 네 번째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옛 청주 연초제조창을 2년간 재건축해 수장공간, 보존과학 공간, 기획전시실, 교육공간, 편의시설 등을 갖춘 연면적 1만9천855㎡, 지상 5층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청주관은 작품 보관 공간이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하는 '수장형 미술관'이다. 즉 전시보다는 보관에 초점이 맞춰진 곳이다. 조각, 공예, 회화, 미디어 등 미술작품 1만1천여 점을 보관할 수 있다. 관람객은 수장고에 직접 들어가거나 일명 '시창'(Window)이라 부르는 유리창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즉 청주관은 수장고를 개방해 전시와 보관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콘셉트로 설계됐다.

 

이영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학예연구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가진 다양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수장고를 개방했다"며 "큐레이터가 일정한 주제를 갖고 설명하는 일반 미술관과 달리 청주관은 관람객이 작품을 날 것 그대로 만나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날 것 그대로를 만나는 개방 수장고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1층에 있는 개방 수장고다. 건물 바깥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분위기는 전시장이라기보다 창고형 마트에 가깝다. 물건을 쌓아둔 대형 창고처럼 성인 키의 두 배 이상인 3단의 긴 진열대가 통로를 따라 마주 보고 있다.

 

수장대 칸마다 작품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수장고 바닥에는 규모가 큰 작품들이 놓여 있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 같지만 작품은 시기별로 구분돼 있다. 수장대에는 1930∼1980년대 작품이, 바닥에는 1990년대 이후 작품이 주로 놓여 있다. 작품마다 붙어 있는 라벨을 보면 고유의 관리번호 앞에 SC가 붙은 것이 많다. CR, NM이 붙은 것도 있다. SC는 조각(sculpture), CR은 공예(craft), NM은 뉴미디어(new media)를 뜻한다.

 

이곳은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유입되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덜 민감한 작품 위주로 보관하고 있다. 청주관에서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수장고는 이곳뿐이다. 이곳에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꽤 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의 '미륵불'부터 철 조각가 송영수의 '생의 형태', 왜소한 몸통에 머리가 큰 로봇으로 철학자 데카르트를 표현한 백남준의 '데카르트' 등 조각·공예·미디어 작품 17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0년대 초반 사들인 영국 조각가 토니 크랙의 '분비물'도 있다.

 

개방 수장고의 가장 큰 걱정은 훼손이다. 관람객과 작품의 접촉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술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20명 단위로 관람 예약을 받고 관람객이 학예사나 가이드를 따라 돌아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주관측은 오는 2월 말까지 관람객이 개방 수장고를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이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예약제로 개방 수장고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영주 학예연구사는 "소장품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관람객에게 알려주는 검색대도 올해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중섭·김환기 등의 작품이 있는 2층 보이는 수장고     © 운영자

 

이중섭·김환기·김기창의 그림을 만나다


2층에는 보이는 수장고와 관람객 쉼터가 있다. 이곳 보이는 수장고에는 회화와 판화 작품이 보관돼 있다. 관람객 쉼터로 가는 길목 오른쪽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수장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창 너머로 작품 몇 개가 보이는데 그냥 보고 지나칠 것은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의 작품이 그곳에 걸려 있다.

 

유리창 너머 정면에는 근대 1세대 여성화가이자 운보 김기창의 아내인 박래현(1920∼1976)의 '영광'이, 바로 아래에는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이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이중섭(1916∼1956)의 '호박'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생활고와 병으로 힘들어하던 이중섭은 호박이란 소재에 매달리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1913∼1974의 '초가집'이 걸려 있다. 1950년대 초가집을 토속적이고 소박하게 그려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왼쪽으로는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다.

 

현재 이들 회화와 판화 작품 뒤로 보이는 공간은 대부분 비어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천300여 점을 옮겨왔고, 올해 1천여 점을 더 들여올 예정이다. 청주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4천여 점과 미술은행 소장품 1천100점 등 5천100여 점을 2020년까지 소장한다는 계획이다.

 

▲ 미술은행 소장품이 있는 3층 개방 수장고     © 운영자


눈 앞에 펼쳐지는 '미술품 병원'

3층에도 개방 수장고가 있다. 이곳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을 쇼룸처럼 보여주는 곳이다. 미술은행은 국내 작가들의 창작 의욕 고취와 미술시장 활성화, 미술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작품을 사들여 정부, 공공기관, 재외공관, 민간단체 등에 대여, 전시하는 곳이다. 현재 청주관에는 미술은행 소장품 600점이 보관돼 있다.

 

이곳 개방 수장고는 1층 개방 수장고와는 성격이 다르다. 1층이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이라면 3층은 전시장의 성격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작품을 완전히 교체해 일반에 공개한다. 이곳에서는 오는 4월 말까지 미술은행 소장품 중 주목받고 있는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별해 전시하는 '하이라이트 미술은행'(High Light Artbank)이 열린다. 유승호, 송현숙, 이수경, 전준호, 최정화, 유근택 등 국내 중견·청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층에는 유기분석실, 무기분석실, 유화작품 보존처리실로 구성된 보이는 보존과학실도 있다. 보존과학실은 미술품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상처를 치료하거나 수술을 하는 '미술품 병원'을 말한다. 보이는 보존과학실에서는 학예연구사들이 손상된 미술품을 진단하고 보존처리하고 복원하는 흥미로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보이는 보존과학실 진입로에는 미술품의 재료, 보존처리 방법 등을 설명하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방문객은 화∼금 오전 10∼11시, 오후 2∼3시에 미술품 처리와 복원 작업을 창 너머로 볼 수 있다. 김정흠 작품보존팀 학예연구사는 "청주관에는 조각, 미디어, 사진 등 분야별로 보존과학실이 층마다 별도로 마련돼 있고, 1층에는 부피가 큰 작품을 다루는 대형 보존과학실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층 이외의 보존과학실은 작품 처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라키비움(Larchiveum)이란 공간도 있다. 라키비움은 뮤지엄, 라이브러리(도서관), 아카이브가 합쳐진 단어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집한 출판물, 작가 파일, 싱글 채널 영상 등 다양한 도서와 자료를 갖추게 된다. 청주관은 올해 말까지 자료를 구축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4층에는 특별수장고가 있다. 사진작가 임응식과 육명심, 조각가 김정숙, 서예가 김기승, 한국화가 서세옥 등 작가 5명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공간은 이들 작가를 연구하는 이론가나 연구자들에게 예약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 3층에 있는 보이는 보존과학실     © 운영자

 

개관 기념 전시 '별 헤는 날'

5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미술관의 기획전시실은 보통 1층에 있지만 청주관의 주기능이 미술품의 수장과 보존이어서 기획전시실을 5층에 배치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 기념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란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명성을 쌓고 있는 김수자, 정연두, 임흥순 등 중견작가와 양정욱, 고재욱 등 젊은 작가 15명이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등 작품 23점으로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뒤돌아선 말총머리 여인이 수많은 사람 틈에 바늘처럼 서 있는 영상이 흐르는 모니터들이 미로처럼 걸려 있다. 전 세계 8개 도시에서 촬영한 김수자의 '바늘여인'이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 익명의 존재를 감싸 안고자 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정연두의 '내사랑 지니'와 원성원의 '드림룸'은 이웃의 꿈을 실현해 주는 작품. '내사랑 지니'는 다양한 국적과 나이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현재와 꿈이 이뤄진 후의 모습을 함께 사진으로 보여주고, '드림룸'은 물속, 늪, 자연 등 작가의 친구들이 꿈꾸는 공간에서의 비현실적인 삶을 사진 콜라주로 만들어 익살맞게 보여준다.

 

극사실적으로 인물들을 그린 김상우의 '세대'와 김옥선·이선민의 사진 작품은 가족과 우리 이웃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노동자의 삶에 주목한 전소정, 차재민, 임흥순의 작품, 야간 경비원의 이야기를 설치 미술로 표현한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최수양의 극사실주의 조각 'The Wing'과 'The Hero'도 흥미롭다.

 

고재욱과 김다움은 '정상에 선 사나이'와 '파수꾼들'을 통해 청주 연초제조창의 지난 시간과 변화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작품은 김을의 '갤럭시'. 심연의 우주 같은 대형 전시실의 검정 벽면에 1천200여 점의 드로잉들이 별처럼 모여 거대한 은하계를 이룬 작품이다. 작가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세상과 대면하면서 창조한 크고 작은 충돌의 흔적을 담았다고 한다.

1층 로비에 있는 강익중의 '삼라만상'도 개관 전시의 일부다. 작은 캔버스 1만 점에 담은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거대한 우주를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중앙에는 크롬 도금된 반가사유상이 있다. 개관 기념 전시회는 6월 16일까지 진행된다. 관람은 무료다. (연합뉴스)

 

▲ 5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개관 기념 전시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김을의 '갤럭시'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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