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선 넘는 언니들의 발칙한 우정 활극 '정숙한 세일즈'

시대에 따라 드라마도 달라지고 세일즈도 달라진다. 세일즈에 나선 언니들의 드라마는...

김영미 | 기사입력 2024/10/18 [11: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선 넘는 언니들의 발칙한 우정 활극 '정숙한 세일즈'

시대와 시대가 부딪치는 파열음의 한 가운데

그 사이에서 한 움큼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yeowonnews.com=김영미 기자]1992년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로 따지면 여러 변환기에 있던 시기다. 대입학력고사 시대가 끝나고 수능시험 체제로 넘어가던 시기고, 한국과 중국이 수교했다. 정치적으로는 제5공화국 노태우 정권의 마지막 해다.

 

 

케이블TV의 개국으로 본격적인 영상 미디어 시대가 도래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근간을 지키던 과거의 것들과 ‘X세대’라는 이름으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이 마치 고기압과 저기압처럼 부딪쳐 안개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피워냈다.

 

▲ 시대와 시대가 부딪치는 파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 운영자

 

이렇게 시대와 시대가 부딪치는 파열음의 한 가운데에는 이러한 흐름에 빠르게 몸을 싣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지난 12일 첫 방송 된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는 그 사이에서 한 움큼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직 2회를 방송했을 뿐이지만, 벌써 시청률 5%의 문턱을 넘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1992년을 배경으로 금제시에서 ‘고추아가씨’로 뽑힐 만큼 예뻤던 주인공 한정숙(김소연)은 살림이라고는 관심이 없고 돈을 투자해 떼이기만 하고, 그에 얽혀 싸움만 일삼는 남편 권성수(최재림) 그리고 아들 권민호(최자운)와 살고 있다. 당연히 가세는 기울어 파출부 일을 하고 어떻게든 살림을 꾸리려 애쓰는데, 그 와중에 방문판매업 정확히는 성인용품의 방문판매 제안을 받는다.

 

 

당연히 이름처럼 ‘정숙한’ 삶을 살아왔던 정숙에게 도대체 그 용도를 알 수도 없을 해괴망측한 속옷과 각종 물건들은 당황스럽기만 한데, 마침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더욱 자립이 필요했던 그는 아들과 그의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방문판매에 나선다. 그 대열에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오금희(김성령), 서영복(김선영), 이주리(이세희) 등 ‘방판 시스터즈’와 함께 연대한다. 각자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금기에 힘들어하던 이들은 ‘성인용품’을 매개로 해방의 무대로 나아간다.

 

 

드라마는 2016년 영국 ITV에서 방송됐던 드라마 ‘브리프 인카운터즈(Brief Encounters)’가 원작이다. 원작 역시 보수적인 영국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파티 플래너가 되면서 그 안에서 각종 성인용품과 란제리를 팔던 네 명의 여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인 배경은 다르지만,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도발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여성들의 연대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숙한 세일즈’가 시대적으로 충돌하는 1992년에다 도농복합도시인 듯 도시와 농촌의 문화가 충돌하고, 출연자들의 말투에서도 충청도와 전라도가 충돌하는 가상의 ‘금제시’를 택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겉으로는 코미디의 기운이 있어 발랄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작품이지만 사실 그 안의 상황을 지켜보면, 웬만한 부조리극 못지않은 시대의 창살이 주인공들을 얽매고 있다. 주인공 정숙은 무능력한 남편의 옆에서 자신의 꿈도 펴보지 못한 채 ‘주부’라는 이름으로 시들어 가고 있고, 영문과를 나온 금희 역시 약사인 남편과 살지만, 그는 마치 봉건시대에 사는 사람처럼 가부장적이며, 전근대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영복은 아이만 넷인 집안에서 남편과 금실 좋게 지내지만, “가난한 집에서 금실이 좋은 것은 재앙”이라는 스스로의 말처럼 커나가는 아이들의 필요를 맞춰주고 싶은 조급함에 시달린다. 유일한 싱글로 미혼모의 삶을 즐기는 주리는, 하지만 그 때문에 싱글맘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늘 주류와는 겉도는 삶을 산다.

 

 

이는 어찌 보면 여성들의 성장서사라는 점에서 영화 ‘써니’가 떠오르기도 하고, 시대극과의 혼용이라는 점에서 2017년 KBS2에서 방송된 ‘란제리 소녀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코믹의 터치를 빼놓고 나면 ‘정숙한 세일즈’의 정서는 훨씬 엄혹하다. 각자의 주인공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훨씬 비참하며, 성인용품을 파는 이들 넷을 차차 조여오는 주변의 시선은 마치 정숙의 집 앞 담에 ‘SEX’를 써놓고 사라진 누군가의 폭력처럼 비정하다.

 

 

드라마는 이처럼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어쩌면 엄혹한 시기를 버텨야 하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다. 아직 초반에 이르지 않고 있는 만큼, 이들이 만들어갈 주체적인 서사가 얼마나 ‘주체적일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미스터리 코드를 가진 형사 김도현(연우진)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관심이다. 결국 또 김도현의 위치가 한정숙이 객체처럼 보이게 한다면 본래 취지를 못 살리는 ‘용두사미’식 구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공개된 회차에서 한정숙 역 김소연은 30년 연기구력이 바래지 않는 밸런스를 보여준다. 망가질 때는 망가지면서도 감정장면에서는 확실히 몰입해 울림을 주는 모습에서는 ‘펜트하우스’에서의 광기 어린 연기 못지않은 단단함이 보인다. 또한 그와 ‘승부사’ 이후 26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김성령 역시 주체적인 여성서사 작품에서 자주 보였던 이미지를 선보인다.

 

 

극의 분위기를 올리면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김선영과 패기 넘치는 막내 역할의 이세희 역시 나이를 떠나 괜찮은 조합을 펼친다. 이들은 이미 제작발표회에서 “서로의 눈만 쳐다봐도 울 것 같아 연기를 못 하는” 깊은 라포를 형성했다.

 

 

JTBC의 토일드라마는 지난해 ‘힘쎈여자 강남순’부터 ‘웰컴투 삼달리’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가족X멜로’ 등의 작품을 통해 가족극의 변주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코믹 그리고 시대극, 미스터리 코드를 가미한 ‘정숙한 세일즈’가 어떤 성과를 내게 될지. 깊어가는 가을이 안방에 묻고 있다.

김영미의 다른기사 보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yeowonnews.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드라마 #히어로 #변주 #시도#코믹 #미스터리 #성과 #파열음 #여원뉴스 관련기사목록